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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삽질 Jul 05. 2018

가난한 사람들의 꿈을 그린 디에고 리베라

"내게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민과 희망을 아주 강렬하게 느끼게 해주는 출신 배경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해주고 더 나은 세상을 보게 해줘야 한다는 게 나의 희망입니다."(디에고 리베라)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년 ~ 1957년)는 멕시코 혁명기에 벽화운동을 주도한 화가다. 디에고는 멕시코 사람들의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을 소재로 혁명을 표현했다. 1910년 일어난 멕시코 혁명은 30년 디아스(Diaz) 독재에 반발해 일어났다. 수많은 희생 속에 결국 혁명은 승리하고 1920년 오브레곤(Alvaro Obregon) 정권이 들어섰다. 농민이 주도하여 시작된 멕시코 혁명은 러시아 혁명을 예고하는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오브레곤 정권은 토지 분배와 공교육을 확대 실시했으며, 멕시코 인디오 전통 문화 부흥에 힘쓴다. 동시에 멕시코 인들의 전통과 삶에 뿌리를 둔 예술을 통한 정치 선전을 추구했다. 자유를 되찾은 멕시코인들은 자신들의 억눌렸던 삶을 표출하고 자유를 갈망했다.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에는 이러한 갈망이 잘 담겨있다. 


꽃 파는 사람 


디에고 리베라의 대표작 <꽃 파는 사람>이다. 카라가 풍성하게 한 바구니 담긴 아름다운 그림이다. 이 그림이 더 아름다운 이유는 그 무거운 꽃바구니를 힘겹게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와 그 꽃바구니를 들리는 ‘보이지 않는 손’이 탁월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꽃을 사서 보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마음은 다르기 마련이다.


꽃파는사람 Flower seller, woman with calla lilies, 1942 .Oil on canvas, 122


언뜻 보기에 아름다워 보이는 이 그림의 비밀은 뒤에서 무거운 카라 꽃바구니를 짊어지게 시키는 사람의 보이지 않는 손과 발, 그리고 머리에 있다. 멕시코 여인은 무릎을 꿇고 무거운 카라 꽃바구니를 들 준비를 하고 있다. 아름다운 꽃도 파는 사람에게는, 가난한 서민에게는 고된 노동이라는 디에고 리베라의 연민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디에고 리베라는 벽화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사람들에 대한 선전 도구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멕시코의 민중 예술이야말로 전 세계에서 가장 건전한 영혼의 표현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윽고 그는 방안에 틀어박힌 예술을 거부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건조물 예술을 옹호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한다. 그는 선언문에서 기성의 유럽의 것을 모방하는 예술이 멕시코 사람들의 눈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리베라의 벽화실 


미국 디트로이트 시 미술관 안에 가면 리베라의 벽화실(Rivera‘s Court) 이라는 거대한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져 있는 방이 있다. 디에고 리베라는 포드 자동차 회사를 4명의 사진사를 데리고 3개월 동안 출퇴근 하며 벽화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그는 휴식도 없는 강행군을 하며 이 벽화를 1932년 7월부터 1933년 3월까지 11개월 만에 마침내 완성했다.


리베라의 벽화실 북쪽벽


리베라의 벽화실 남쪽벽


남쪽 벽 왼쪽 하단에 하얀 중절모를 쓰고 고약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은 포드 공장 생산부장 미드 브릭커(Measd Bricker)를 그린 것이다. 평소에 저런 표정을 하며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착취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표현한 것이다. 


디에고 리베라는 북쪽 벽 왼쪽 위 8기통 엔진 블락을 조립하는 생산라인 위에는 동그란 모자를 쓰고 시무룩한 표정을 한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기도 했다. 그는 포드 공장을 견학하며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 하나의 부속품으로 쓰이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널리 알리고 싶어 했다. 저임금으로 고통 받으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똑같은 동작으로 일해야 하는 그들의 삶이 디에고의 작품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남쪽벽 왼쪽 하단 미드 브릭커


북쪽벽 왼쪽 위 디에고


부자들의 밤빈자들의 밤


부자 빈자의 밤


멕시코 공립학교(교육부 청사)에는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이 1,2,3 층에 잘 남아있다. 그 중 특히 2층 ‘축제의 장’에서 디에고 리베라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밤을 비교하며 자신의 의도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부자들의 밤>은 외세와 권력에 빌붙어 먹고사는, 도덕성이라곤 없는 자들이 밤에는 술과 담배, 마약을 즐기며 환락에 빠져있는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그들 뒤에는 무장을 한 농민들이 혁명을 암시하는 듯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빈자들의 밤>에는 고된 노동을 하지만 제대로 끼니도 먹지 못해 고통 받는 가난한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일하느라 저녁 늦게 까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잠 든 모자를 통해 현실을 폭로하고 있다. 그들 뒤에는 이런 서민들을 매서운 눈초리로 감시하며 세금을 뜯어낼 궁리를 하는 권력자들이 그려져 있다. 


혁명과 예술 


1900년대 초반 멕시코에서 살아간 디에고 리베라는 자연스럽게 예술을 정치사회적으로 승화시킨다. 그는 1907년 유럽으로 건너가 피카소 등과 교류하며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탈리아를 돌아보며 프레스코화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이 경험이 멕시코 벽화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아스텍(Aztecan)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은 멕시코 벽화는 다양하고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며, 둥그렇고 간결하게 사물을 표현한다. 이러한 멕시코 전통의 민족문화는 디에고 리베라를 통해 부활하였고, 그의 작품은 멕시코 민족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여기에 사회주의적 성격이 결합되면서 디에고 리베라는 외세와 독재정권에 의한 멕시코 인들이 겪었던 실제 사건을 벽화에 담았다.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그를 평생 사랑했던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인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혁명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혁명이 예술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예술이 혁명을 필요로 한다고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혁명은 혁명예술을 필요로 합니다. 혁명가의 예술은 낭만주의자의 예술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자극제나 흥분제가 아닙니다.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술도 아닙니다. 신경계통에 영양을 공급하는 양식입니다. 투쟁을 위한 양식입니다. 그것은 밀과 같은 양식인 것입니다(르 클레지오, 2001: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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