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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 Feb 04. 2021

외할아버지의 등 맛을 기억하는 섬세한 남자의 고백

책 <나만 이렇게 사는 건 아니겠지> 리뷰

김승의 책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의 표지


저자 김승과는 좀 신기한 인연이 있다. 나는 김승이라는 사람을 두 번이나 아주 묘하게 만나 지인이 됐다.


첫 만남은 약 10여년 전, 한 인디밴드 레이블이 주최한 작문 대회(?) 수상자 뒷풀이 모임에서였다. 작문 대회 심사위원으로는 나름대로 김중혁 작가, 성기완 작가도 있었다. 당선(?)되면 음반 여러 개와 술과 고기를주는 대회였다. 다시 생각해도 이상한 모임이다. 그날 고깃집과 그에 이어진 2차 술자리에 작가들과 레이블 사장, 인디밴드 뮤지션들 몇명도 왔다갔고 김승과 나 외에도 수상자 몇 명이 더 있었다. 나는 <서울, 서울, 서울>이라는 컴필레이션 앨범과 관련해 서울에 관한 단상을 적어보냈고 가작인지 장려상인지 하여튼 보상이 좀 적은 축으로 턱걸이 당선이 됐다. 김승은 1등이었다.


나는 아마도.. 초장부터 취해 있었다. 말이 별로 없는 김승보다는 다른 수상자나 옆에서 같이 취해 있던 모 인디밴드 보컬과 티격태격하는 데 시간을 썼던 기억이 난다. 김승이 1등이었다는 데 잠깐 관심을 보였고 글을 보여달라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의 글을 읽고 과연 1등 답다고 느꼈던 기억이 있는데, 정말로 읽었는지 아니면 당시는 거의 항상 취해 있었기 때문에 착각한 건지 잘 모르겠다. 그날 이후 김승도 그 인디밴드 레이블도 작문대회도 전부 잊고 살았다.


그러다 약 4년 전,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데, 대표가 자기가 꼭 뽑고 싶은 사람이 있다며 그 사람의 포트폴리오를 봐달라고 했다. 김승이었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김승과 전혀 다른 모습이 있었다. 대형 광고기획사  소속 인턴이었나, 하는 지위로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있었고, 한껏 자신감 넘치는 키 큰 청년이 위트 있게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대표에게 그와의 인연을 들려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승은 사무실 옆자리 동료가 됐다.


같이 일하는 동안 알게 된 그는 할줄 아는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 다기능인이었다. 무척 예민하고 섬세했고, 그런 문장을 썼다. 하지만 시장의 요구에 관해서는 자신의 어떤 본질을 아주 빠르게 체념하고 포기했다. 조용한가 싶다가도 가끔 치고 들어오는 농담이 웃겼다. 의외로 남성적인 면이 있어 놀랄 때도 있었는데 그 모습과 달리 매우 섬세해서 놀랄 때도 많았다. 무슨 주제를 꺼내도 대화할 수 있기도 했지만 속을 알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밝은 날도 어딘지 그늘이 있었고, 어둡나 하면 또 해사했다. 그러니까..참 다양한 면이 있었다. 본질은 굉장히 예민하고 섬세한데 그런 채로는 세상이 편하게 놓아두질 않으니 생존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책에서 “연기를 하지 않고 사회화를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중략) 모든 이가 좋은 배우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하다”라고 썼다.


에세이에서도 자기 자신과 세상의 충돌 때문에 생기는 딜레마들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프리랜서 에디터로 자신의 클라이언트 중 가장 큰 곳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면서도, 지하철 교통비만 들여 집밖에 나와 글 하나 완성한 가성비에 만족한다. 악착같이 좋은 사람이 될거라고 다짐하면서도, 때로는 자기 삶이 버거워 거미의 삶을 연민한다.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라고 툭 던져놓은 독백에 공감이 되는 이유다.


하지만 그를 좀 더 독특하게 만들어주는 건 섬세함이다. 그는 형이라는 이유로 각종 처음을 경험해 동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바람에 동생의 처음을 빼앗은 게 아닌지 걱정하고, 어린 시절 빨아대던 외할아버지의 등 맛을 기억할 만큼 만큼 섬세한 사람이다. 세상 속에 서성이면서도 이 섬세함 때문에 개성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문에 스스로를 응원하는 힘을 얻는다.


내가 어떻게 타인의 모든 면을 이해하고 정의할 수 있겠나. 다만 신기한 인연으로 만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 밥벌이 현장을 공유하며 지켜본 지인으로서 언제나 그의 행복을 바라고 응원할 뿐이다. 조금 늦었지만 에세이 출간을 축하한다. 독립출판을 해버리고 출판 시장에도 당당히 흔적을 남긴 용기와 추진력에서 나는 그가 스스로 내리는 평가보다 더 큰 에너지를 읽는다. 그리고 김승이 소설을 쓰면 좋겠다. 에세이를 읽고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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