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에디터가 하는 일 1
나는 어떻게 콘텐츠 에디터가 되었나에 이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좀더 정리해보려 한다.
지난 글에서 콘텐츠 에디터란 게 아직 직업 시장에서 명확히 정의된 것 같지 않다고 했는데, 개념이 이렇게 추상적일 때는 오히려 콘텐츠 에디터라는 이름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일을 들여다보는 게 좋을 수 있다. 똑같이 콘텐츠 에디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나와는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매체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속해 있는 회사가 이 직군과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기타 여러 변수가 있다.
에디터가 도대체 뭘까? 사실 개인적으로는 콘텐츠 에디터라는 이름보다는 콘텐츠 기획자라고 하는 게 덜 어색하다. '에디터'라는 이름이 나의 일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기 때문. 에디터는 주로 텍스트 편집과 관련되어 있다. 물론 영상 편집자도 에디터로 불린다. 뭔가를 편집하는 사람들이긴 하다. 글을 편집하기도 하고, 어떤 관점을 편집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이전 글에서도 썼듯이 국내에서는 출판쪽 에디터들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편집자로, 매거진쪽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 에디터로 불리는 경향이 있다. 또 논설위원 같은 사람들을 에디터라고도 한다. 영상 편집자들 또한 에디터라고 부를 수 있고, 매거진뿐 아니라 뉴스 편집인도 에디터다. 디지털 편집도구도 에디터라고 부른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브런치도 일종의 에디터다. 이런 것들이 보통 에디터라 불린다.
그럼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속해 있는 플랫폼에 어울리는 콘텐츠를 기획한다. 그 콘텐츠는 글이나 강연/모임이라는 결과물로 나온다. 내가 속한 플랫폼은 일과 산업의 변화, 트렌드를 다룬다. 그래서 나도 각 분야의 일과 산업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우리 플랫폼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찾는다. 결과물은 글이기도 하고 강연이기도 하다. 10명 안팎의 아주 작은 강연이기도 하고 200명 안팎의 컨퍼런스일 때도 있다.
글 기획과 강연/모임 기획은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다르다. 결과물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 먼저 이번 챕터에서는 글 기획에 대해 정리해보겠다.
기본적으로 에디터들은 직접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아니다. 물론 글을 쓰는 에디터들도 당연히 있다. 일을 하면서 글쓰기 능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데 좀 더 본질적으로는, 글이라는 최종 제품을 내놓는 데 필요한 제반 과정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이 글이 노출될 매체의 성격, 그 매체 혹은 글의 타깃을 고려해 다양한 의사결정을 한다. 어떤 사람을 우리 플랫폼에 데려와 글쓰게 할지, 어떤 주제가 우리 플랫폼에 어울릴지, 그 주제를 어떻게 풀어내는 게 좋을지, 발행 분량, 주기, 이미지 등을 결정하고, 이 일을 함께해줄 디자이너, 때로는 개발자나 퍼블리셔와 소통한다. 마케터나 플랫폼 운영자와도 이슈를 공유한다. 데려온 사람을 실제로 글쓰게 하기 위한 동기부여, 커뮤니케이션도 에디터 몫이다. 해당 계약건과 관련해서는 계약 내용도 잘 파악해야 한다. 해당 계약의 본질이 무엇인지, 작가가 어떤 것들을 이해하고 컨펌해야 하는지를 알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발행 이후 작가의 요구사항과 플랫폼의 니즈를 조율해야 한다.
일례로 최근에 기획하고 만들었던 <협업의 원칙 : 에어비앤비에서 배운 함께 일하는 법>으로 설명해보겠다.
우리 플랫폼은 일과 산업의 변화를 다루는 미디어다. 누구는 서비스라고 하지만 난 아직까진 미디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든 서비스든 여튼 나는 이 서비스가 재료로 사용할 콘텐츠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일하는 중이다. 일과 산업의 변화라니, 얼핏 매우 광범위하지만, 또 이 정체성 내에서 신선한 아이템을 찾아내는 게 콘텐츠 에디터의 능력일 것이다.
아이템은 어떻게 찾나?
나는 한 세 가지 정도의 방법을 쓰는 것 같다.
1. 전반적인 트렌드에서 발견한다.
2. 관심 주제 중에서 트렌드를 발견한다.
3. 흥미로운 인물의 스토리를 발견한다.
위 콘텐츠 <협업의 원칙 : 에어비앤비에서 배운 함께 일하는 법>의 경우는 3번에 가까웠다. 저자는 플랫폼 내 다른 기획으로 만나게 됐다. 그 사람의 개인적 스토리도 매력이 있었고, 배경, 그간 해온 일도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따로 만나 이야기를 더 나눠봤다. 우리 플랫폼에 맞게 정리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스토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흥미를 넘어, 글로벌 기업 에어비앤비가 일하는 법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우리 플랫폼의 타깃이 관심을 가질 만하다고 생각했다.
저자들이 흔쾌히 함께 만들어보기로 결정해주었고, 그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기획안 초안을 작성해 팀에 컨펌을 받았고, 그러면서 저자들과도 다시 논의하며 세부 목차를 잡았다.
시작 하기 전 나름의 목표가 있었다. 나는 저자들이 몸담고 있었던 회사의 이야기, 즉 에어비앤비에 초점을 맞췄다. 그중에서도 그 두 사람이 크게 감동했던 에어비앤비가 일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조직문화'라는 단어보다 더 편안한(?) 단어를 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저자들이 단지 이 회사에 몸담았다는 것 이상의 정체성을 이 글을 통해 획득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즉 '에어비앤비에서 일했던 사람'이 아니라 '에어비앤비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함께 일하는 방법에 대해 잘 알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하루 날을 잡아서 약 2시간 동안 목차를 다 정리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협업의 원칙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고, 저자들도 동의했다. 협업의 원칙을 키워드로, 저자들이 이에 관해 떠오르는 에피소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거기서 또 키워드를 꼽아 7가지 원칙으로 정리했다. (최종적으로 6가지 원칙으로 정리, 발행됐다.) 각 원칙 당 1개 챕터씩 할애해 작성하기로 했다. 그에 더해 프롤로그, 즉 이 글을 왜 쓰게 됐고 누구에게 어떤 영향이 있길 기대하는지를 담은 글을 작업 맨 마지막에 작성해, 총 8개 챕터로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분량은 플랫폼이 권장하는 기준이 있어서 따로 고민하지는 않았다. 1챕터당 7천자 안팎. 1만자까지 가능.
저자들은 각각 원칙 키워드에 들어갈 에피소드와 메시지를 뼈대로 놓고 글 작성을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함께 작업하는 저자들에게 분량은 크게 개의치 말라고 말한다. 초안을 빠르게 보내주는 게 가장 좋다. 분량은 추가 취재를 통해 더하거나, 편집과정에서 덜어낼 수 있으므로 내가 도울 수 있는 영역이다. 전문 라이터들이야 한정된 분량 안에서 효과적으로 글을 써내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너무 빡빡하게 기준을 세우면 오히려 글을 작성하는 행위 자체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긴 글을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동기부여나 작업의 만족도 등을 고려하면 저자들이 부담을 가지지 않는 게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 좋자고 하는 일이 괴롭지 않기를 바란다.
글을 받은 이후에는 말 그대로 편집을 한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고 있는지를 판단해, 메시지가 더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을 저자와 공유한다. 어떤 사례를 어떻게 더 추가하면 좋겠는지, 어떤 부분은 어떤 식으로 더 설명되면 좋겠는지, 어떤 자료가 필요한지 등을 큰 틀에서 피드백한다. 문단을 재배치하기도 하고, 추상적인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래퍼런스를 찾아 공유하거나 직접 사례를 작성해 공유하기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글이 어느 정도 방향을 잡고나면, 디테일한 피드백을 한다. 비문을 찾거나, 문장을 더 매끄럽게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오탈자도 잡는다. 또 표기 사항이 통일되어 있는지 살핀다. 예를 들어 회사 명을 '에어비앤비'라고 말하다가 갑자기 'Airbnb'라고 표기하지 않는지, 어디서는 '퍼센트'로, 또 어디서는 '%'로 표기하고 있진 않은지 이런 디테일을 살핀다. 타깃을 고려해 영문을 병기하거나 주석을 달아야 할 부분이 있는지도 살핀다. 이미지를 요청해 어디에 이미지를 배치할지 결정하고, 이미지 설명을 요구하거나 직접 작성 혹은 편집한다.
이 과정에서 실제 발행되는 일정을 고려해 디자이너와 약 1달~2주 전에 이미지 컨셉을 협의한다. 어떤 콘텐츠이고, 저자는 누구고 어떤 내용인지, 이미지에 담겼으면 하는 최소한의 요구 사항이 있는지, 이런 내용과 원고를 디자이너와 공유한다.
플랫폼마다 마케터와 공유하는 시점도 있을 것이고 공유 내용도 요구사항마다 다를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마케터와 일정 시간 이전에 디자이너와 공유한 만큼의 내용을 공유하고 마케팅 플랜을 잡는 게 좋다. 그런데 우리 플랫폼에서는 여러 이유로 그게 잘 이뤄지는 편은 아니고, 발전하는 단계라서 변동이 좀 많은 편이다. 또 한 권 한 권의 판매가 중요한 출판 마케팅과 달리, 구독 플랫폼 특성상 고려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서 마케팅 관련 오퍼레이팅 플랜과 콘텐츠 릴리즈 플랜을 따로 잡기도 한다.
원고가 이렇게 마무리되고 나면, 플랫폼 에디터에 입력한다. 책은 디자이너가 인디자인을 통해 본문 레이아웃을 잡고 텍스트를 얹은 뒤 인쇄 전까지 반복적으로 교정교열을 본다. 그런데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은 디지털 플랫폼이므로, 인디자인이 아니라 플랫폼 에디터에 에디터가 바로 입력한다. 그래서 발행 전까지 계속 교정교열을 볼 수 있고, 발행 후에도 수정이 어렵지 않다. 플랫폼 에디터는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브런치나 네이버 블로그처럼 디지털 상에 글을 쓸 수 있도록 마련된 툴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텍스트 콘텐츠를 발행한다.
이 과정을 전부 다 내가 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때로는 중간 과정에 편집, 교정교열, 에디터 입력을 함께할 객원 에디터가 함께하기도 한다. 객원에디터가 담당한다고 해서 본 기획자의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객원에디터와 함께할 때 신경 써야 하는 것도 몇 가지 있는데 이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정리해보겠다.
만약 이 글이 내가 우리 플랫폼에서 만드는 글이었다면, 독자가 이탈하지 않고 잘 읽을 수 있도록 부제목을 나누고 이미지를 넣고, 강조할 부분을 편집했을 것이다. 글 구조를 다시 잡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단지 내 일을 정리해보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므로, 그런 노력까지는 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내일 출근해 봐야 할 원고가 산더미이고, 거기에 내 에너지를 아껴두어야 한다.
지금까지 정리한, 텍스트 콘텐츠를 기획하는 과정 중에서 몇 가지 빠진 내용들도 있는 것 같다. 기획안 작성, 제목 결정, 카피와 상세 설명 작성 등. 이 작업도 매우 중요한 작업인데, 기회가 되면 또 써보겠다. 조금만 썰을 풀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카피 작성을 일종의 퍼즐이라고 생각한다. 커머스에서 쓰는 카피나 유엑스라이팅에서의 카피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기도 하다. 기존의 대형 광고기획사에서 하는 광고 카피와는 또 다르다. 하여튼 나는 내가 하는 카피 작성은 크리에이티브라기보다는 고도의 지적인 퍼즐이라고 생각한다. ㅎㅎ 또 기회가 된다면 콘텐츠 에디터로서 내가 보고 배웠던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대해서도 정리해볼 수 있음 좋겠다. 뭐가 이렇게 많나ㅎㅎ
우선 다음에 작성할 내용은 강연/모임 기획에 관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