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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삽질 Dec 07. 2018

신뢰의 가치

청춘,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을 위해②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삶은 어두운 동굴과 비슷하다. 어두운 동굴은 손으로 더듬더듬 짚어가며 눈이 익숙해져야 비로소 걸어갈 수 있다. 그 때 누군가의 손길은 아주 소중하다. 하지만 믿음이 있어야 그 손을 잡을 수 있다. 인디아나 존스처럼 어두운 동굴을 탐험할 때 잘 인도해주리라는 신뢰는 동료들에게 위안을 주며 큰 시너지 효과를 낸다. 



얼마 전 대학시절 한 선배를 만나 부끄러운 이야기를 들었다.


"난 그 때 거만한 네 모습이 참 싫었다"

"나도 알아, 그 땐 철이 없었지. 돌이켜 많이 생각해봤네.."

"근데 지금은 좋다"


참 고마웠다. 선배는 그 때 당시 내색은 안했지만 삶으로 부끄러운 내 모습을 깨닫게 해준 선배다. 부족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지켜봐준 사람, 그 선배는 그런 선배다. 


그 선배를 만나 최근 어지러운 국면을 이야기하며 같이 활동했던 당시 총학생회 선거를 떠올렸다. 우리 대학은 전통적으로 진보적 성향의 총학생회가 당선되던 곳이다.  진보적 총학생회가 4년 동안 장기집권(?)하던 때라 '반운동권'이라는 슬로건을 건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며 상당한 위기에 처해있었다. 


투표 결과 역시 '반운동권' 후보가 과반에 못 미치는 1위를 하여 결선투표를 하게 되었다. 정신을 바짝 차린 우리는 최선을 다해 결선투표에 임했다. 전세는 엎치락 뒤치락. 드디어 결선투표 개표 결과가 발표되었다.


"000 선거운동본부 4925표, 반운동권 선거운동본부 4926표!" "1표차입니다. 재검표에 들어가겠습니다."


나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1표차라니. 다시 검표를 해보니 3표차로 최종 결론이 났다. 투표차가 오차범위보다 커야한다는 대학선거시행세칙에 따라 또 다시 2차 결선투표가 결정됐다. 하지만 투표 당일 반운동권 선거운동본부는 괴유인물을 뿌리며 선거를 보이콧하여 재투표는 파행으로 얼룩졌다. 결국 총학생회 선거는 3월로 연기되었고 반운동권 선거운동본부는 법원에 당선자 지위 가처분 신청을 하였다. 


우리들이 개강을 맞아 신입생 환영사업과 3월 선거를 바쁘게 준비하고 있을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법원에서 반운동권 선거운동본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우리는 혼란에 빠졌다. 학내 문제는 학생들이 결정해야한다는 의견과 법원 판결에 흔들리는 여론 사이에서 입장이 갈렸다. 결국 3월 선거 여부를 학생 총투표로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총투표를 추진하면서 선거운동본부 안에서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어려운지 직접 학생들 좀 만나봐라"

"서명도 안 받고, 캠페인 활동도 안 나오면서 뭐하는거냐?"

"3월 선거는 해도 안된다. 지금 얼마나 바쁜데 그러는거냐?"


쉽지 않은 선거와 너무 많은 사업, 잘 보이지 않는 간부들의 모습에 불만이 쌓인 것이었다. 의견 통일이 어려웠던 당시 총투표를 추진하고자 하는 간부들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사람들에게 3월 선거하자고 설득하랴, 유인물과 홍보물품 제작하랴 정신이 없었다. 선거운동본부 중앙 간부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서 어려운 난국을 돌파했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다고 반운동권 선거운동본부는 체육교육과 학생들을 동원해 총학생회실을 점거했다. 결국 힘을 모으지 못한 우리는 총투표가 무산되는 쓰라린 경험을 맛보았다. 술자리에서는 어김없이 불만이 터져 나왔다. 과학생회, 동아리 일꾼부터 중앙선거운동본부 간부까지 서로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사분오열된 우리는 전학대회를 통해 반운동권 총학생회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너무 분해서 눈물을 흘리며 이를 꽉 깨물었다. 


비록 선거에서 이기지는 못했지만 치열했던 토론과 투쟁은 학생들 속으로 들어가는 단련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진실을 알려나갔고, 진심을 가지고 학생들을 만났다. 결국 1년간 끊임없는 투쟁 끝에 우리는 다음해 총학생회 선거에서 46표차로 이기는 짜릿한 승리를 맛볼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총학생회 선거는 논란 당시 믿음을 얻기 위해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고 더 낮은 자세로 다가갔다면 다른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래도 그 해 총학생회 선거는 소중한 교훈을 주었다. 보이지 않아도 전해지는 믿음으로 뭉쳐야 어려운 난국도 돌파하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교훈 말이다. 


세상을 바꾼 다는 것은 어렵고 험난한 일이다. 항상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며 한 걸음씩 나가야한다. 바위를 깨기 위해서 더 단단한 망치가 필요하듯이 단단한 이 길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더 단단히 뭉쳐야 한다. 단단히 뭉치는 비결은 바로 믿음이다.


서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사람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열심히 할 때도 있고 못 할 때도 있다. 내 눈 앞에 보이는 잠깐의 모습보다 그 사람의 지향과 헌신하는 삶을 소중히 여겨야한다. 1% 단점보다 99% 장점을 봐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겸손과 배려의 미덕을 발휘해야한다. 남의 허물보다는 자신의 허물을 크게 보고, 남을 지적하기 보다는 행동으로 깨닫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배려와 겸손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날 때 그 조직은 믿음이 충만한 조직이 된다.


어떤 조직이든지 조직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혁신해야 한다. 하지만 불평과 불만으로는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 불평, 불만보다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대안을 만들고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면서 바꿔나가야 한다. 


어렵고 힘들어도 같이 가는 사람들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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