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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ee 리뷰

지구에 또다시 대멸종이 올 것인가?

<대멸종 연대기>를 읽고

by hee

이 책으로 나는 “지금껏 존재하는지도 거의 몰랐던 세계 전체와 안면을 텄다”

공룡 장난감을 들고 알 수 없는 공룡 이름을 외치던 우리 6살 조카마냥 나도 고생물의 세계에 푹 빠져버렸다. 미국은 갈 수 없으니 강원도 고성이라도 가서 공룡 발자국 화석을 봐야겠다고 남편을 졸랐다. 제주도 주상절리도 다시 보고 싶고 거대 물고기 둔클레오스테오스 같은 애들도 그려보고 싶어졌다.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 고생물을 모델로 한 캐릭터도 꽤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이 책은 고생물에 대한 책이 아니라 대멸종에 대한 책이다.

우리 행성에서 최소 75%, 최대 98%까지의 생물종을 멸종시켰던 5번의 ‘대멸종’의 원인을 추적한다. 주범은 탄소. 유일한 범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5번의 대멸종 동안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밝힌다. 그리고 그 대멸종이 찾아오면, 우리 행성은 이전의 행성과는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큰 변화를 경험했다.

작가가 책에서 연대순으로 대멸종의 원인을 추적하고 대멸종 전후의 이 행성의 모습을 보여주다 보니 고생물의 다채로운 모습(너무 못생긴 인류 조상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익숙지 않은 탓인지 이 분야 번역이 원래 좀 매끄럽지 않은 건지 초반에 적응하는 데 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위트 넘치는 표현과 문장이 가득해서 재미게 읽히기도 한다.

사실 과학 분야 독서를 시작한 지는 한 2년 정도밖에 안 됐다. 과학에 관한 어린 시절 나의 기억은 대부분 아주 불쾌한 기억밖에 없다. 자꾸 뭐를 계산하라고 하거나, 개구리도 싫은데 심지어 그 개구리의 배를 가르라고 하는데, 또 심지어 갈라보니 소화 덜 된 파리가 나온다거나, 퇴적 어쩌구 보지도 못한 와 닿지도 않는 이야기를 하거나. 수학도 버거운데 물리, 화학에도 숫자가 등장하는 게 무서워 문과를 택했다.

그런데 예전에 <바이러스 행성>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 와 과학이란 게 사실 엄청 재밌는 거구나. 인간과 세계를 탐구하려면 과학을 꼭 알아야겠구나. 문과, 이과라는 구분이 쓸 데 없는 줄은 알았지만, 그걸 넘어 우리에게 너무나 해로운 거구나. 관점을 차단하고, 경험과 상상력을 차단하는구나.

그때부터 눈에 드는 과학분야 대중서나 sf도 반갑게 읽었던 것 같다. 성격 탓인지 가치관 탓인지 나는 자꾸 돈도 안 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본질적인 걸 탐구하려는 습성이 있는데, 그 습성과 취향의 레이더에 들어맞은 것 같다.

책 내용으로 돌아가, 그래서 우리 인류가 살고 있는 이 행성에 6번째 대멸종이 찾아올 것인가? 라는 질문을 조금 생각해보자.

저탄소를 외치지만 어느 국가도 나서지 않는 지금 21세기 초반, 땅속에 매장됐던 태곳적 탄소를 다 태워버리는 우리 인류에게 대멸종은 너희가 저지른 일을 돌려주기라도 하듯 찾아올 것인가? 지금 우리는 멸종으로 가는 급행열차 티켓을 쥐고 있는 것인가?

결론은 어떨까?

책에서 보시길 ㅋ

개인적으로 양장본은 역시 별로지만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다.

그리고 책에 대한 설명은 작가가 서문에서 아주 정확히 해놨다.

“해체된, 그리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퍼즐 조각을 이어 붙이려 애써온 사람들의 독창성에 대한 지독히 불완전한 증언이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아득히 먼 시간의 생소한 지형에 대한 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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