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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ee 리뷰

한국 장르문학계가 주목한다는 송시우 작가의 책 4권

앞으로도 기대되는 작가!

by hee

송시우 작가의 <달리는 조사관>을 처음 읽고, 리디셀렉트에 있는 작가의 책을 전부 다 읽었다. 이 작품 외 기출간된 장편은 플랫폼에 다 올라와 있는 것 같다. <라일락 붉게 피던 집> <검은 개가 온다> <대나무가 우는 섬>까지 4권. <달리는 조사관>은 단편 연작이고 드라마로도 방영됐다.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영화, <검은 개가 온다>도 드라마화 된다고.


순식간에 이야기에 빠져들어 끝까지 읽을수밖에 없고,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작가가 주목하는 단면들이 잘 녹아 있다. 앞으로도 계속 작품이 나오면 좋겠다. 정신없이 읽었네. 앞으로도 계속 기대된다!


제목에는 “한국 장르문학계가 주목”이라고 쓰긴 했지만.. 그냥 재밌는 이야기를 읽고 싶은 내 입장에서는 문학계를 구분하는 건 특별히 큰 의미가 없다. 출판사 홍보 문구를 가져다 붙였다.


4권에 대한 감상은 짧게 남긴다.


1. 달리는 조사관

‘인권증진위(줄여서 인권위)’라는,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가상의 조직에서 활동하는 조사관들의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은 가상공간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국가인권위원회와 비슷하다. 실제로 작가도 거기서 일한다고 한다. 형사도 아니고 변호사나 검사도 아니고 탐정도 아니고 인권위 조사관이라니 너무 특이하잖아. 게다가 인권위는 수사기관, 사법기관이 아니어서, 무엇을 어떻게 조사해 어떤 결론으로 풀어갈지도 기대됐다.


리디셀렉트에서 캡처한 <달리는 조사관> 표지


이 특이한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이는지가 최고 기대 포인트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등장하는 사건보다도 직업인의 면모와 내적 갈등이 재밌었다. 어떤 사명감 넘치는 일을 하든 조직은 조직이라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크고작은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한 명의 유능하고 막 천재적이고, 하지만 어딘지 하자가 있어 연민까지 자극하는 탐정이나 형사가 사건을 휙휙 해결하는 게 아니라, 언젠가 만나봤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적당히 사명감도, 직업적 권태나 고뇌도 있는 인물들이 등장해 좌충우돌한다. 사법기관이 아니어서 겪게 되는 한계선에 관한 고민도 담겨 있다.


2. 라일락 붉게 피던 집

한 유명 작가/강연자가 30년 전, 7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살던 80년대 한 다가구 주택에서의 삶을 추억하다, 당시 벌어진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알게 되고, 당시 그 주택에 성인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조각을 맞춰가면서 사건의 진실을 알게되는 이야기다. 두 군데 정도 의아한 부분이 있었지만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기억이란 게 얼마나 단편적이고 피상적일 수 있는지. 나한텐 추억이지만 타인에게는 악몽일 수 있다. 내 추억 속 공간과 인물에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게 됨.

리디셀렉트에서 캡처한 <라일락 붉게 피던 집> 표지

흥미로웠던 건 여자 주인공에 대한 독자 평가였는데. 플랫폼에서 주인공이 비호감이라는 리뷰가 많았다. 몇몇 행동이 ‘이 사람 참 자기중심적이네’, 하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캐릭터의 성격이라고만 생각했고 특별히 비호감이라고 느끼진 않았다. 그래서 좀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됐다. 혹시..성공한 여성 주인공 캐릭터가 좀 낯선 것인가.. 보통 범죄 소설에 나오는 탐정이나 형사들 중에도 자기중심적이고 과거 가족에게 대형 민폐를 끼쳐 거리를 두고 산다거나 뭐 그런 게 많은 것 같은데 그들이 비호감은 아닌 이유는.. 먼가 사랑하는 과거 여자, 가족에 대한 어떤 소프트스팟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자신의 욕망을 좇아 직선으로 나아갈 뿐 그런 개인적인 소프트스팟이 없어서 비호감으로 느껴지는 건가.. 뭐 사랑하는 남자라도 구했어야 안 비호감인 걸까.. 그런 복잡한 생각을 했다.


3. 검은 개가 온다

네 권 중에서 가장 재밌었고 또 읽으면서 심연으로 빠져드는 것 같아서 가장 힘들었다. 검은 개는 우울증을 뜻한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자신이 앓던 우울증을 “내 평생을 따라다닌 검은 개가 있다”고 빗댄 데서 유래했다고.

리디셀렉트에서 캡처한 <검은 개가 온다>의 표지

소설은 “전학수는 너무 수줍어서 라상표를 죽였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최근에 이거보다 인상적인 첫 문장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같잖아… 이 단호하고 시크한 문장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단호하고 시크하기보다 복잡미묘하고 무거운 소용돌이로 직진.. 우울증을 둘러싼 두 건의 죽음이 맞물리면서 내달린다. 이 질병이 침투한 한국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우울증에 관한 정보도 많아 르포 같은 느낌도 난다. 대립하는 두 주인공 캐릭터도 인상적이다. 등장인물들의 배경에는 현대판 계급 갈등도 녹아 있는데, 결국엔 그게 또 사회의 우울증을 낳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이코패스 또라이 캐릭터로 계급갈등에 관한 담론은 조금 상쇄되는 듯. 읽으면서 내가 우울증 올까봐 좀 조마조마했다.


4. 대나무가 우는 섬

소위 고전 추리소설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종류의 소설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같은.. 고립된 공간에 사람들이 초대되고, 거기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그리고~> 처럼 여러 사람이 죽진 않음), 그 살인이 도대체 어떻게 벌어진 건지 추리해나가는 이야기.


통영에서 배를 타고 1시간 들어가야 하는 호죽도라는 섬에 새로 만들어진 연수원을 미리 경험해보고 리뷰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각자 안면이 없는 8명이 초대된다. 연령은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 성별도 골고루. 그나마 몇몇은 대중예술계 종사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은 추리 대회에서 상을 받은 여성 대학생 물리학도.

리디셀렉트에서 캡처한 <대나무가 우는 섬>표지

나는 트릭에 심취하는 취향은 아니어서, 그 부분에 대해 뭔가 감상을 가질 입장은 아니다. 그냥 아 그렇구나 하면서 재밌게 읽었음. 오히려 소위 '사회파'라는 부분에 흥미를 갖는 서타일이라.. 40년 전 군사정권 시절 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 작은 섬에서의 살인 사건과 현재의 살인사건이 중첩되어 전개됨. 추리 고전이라고 하는 건 애거서 크리스티나 엘러리 퀸 뭐 그런 먼 나라 사람들 거밖에 읽어본 적이 없어서, 배경, 설정에 한국 현대사가 녹아 있는 것부터 흥미가 갔다.


주인공 캐릭터는 좀 아쉬웠다. 추리 대회에서 상을 받은 여성 대학생 물리학도라는 설정이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의 자격과 능력을 주긴 했지만 그 이상 인물로서의 매력이 부족했던 점이 아쉽당. 흥이나면 춤을 춘다든지, 직설적이라든지 하는 캐릭터가 있긴 했는데 그런 게 좀 더 잘 드러났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좀 있었는데 그런 건 어떻게 하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 이름에 어떤 특별한 감상을 많이 가져본 적은 없는데, 송시우 작가 소설은 주인공들의 이름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지는 전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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