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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ee 리뷰

더 많은 여성 전문가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

<뼈가 들려준 이야기>를 읽고

by hee

뼈가 있는 박물관에 가거나 뼈 그림 같은 걸 볼 때, 정말 신기한 건 기본적으로 인간이든 새든 고래든 뼈구조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팔에서 손가락까지 이어지는 기본구조, 골반에서 발까지 이어지는 기본구조가 엄청 닮았다. 어떻게 생겼고 몇 개냐 근육이 어떻냐 따라 걷거나 헤엄치거나 손으로 뭘 잡거나 하는 게 달랐지 기본적으로 구조는 같았다. 사실 뼈뿐 아니라 배아만 보더라도 인간과 다른 동물들이 너무 닮아 있어서 놀라울 따름이다. 진화란 무엇인가.

막연히 우리를 둘러싼 것들 중 가장 근원적인 것, 본질적인 것에 대해 동경한다. 과학 책을 읽는 이유는 거의 그런 이유다. 내가 생활하고 존재하는 아주 작은 영역을 넘어 더 큰 세계를 알고 싶고, 더 본질적인 작동 원리가 궁금하다. 또 이런 세계들을 알고 나면, 내가 속한 세계의 많은 문제들이 아득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ㅎ 내가 겪는 어려움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온 인류가 역사적으로 겪어온 것이며.. 나는 이 생태계에 존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물이라고.. 겸손해지고 또 세상을 달리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우주, 진화, 뼈.. 이런 것들에 호기심이 많다.

이 책도 이런 단순 호기심에 집어들었다. 법의인류학자 진주현 박사가 쓴 뼈에 대한 책이다. 그녀는 미군 전사자들의 유해를 조사하는 일을 한다. 뼈를 통해 신원을 밝히는 일. 생전 dna가 없는 경우 확인이 어려워 안타까운 경우도, 60여 년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뭉클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다.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면서도 저지는 굉장히 흥미롭게 뼈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 몸 속에 있는 뼈가 어떻게 자라고 기능하는지부터 생물의 진화와 인류의 세상사에 대해서도 뼈 이야기 하나로 포괄한다.

소재가 광범위해 그중 인상 깊었던 부분 한 개만 꼽자면, 이 책을 읽다가 갑자기 임신, 출산과 관련된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현재 뱃속에 있는 봄이의 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출산을 하고 모유수유를 하면 내 뼈에 뭔 일이 왜 일어나는지 등.

그중에서도 가장 놀랐던 건, 아시아인이 골반이 작아서 아이 낳고 회복하는 데 더 오래 걸린다는 게 과학적 사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이 얘기를 어디서 들었을 때 그럴싸하다고 생각하고 나도 모르게 ‘음 그렇겠거니’ 한 채로 잊었다.

저자도 임신 중에 그게 궁금해서 논문을 뒤져봤지만 과학적 근거를 찾지 못 했다고 한다.

더불어 이 ‘카더라’와 쌍으로 돌아다니는 ‘아시아 아기들 머리가 작다’는 것 또한 근거가 없다고.

“정말로 골반이 작은 아시아인 엄마가 큰 머리의 아이를 낳는다면 현대 의학이 발달하디 이전에는 자칫하면 한 인종의 멸종까지 불러올 수 있는 심각한 문제였을 텐데 과연 이게 말이 될까?”

그렇다 말이 안 된다. 그런데 뭔가 ‘여자는 공간지각력이 떨어져서 운전을 잘 못 해’ 같은 개소리처럼 왠지 과학적으로 그럴싸하게 들려서 의심도 안 했던 그런 것이다. 뭐든 과학적으로 의심해보고 자료도 찾아본 뒤 판단해야.. 최근엔 임신 콘텐츠를 찾자면 자꾸 태교만 걸려서 연구된 게 있는지 찾아보는데 특별히 검증된 사실은 없는 것 같았다. 문제가 많어

개인적으로 관심 분야에 닿아 있기도 했지만, 이는 이 콘텐츠를 더 훌륭하게 만드는 점이라고도 생각한다. 여성 저자가 여성의 관점에서 의문을 갖고 본인의 전문성을 활용해 사실을 추적했다는 것. 꼭 여자들을 위한 어떤 걸 만든다기보다, 그냥 자신의 자리에서 경험을 나누는 여자가 많아진다는 것 그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다. 더 많은 여성 전문가가 더 많이 자주 글을 써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서문에 보면 출판사 제안으로 시작했다고 하던데 그 편집자 분도 한번 만나뵙고 싶을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

+

리디셀렉트 꾸준히 쓰고 있는데 이런 훌륭한 구간을 발견해 바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다.


#뼈가들려준이야기 #푸른숲 #진주현 #책스타그램 #임신5개월 #리디셀렉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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