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향형 인간의 농담> 리뷰
내가 아는, 자칭 ‘다목적 프리랜서 배우’인 <자이언트 펭TV> 작가 염문경은 인터넷의 뇌내망상적이고 편협하고 지저분한 댓글을 외면하지 않고 굳이 다 읽어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러고는 사람들이 도대체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를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공부하고, 이해한 바를 끝내 자기 언어로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스스로 ‘강하지 않다’고 하지만 불편한 현실도 온전히 직시하는 것만큼 강한 게 어디 있나. 내가 다치는 게 싫어 세상을 전부 외면해버리는 나약한 나로서는 너무도 큰 인물 같아 보이는 것이다.
염문경의 그런 습성은 결국 삶의 태도에도 녹아들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개척해야 하는지 업계 바깥 사람들은 도통 모르는 배우의 길, 작가의 길에서 넘어지고 분노하다 보니 그 습성이 더 강화된 건지도 모른다. 그는 계속 어떤 불편한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뛰어들어 곱씹어댔다. 딱히 싸워야겠다거나 용기를 내야겠다거나 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냥 참을 수 없어서, 궁금해서, 외면하지 않고 자기 길을 걸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원칙을 단단히 만들어나갔다.
“사실은 아이처럼 이기적으로 뜨거워지고 그만큼 금방 지쳐 타버리는 스스로를 알고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나를 더 솔직하게 똑바로 보고, 비웃어주고, 위로하려 노력했다. p.10”
그 궤적이 책 <내향형 인간의 농담>에 담겼다. 책의 첫인상은 마치 지나가다 툭 던져본 농담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균형을 찾으려는 한 영민한 작가 겸 배우의 치열한 분투기다. 정말 너무 많이 고민하고 곱씹었기에 이제야 조심스레 농담처럼 꺼내놓을 수 있었던 이야기다. 문장 뒤에 놓인, 가끔 너무 황당한 실제 경험담이 그의 치열함을 증명한다.
책에는 펭수를 만들며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농담’이라는 유니콘을 창조하려 고민했던 흔적부터, 배우로 활동하며 경험한 성추행 고소 사건, 상기된 얼굴과 구취가 인상적인 채로 ‘로봇 섹스’를 말하던 감독 새끼에 관한 기억, 연기에 관한 고민 등이 골고루 담겼다. ‘펭수’라는 대중적 캐릭터의 작가라는 점이 마케팅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사실 이 사람의 글이 가장 빛나는 지점은 경계에 대한 감각이 담긴 곳이다. 그는 흑과 백으로 딱 떨어지는 세계가 아니라 경계가 너무 불분명해서 혼란한 세계를 꾸역꾸역 포착하고, 균형감을 갖기 위해 분투한다. 거기서 굉장히 생동감 있고 솔직하고, 조금 아픈데 공감가는 포인트가 쏟아져나온다.
81페이지 ‘어떤 일의 최전선에서’에 그런 감각이 잘 드러난다. 그는 이 장에서 위계폭력과 가스라이팅을 당하면서도 그런 줄 몰랐던 경험을 짧은 소설을 빙자해 털어놓으면서, 피해자다움에 대한 허상과 위력의 실체를 밝힌다. 이 짧은 소설의 주인공인 여배우는 연출가 A에 의해 ‘매일 연습 후 둘만의 만남을 갖는’ 사이에 가둬진다. A는 종종 주인공을 다른 배우들에 비교해 치켜세우며 우월감을 주입했고, 한 번씩 큰 망신을 주거나 몰아붙이면서도, 술에 취해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도 한다. 이제 막 연극 판에 뛰어든 주인공은 “A의 말을 듣다 보면 예술이라는 전장의 최전선에서 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게 아닐까” 망설이고, 괴팍한 연출가가 아닌 자신이 잘못된 건 아닐까 의심하는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이 상황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를 가정해본 현실은 가혹하다.
“만약 그게 술자리였다면, 거기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고, 내가 피해를 주장했다면, 아무도 날 믿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A와 ‘매일 연습 후 둘만의 만남을 갖는’ 사이였을 테니까.” p.85
이 짧은 소설에 관해 염문경은 “욕망과 열등감을 품은 젊은 존재들이 어떤 피해와 가해의 다이내믹 속에 놓이는지를” 이야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A의 편애를 받아들이고 이용한 자신이 위계 폭력을 말할 수 있는 것인지, ‘피해자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한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그는 기어코 위력의 실체를 읽어낸다.
“그것이 위력의 실체다. 위계의 낮은 곳에 위치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검열하게 하고, 적극적으로 순응하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이었다고 믿게 만드는 것. 발화의 자격을 의심하게 하는 것. 바보 같은 선택을 했던 스스로가 미워서 오래 앓다가, 남들이 보기엔 얼토당토않게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닫게 하는 것.” p.93
이 사람의 균형감이 더욱 빛나는 부분은 이 통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기 자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부분까지 이어진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위력을 행사할 수 있다. (중략) 조심하지 않으면, 앞에 앉아 내가 사준 커피를 마시는 누군가가 억지로 웃는 건지 아닌지도 못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러니까, 조심하는 일뿐이다. (중략)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힘, 눈치 보지 않아도 상관없는 권력이 내게만 쥐어질 수 있음을 모르는 게 오히려 나쁘다.” p.94
대중적인데 정치적인 배우이자 작가. 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지금의 그는 그런 길을 걸어왔다. ‘되고싶은 것’보다 ‘하고싶은 것’에 집중한 결과다. 그래서 생동감 있다. 원래 우리의 모든 생각과 기록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그런데 상업 영역에서는 그게 마치 무를 두 쪽으로 가르듯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한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렇게 단순해 보인다면, 단지 잘 포장된 일면만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이 사람이 걸어온 길은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그 모습을 드러내길 두려워하면서도, 그 두려워하는 마음조차 종국엔 숨기지 않을 만큼 솔직하다. 이 놀라운 균형감이 어떻게 진화하게 될지 앞으로도 기대된다.
염문경은 (아마도) 2009년 경부터 나의 지인이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어쩐지 ‘내향인’으로 동질감을 느끼는, 끈끈하진 않지만 언제든 갑자기 진지하게도 웃기게도 만날 수 있는 안전한 친구가 됐다. 그가 나를 언니라고 부르지만 나는 사실 내가 언니라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다. 그냥 한국에 살다 보니 학번이 높다는 이유로 언니로 불리고 있을 뿐 그저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며 고민도 응원도 연민도 나누는 동년배 친구라는 게 내 생각이다.
책에 나오는 몇몇 경험과 고민들은 사석에서 들었던 적도 있다. 나는 그런 경험을 듣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방관자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그도 그의 무대 안에서 스스로를 방관자라고 부끄러워 했다. 그런데 난 방관자라고 자책하는 데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은 반면, 그는 목소리를 내고 고민의 흔적을 남기고 단단히 뿌리내림으로써 존재감을 만들었다. 그런 이 친구가 참 자랑스럽다.
휴직 중이라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는 이 고요함이 너무도 편안한 중증(?) 내향인인 나도, 핵노잼에 쓸데없이 진지하기만 하고 표현은 잘 못하는데…그래서 말로는 못 전하고 글로 전한다. ”본질이 아닌 것에 압도당하거나 흔들리지 않기를 기도”하는 너를 언제나 응원하고, 사실은 너는 그렇게 될거란 걸 나는 이미 알고 있다고.
천천히 읽으려고 했는데 첫장 읽자마자 끝장까지 그냥 쭉 내달리고 말았다. 무슨 실없는 농담이 나올까 기대하고 편하게 누워서 읽다가, 밑줄을 치려고 연필을 집어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