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문제는 뭘까?

AI시대에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장이 주는 통찰

by 카이
"AI 도입하면 우리 회사도 많이 좋아질까요?"


지난주, 한 스타트업 대표님과의 미팅은 이 질문으로 시작됐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나는 되물었다. "그런데 대표님, 지금 가장 시급하게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뭔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돌아온 답변은 예상대로였다. "음... 일단 직원들이 더 효율적으로 일했으면 좋겠고, 인건비도 절감하고 싶고..."


이런 대화를 나는 이번 달에만 열 번은 넘게 나눴다. AI 솔루션 기업의 CPO로 일하며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다. 모두가 AI라는 마법의 지팡이를 원하지만, 정작 그 지팡이로 무엇을 할 것인지는 모호하다. 마치 망치를 들고 못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우리는 도구에 취해 문제의 본질을 잊고 있다.


What과 Why. 지난번에 이 두 가지가 AI 시대의 핵심이라고 썼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What, 즉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문제 정의'다. 우리가 해결하려는 것이 진짜 문제인지, 아니면 문제처럼 보이는 증상에 불과한지를 구별하는 일 말이다.


최근 한 제조업체와의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처음 그들이 찾아왔을 때 요구사항은 명확해 보였다. "우리는 문서 기반 AI 챗봇이 필요합니다. 직원들이 필요한 정보를 찾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요." 충분히 합리적인 요청처럼 들렸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비슷한 솔루션을 도입하고 있었고, 우리도 관련 제품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 걸음 물러나 물었다. "직원분들이 정보를 찾는 전체 과정을 한번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발견한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저희는 이메일로 오는 거, 카톡으로 공유되는 거, 구두로 전달되는 거... 다 따로따로예요. 그래서 뭐 하나 찾으려면 여기저기 다 뒤져야 해요."


품질관리팀 직원의 이 한마디가 핵심을 찔렀다. 그들의 진짜 문제는 검색이 아니었다. 정보가 애초에 한곳에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 본질이었다. 흩어진 퍼즐 조각을 아무리 빨리 찾는다 한들, 퍼즐이 완성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무리 똑똑한 챗봇을 만들어도, 챗봇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전체의 30%에 불과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챗봇을 만드는 대신, 먼저 흩어진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하고 통합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메일, 메신저, 회의록, 심지어 음성 메모까지 한곳에 모이도록 했다. 그다음에야 비로소 AI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줬다. 우리는 너무 쉽게 눈에 보이는 문제에 매달린다.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빠르게 만들면 되고, 실수가 많으니까 정확도를 높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왜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왜 실수가 발생하는지는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연구실로 돌아와 이 문제를 곱씹어봤다. 왜 우리는 본질을 놓치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너무 빨리 답을 찾으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AI가 즉각적인 답변을 주는 시대에 살다 보니, 우리도 모든 것을 즉시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질문들은 시간이 필요하다. 묵혀야 하고, 뒤집어봐야 하고, 때로는 잊었다가 다시 마주해야 한다.


문제를 뾰족하게 정의하지 못하면 해결책도 뾰족할 수 없다. 이는 비단 기업 현장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AI에게 "오늘 뭐 먹을까?"라고 물으면 수십 가지 메뉴를 추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가 메뉴 선택이 아니라 '혼자 먹기 싫다'는 외로움이라면? '요리하기 귀찮다'는 피로감이라면? AI의 답변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2500년 전의 이 오래된 지혜가 AI 시대에 오히려 더 중요해진 것 같다. 우리가 스스로를 알지 못하면,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아무리 강력한 AI도 무용지물이다.


늦은 밤 연구실에서 새로운 AI 모델을 테스트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만드는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결국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이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AI는 거울과 같다. 우리가 던진 질문의 깊이만큼만 답을 돌려준다. 모호한 질문에는 모호한 답이, 날카로운 질문에는 날카로운 통찰이 따라온다.


실제로 나는 요즘 AI를 사용할 때 이런 과정을 거친다. 먼저 내가 해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고민한다. 그것이 진짜 문제인지, 아니면 더 깊은 문제의 증상인지 자문한다. 때로는 AI에게 "내가 이런 상황인데, 진짜 문제가 뭘까?"라고 묻기도 한다. AI는 훌륭한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준다. 하지만 결국 문제를 정의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이렇게 문제를 뾰족하게 다듬고 나면, AI의 답변은 완전히 달라진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줘"라고 하는 것과 "다음 주 투자자 미팅에서 우리 제품의 차별점을 5분 안에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줘"라고 하는 것의 차이다. 후자가 훨씬 더 유용한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건 자명하다.


"그래서 저희가 진짜 필요한 게 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단순히 일을 빨리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하는 거였네요."


몇 주 후, 그 제조업체 대표님이 웃으며 말했다. 정보 통합 시스템을 도입한 후 직원들의 업무 효율이 40% 향상됐다고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변화는 따로 있었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이게 진짜 문제인가?"라고 먼저 묻는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연구실로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AI 시대를 살아가며 잃어버린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기다림'일 것이다. 질문을 품고 기다리는 시간, 문제와 함께 살아가며 그것을 이해하려 애쓰는 시간 말이다. AI가 1초 만에 답을 주는 세상에서, 우리는 1주일을 고민해야 하는 질문의 가치를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똑똑한 AI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우리가 진짜 해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아는 것. 그것이 먼저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할 수 있다면, AI는 그때부터 진짜 마법을 부리기 시작한다.


어쩌면 진정한 혁신은 답을 빨리 찾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찾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질문을 찾는 여정에서, 우리는 AI와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이 우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나은 질문자가 되도록 돕는 동반자로서 말이다.


오늘 밤도 나는 연구실에서 새로운 문제와 씨름할 것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 고객을 만나 또 물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무엇인가요?" 그 질문 속에서 우리는 함께 답을 찾아갈 것이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때로는 가장 오래된 지혜가 가장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열쇠가 된다. "너 자신을 알라." 이 간단한 문장이 AI와 함께하는 우리의 여정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기를, 그래서 우리가 진짜 문제를 마주하고 진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전 02화씨크릿의 진짜 씨크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