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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 Oct 10. 2017

"받아들였어, 이게 보라카이 삶이지"

나의 두 번째 보라카이 여행기

"오늘 뭐 하지?"라는 질문은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관심도 없는 문제였다. 나는 그냥 그 눈부신 백사장 위에서 내가 감히 이름을 붙일 수도 없을 만큼 아름다운 색깔의 바다와 하늘이 내 눈 앞의 현실이란 사실에 매일 가슴이 벅찼다. 비치 베드에 기대어 하염없이 그 광경만 몇 시간 동안 바라봐도 좋았다. 그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깨끗하고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은 절대로 만들어낼 수 없는 투명한 빛깔에 둘러싸인 시공간 속에서 나는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이 없는 완전무결한 인간인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너무 아름다워서 아름답다는 말조차도 부적절한 것 같았다. 마치 내가 느끼는 감정은 '사랑한다'는 감정 이상인데, 그걸 표현할 말이 없어 속상했던 첫사랑 시절의 마음처럼 나는 도무지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할 자신이 없었다. 보라카이 화이트비치에서 머물렀던 7일 동안 나는 이전까지 살아온 방식과 언어의 길을 잃은 채로 행복했다.

언젠가부터 따뜻한 나라의 투명하고 푸른 바다 옆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실현하고 싶은 꿈으로 마음속에 강하게 품게 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알고 있다. 한국도, 서울도 충분히 장점이 많은 곳이다. 무엇보다 푸른 바다가 있는 다른 따뜻한 나라들에 비해서는 훨씬 깨끗하고 안전한 곳. 다양한 기회와 편리한 생활이 있는 곳.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나와 복합적으로 연결된 곳이기 때문에 더욱 한국이 아닌 다른 장소에 대한 갈망을 갖는다는 것도 안다. 문제 없는 사회는 없다. 그리고 내가 현재 속한 이 사회를 포기하고 다른 사회로 뛰어든다면, 그 사회가 지닌 문제는 또다시 나에게 복합적인 올가미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살아있는 이상 어느 사회에 속하게 되고, 내가 견뎌야만하는 루틴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번 보라카이 여행에서 만난 론은 아침 일찍 일어나 태양이 하늘을 가르고 하루의 첫 빛을 꺼내어놓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 태어나서부터 쭉 보라카이 섬에서 살아온 그는 그 놀라운 광경을 수도 없이 보았지만 단 하루도 그 모습이 같지 않다고 했다. 그의 휴대폰 사진첩 속 모습이 그의 말을 증명하고 있었다. 내가 보라카이에 머무는 동안 본 일출이라고는 결국 론의 핸드폰 속 사진이 전부였지만, 나는 그 섬이 보여준 눈부신 바다와 석양의 풍경만으로도 그 경외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터전과 삶, 일을 사랑했다. 매일 마주치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수상 스포츠를 연마하고, 그것을 자신의 업으로 삼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신체적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담배는 한 번도 피우지 않았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지금은 바쁜 시즌이 아니라 일을 마친 뒤 석양이 질무렵 그는 스킴보드를 들고 화이트비치에 나와 보드를 탔다. 보라카이의 상징인 '윌리스 락' 부근은 원래부터 자신의 공간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휴양지인 섬에 산다는 건 사람이 오지 않으면 섬 전체의 수입이 바닥난다는 걸 뜻했다. 태풍이 몰아치면 대체로 잔잔한 화이트비치의 파도가 높아져서 스킴보드나 서핑에는 좋지만, 잘 닦아놨던 가게와 집의 지붕이 날아가거나 수입이 곤두박질 친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직업과 삶의 터전이 망가지는 운명에 놓여있었다. 그래서 론은 90년대 개발이 덜 되었던 비밀스러운 섬이었으며 지금보다 수백배는 더 아름다운 보라카이의 사진을 여전히 지니고 또 그리워하면서도, 변화를 받아들였다.

또 화이트비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본명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화이트비치에는 패들보드나 서핑 등 스포츠 용품을 대여해주거나 보트, 다이빙 체험 등 각종 액티비티를 중개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한다. 또 땅콩이나 따호, 발룻 등 거리 음식을 들고 다니며 파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 이슬람 계열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데, 특히 팔찌를 팔러다니는 아이들 중에 그런 아이들이 많다고 또다른 친구 댄이 알려줬다. 동업을 하는 경우야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사람들은 서로 별명을 부른다. 오랫동안 정착해 일하는 사람도 있지만, 잠깐 머물다 떠나는 이들도 많은 탓이다.

댄도 별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처음 그에게 스킴보드를 배우고 나서 조금 가까워진 뒤에야 자신의 본명을 알려줬다. 그냥 부르기 편한 이름을 사용하고 싶었다고 했다. 댄은 말수가 많지 않고 자기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라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한 번은 그와 맥주를 마시고 있던 참에 그와 안면이 있는 여성이 나에게 땅콩을 팔러 왔는데, 나중에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지만 댄은 그녀의 별명밖에 알지 못했다. 거기서는 그게 일상적인 일이라고 했다. 댄도 사실 필리핀의 다른 섬 출신으로 지금은 보라카이에서 일하고 있지만 곧 떠나게 될 수도 있으며 나중에는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잠깐 머물다 떠나는 이들은 상인들뿐만이 아니었다. 관광객들 또한 잠깐 왔다 잠깐 머물다 떠나가긴 마찬가지다. 패들보드와 스킴보드를 소유한 댄은 그걸 대여하는 일뿐 아니라 보라카이에서 알게 된 자신의 게스트들에게 액티비티를 어레인지해주거나 여러 가이드를 해주는 일도 했다. 그래서 게스트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도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시간을 보내도 그들은 떠났고,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서로 알 수 없었다. 다시 만날 기약 없는 친구들. 인터넷의 발달로 수시로 연락하고 지낼 수는 있지만, 언제고 삶에 들어왔다 사라질 수도 있는, 그만큼의 사람들.

나는 댄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항상 잠깐씩 머물다 떠나가고, 너는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남는 사람이잖아. 그게 슬프지 않아?" 물론 슬프다고 했다. 아무리 단 며칠만을 머물다가는 게스트라고 해도 그들이 떠난다고 하면 속상했다.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보라카이 여행의 7일 내내 댄은 나를 보살펴줬는데, 우린 여전히 친구였지만 "다시 만나게 되면 좋겠어" 정도의 약속 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친구를 얻은 동시에 잃은 기분이었다. 수많은 맥주잔을 기울이며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겠구나, 라는 쓸쓸한 인사말도 나눴다. 하지만 댄은 덧붙였다. "그런데 그냥 받아들였어. 이게 보라카이 삶이지." 한번은 론과 댄 그리고 나 셋이서 맥주를 마시다가, 어떤 맥락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루틴을 견뎌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 때 과묵한 댄이 유독 그 말에 강하게 동의했다.

보라카이를 두 번째로 방문했다가 아침에 서울에 도착했다. 떠나기 전날 밤에 마신 술과 애매한 비행시간, 긴 여정 탓에 피곤에 지쳐있던 나에게 가장 먼저 내가 서울에 왔음을 일깨워준 건, 한국경제신문의 옥외 광고 카피였다.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 그리고 두 번째로 내게 안도감과 절망감을 준 것은 내가 집을 비웠을 8일의 시간 동안 한 번도 불을 끄지 않았을 내 집 앞 편의점. 나는 이제 내 땅에서 다시 지독한 인생 마라톤을 견뎌낼 준비를 해야 했다. 고요한 화이트비치에 앉아 "돌아가기 싫다"고 뗑깡을 부리던 섭섭한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던 듯이 접어두는 편이 나에게도 좋았다. 잘 닦여진 대중교통, 깨끗한 화장실, 맛있는 커피가 있는 카페, 부담없이 갈 수 있는 병원, 높은 치안수준을 자랑하는 나의 터전, 수많은 사람의 꿈과 야망, 절망과 박탈감이 복잡하게 뒤섞인 서울에서, 지금 나는 나의 루틴을 견뎌야 하니까. 사실 나도 받아들였어. 이게 서울의 삶이지.

하지만 가슴 한 켠에서는 다른 곳에서의 삶을 꿈꾼다. 어딜 가나 내가 견뎌야 할 삶의 무게가 있다면, 한편으로는 어디여도 상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의 루틴이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지겨워질 때쯤 충분히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내가 항상 보고 겪는 것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진리를 생각하자면, 서는 자리를 바꾸는 것은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다. 내가 매일 눈부신 화이트비치를 내 삶의 현실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예쁜 바다같은 마음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이토록 아름다운 곳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지 않을까? 꿈을 꿔본다.


서울이 벌써 너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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