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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삽질 Jul 05. 2018

모진 수난을 표현한 바흐 그리고 세월호


수많은 십자가와 함께 세월호 가족의 수난을 함께 하려는 신부님, 목사님들이 있다. 그들은 행동으로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다른 방식인 음악으로 신앙을 표현한 사람이 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음악으로 예수의 삶에 대해 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신을 찬미한 바흐의 종교음악


주님, 우리의 주인이시여!

당신의 수난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신 주님이 찬미 받음을 보여 주시옵소서!


신을 찬미한 대표적인 음악가는 음악의 아버지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다. 바흐의 선율을 들으면 찬송가가 떠오르고 왠지 모르게 경건해진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래를 들을 때 느끼는 경건함처럼 말이다.


바흐 마태수난곡 중 베드로의 아리아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바흐는 독일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에서 교회합창단장을 맡으며 많은 곡을 작곡한다. 여기서 바흐는 마태 수난곡과 같은 수난곡(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를 극적으로 나타낸 종교 음악) 작곡에 심혈을 기울였다. 마태복음 이야기를 음악으로 쓴 예수의 수난곡은 사람들의 신앙심을 자극하기 위한 노래로 바흐 종교 음악의 결정판이었다.


바흐가 수난곡만 지은 것은 아니다. 그는 아름다운 선율로 신을 찬양했다. 바흐의 곡 ‘예수, 인류의 소망 기쁨 되시니(Jesus, bleibet meine Freude)’는 온 세상에 번지는 예수의 온화한 미소를 표현하고 있다.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 성당의 자비로운 예수의 모습이 떠오른다.


"Jesus bleibet meine Freude"


파이프 오르간의 경건한 음색이 흘러나온다. 반복되는 대표 선율의 잔잔한 변화와 함께, 성가대의 합창이 진행된다. 성당에 한 줄기 빛이 비추듯 따뜻하고 보드라운 음색은 계속된다. 성모 마리아의 따뜻한 품에서 아이들이 뛰어놀 듯이 바흐의 음악은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 안아 준다.


절대 선에 대한 찬미


바흐 음악이 이처럼 아름답고 따뜻한 이유는 그가 신을 절대 선으로 여기며 찬미했기 때문이다. 바로크 시대 독일 음악은 교회 음악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바흐 역시 크리스찬으로 음악에 입문했다. 바흐는 신을 음악으로 찬미했다. 아름다운 절대 선에 대한 노래가 바로 바흐가 추구했던 음악이다.


종교 음악은 모든 음악의 뿌리이자 시원이다. 최초의 클래식 음악이 그레고리안 성가이듯, 서양의 클래식은 가톨릭교회 음악의 발전이다. 가톨릭교회 음악은 바로크 시대 장대한 발전을 보였으며 그 출발에 바흐가 있었다.


바흐의 음반은 종종 가톨릭의 상징인 교황에게 선물로 증정된다. 독일 메르켈 총리나 성악가 조수미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바흐의 음악을 선물했다. 그만큼 바흐는 충실히 신을 노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세월호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차량이 광화문 시복미사를 앞두고 카퍼레이드를 했다. 한 바퀴, 두 바퀴, 온 국민은 숨죽이며 지켜봤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목이 메어 파파를 외쳤다. 그 순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차량이 광화문 광장 끝자락에 천천히 멈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 걸음 씩 계단에서 내려가 딸을 잃고 34일째 단식을 이어가던 세월호 유가족 유민아빠의 두 손을 잡아주었다. 유민아빠는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교황의 손을 잡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민아빠를 만나며, 실천으로 예수의 자비를 보여주었다. 마태복음 25장 40절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 이니라”라는 구절처럼 말이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 작시 미상, 작곡 아라이 >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개의 바람.

천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주는 프란치스코 교황


신이 있을까. 신이 있다면 세상이 이럴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도 사람들은 인생의 무게가 느껴질 때, 종교에 고개를 숙인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세월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무 십자가를 매고 수백km를 걸었던 승현 아빠 이호진씨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례를 받으며, 신의 은총과 안식을 찾았다. 모태신앙이었던 예은 아빠 유경근씨는 “당연히 신앙에 회의가 오지요. 나는 정말 신앙을 가지고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런 시련이 왔을까. 그러나 거꾸로 회의를 갖게 된 저에게 힘을 주신 분들 역시 신앙인들이셨습니다.”라고 심정을 이야기했다.


세월호 가족의 심정을 그대로 담은 노래들이 바흐의 성가처럼 들린다. 인간의 가장 깊은 슬픔, 먼저 보낸 자식들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 진실을 향한 갈망, 아마 이런 마음들이 음악으로 승화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들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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