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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삽질 Jul 05. 2018

우리의 생각을 그린 그림

우리는 흔히 민족미술을 동양화라고 부른다. 한국화라는 개념은 근대 대한민국 이후에 자리 잡은 것이다. 우리는 왜 동양화라는 개념에 친숙할까? 서양화와 반대되는 개념이라서 그럴까? 사실 동양화라는 말은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유래했다. 


조선총독부는 1922년부터 44년까지 식민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미술 작품 공모전인 조선미술전람회 약칭 선전(鮮展)을 진행했다. 조선미술전람회는 제1부 동양화, 제2부 서양화, 제3부 공예, 조각부로 분류하여 작품 공모를 받았다. 여기서부터 동양화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동양이라는 말은 일제가 추구한 대동아공영을 뜻한다. 


민족미술을 ‘동양화’라고 칭하게 되는 비극적인 현실이 한국 미술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다시 뜯어 고치기 위해서는 민족미술에 조선화, 민족화 등 새로운 이름부터 줘야하지 않을까.


민족 미술의 특징



우리 그림은 우리 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주변국인 일본의 아기자기한 서양미술 풍 그림도 아니고, 중국의 호방하고 화려한 풍 그림도 아니다.서양화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며 감정을 묘사하고, 명암과 원근감을 표현했다. 반면 우리 그림은 사실을 그대로 그리지만 감정보다 그 안에 사상이 들어가 있다. 즉 민족 미술은 생각을 그린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민족 미술은 자연주의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리 미술은 자연에 동화되고 활용하는 감각이 두드러진다. 인위적인 요소를 가미하기보다 그 자체를 살려나갔다. 그러다보니 담백하면서 고요하다. 단순함 속에 여백의 미가 살아있고, 겸손함 속에 어우러짐이 우러난다. 


인간을 따듯하게 바라보며, 해학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경쾌하면서 역동적인 절제된 아름다움이 민족미술에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부드러우면서도 경쾌한 선과 순수한 색이 조화를 이루면서 우리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민족 미술의 뿌리 


민족 미술의 뿌리는 우리 민족이 지니는 고유한 특징과 맞닿아 있다. 우리 미술에는 우리 민족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한다)이라는 인간중심의 사상이 구현되어 있다. 그 바탕에는 민족자존 정신이 깔려있다. 우리 민족은 주변 외세의 수많은 침탈과 수탈에도 반만년 동안 우리만의 독창적이고 유구한 문화유산을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조선화의 뿌리는 시작된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역사상 가장 초기의 회화유산이며, 중국화나 일본화에 비해 선명하고 간결하고 섬세한 화법으로 그려져서 힘 있고 아름답다. 이런 화법은 후에 민족 미술의 전통으로 그대로 이어집니다. 또한 고구려 고분벽화는 미술사적으로도 중국보다 앞서있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강서고분 사신도와 무용총 수렵도 


고구려 고분벽화 중 강서고분의 사신도는 세련되고 생동하는 표현으로, 고구려의 뛰어난 회화 솜씨를 증명하고 있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에서 사신도 중 거북과 뱀이 뒤엉켜있는 현무도를 으뜸으로 꼽았다.


현무도

“저 뱀의 뱃가죽 비늘을 망사처럼 그렸는데 몸을 비틀면서 비늘이 꼬이는 것까지 그렸네요. 세상에!”


북한에 다녀온 이후 유홍준 교수는 세계미술사의 무대에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 우리 유물 10점 중 1300년 전의 고구려 강서고분의 현무도를 제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고구려인이 강서큰무덤에 사신도를 그릴 때 유럽은 야만인이 날뛰는 암흑시대였고, 중국은 5호16국의 전란으로 정신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강서큰무덤은 당시 세계 최고입니다.”

 

무용총 수렵도 역시 고구려인의 활달한 기상과 용감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말을 타고 달리며 화살을 당기는 사람의 힘찬 모습과 경쾌하게 표현되어 있는 산과 동물들의 어우러짐은 호탕한 고구려의 기상을 나타낸다.


수렵도


갈색과 흰색, 노란색 등 각각 색의 대비를 통해 시각적 변화로 역동성은 더욱 커진다. 사냥꾼과 도망가는 동물의 배치 역시 동심원을 그리듯 활기차다.이 수렵도는 고구려인의 사냥하는 모습을 통해 그들의 용감한 성격과 자주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민족 미술의 발전 


민족 미술의 이런 특징은 종교적 색체, 시대적 한계 등에 제약을 받기는 했지만 꾸준히 발전해 나갔다. 이는 사회적 의식이 뚜렷하게 성장하는 조선후기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의 작품들이다. 


조선 후기 겸재 정선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그대로 화폭에 담을 수 있는 실경산수화 창작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진경산수화는 조선 후기의 새로운 사회적 의식 변화를 배경으로 유행했다. 


조선 후기 의식의 변화는 사실주의 미술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김홍도, 신윤복 등은 이러한 사실적인 창작태도를 발전시켜 조선 후기 사람들의 생활과 사회현상을 풍부하게 반영하면서 조선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찬란하고 유구한 전통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심각하게 왜곡되어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온전하게 민족 미술을 바라보고 평가하기도 힘든 지경이 되었다. 우리는 어떻게 전 세계를 주름잡았던 찬란한 우리 민족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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