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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 Apr 02. 2021

데이비드 핀처가 재현한 최초 프로파일러의 세계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인드 헌터> +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웰메이드 스릴러가 보고 싶었다. 잔혹한 장면이 많거나, 드라마틱한 반전의 반전이 많아 자극적인 재미가 있는 시리즈보다 이야기 짜임새가 탄탄하고 독창적인. 책이든 영상이든 스릴러를 즐겨 보는 편인데, 계속 보다보면 사건이 불거지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좀 비슷비슷해서 지겨울 때가 있다. 그때 보게 된 게 <마인드 헌터>다. 너무 어두울 것 같아서 미뤄두고 있다가 1화를 열었는데, 어느새 시즌 2화 마지막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배경지식 없이 봤는데 너무 훌륭한 드라마를 만나게 되어 좀 당황했다. 그런데 서치를 하다 알게 됐다. 사실이 배경인 논픽션, 데이비드 핀처 감독, 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다. 제작하게 된 과정도 흥미로웠다. 샤를리즈 테론의 영상화 판권 구입과 데이비드 핀처와의 합심, HBO의 거절… 그리고 넷플릭스행, 호평.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인드헌터>

배경인 즉 이렇다. 1970년대 미국, 전에 없던 범죄가 등장했다. 무차별적인 잔혹한 범죄. 이전까지의 범죄는 원한, 치정, 이해 관계 등 관계가 있는 사이에서 동기가 발생했다. 수사기관은 사람이 타인에 의해 죽거나 다치면, 그 사람 주변에 어떤 원한 관계가 있었는지부터에 부터 무게를 두고 수사했다. 하지만 새로이 등장한 범죄는 피해자와 범죄자 사이에 이렇다 할 관계가 없었다. 안면조차 없는데도 잔혹하게 사람을 여럿 죽이는 범죄자들이 등장한 것. 


이 변화를 포착하고, 새로운 수사기법을 체계화한 사람이 있다. 미국 FBI의 존 더글러스. 그는 미국 곳곳에 수감되어 있는 흉악범을 몇 년에 걸쳐 만나며 그들의 패턴을 정리하고, 범죄자의 심리를 읽는 프로파일링 기법을 체계화해 전문 영역으로 만드는 초석을 다졌다. 프로파일링은 처음에는 심령술 정도로만 여겨졌으나, 이제는 법적인 증거로 인정되는 전문 기법이 됐다. 그의 회고록이 책 <마인드 헌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인드헌터>의 원작 책 표지. 존 더글러스, 마크 올셰이커 저 / 2017.11 / 비채 

이 책은 의외의 인물에 의해 영상화되기에 이른다. 헐리우드 배우 샤를리즈 테론. 그녀가 영화 <몬스터>에서 사이코패스 역할을 맡게 되며 자료 조사를 하던 중 이 책을 알게 됐고, 이 책의 영상화 판권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데이빗 핀처 감독에게 공동제작과 연출을 제안했고, 그게 실현된 것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인드헌터>다. 2017년에 시즌1의 10개 에피소드, 2019년에 시즌2의 9개 에피소드가 공개됐고 평단과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넷플릭스 <마인드 헌터>의 주인공 홀든은 존 더글러스를 모델로 한다. FBI요원인 홀든은 70년대 흉악범죄의 패턴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감지하고, 다른 FBI요원 빌 텐치와 함께 연쇄살인범들을 면담하러 다니기 시작한다. 빌 텐치 또한 ‘연쇄 살인범'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실존 FBI요원 로버트 레슬러를 모델로 삼았다. 처음엔 둘이서 움직였으나, 수사관 출신인 두 사람에 더해,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자료화 할 수 있는 웬디 카 박사가 합류한다. 


홀든은 강력범죄자들에게 범죄 사실에 관해 묻는 게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묻는다.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등. 그러다 보니 라포를 형성하기 위해, FBI 요원이라면 하지 않을 말이나 행동을 하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여성의 하이힐에 흥분을 느끼는 흉악범 에드 캠퍼에게 하이힐을 선물하는 장면이 있다. 


시즌 1과 시즌 2는 약간 결이 다르다. <마인드헌터> 시즌1은 특히 범죄 스릴러라기보다는, 프로파일러라는 전문 직업 영역의 성장기다. 처음에 FBI내에서 이들의 행보는 환영받지 못 한다. 그러나 사건 해결에 작은 영향을 미치고, 또 내부의 정치적인 필요 등에 의해 인정받는 과정을 겪는다. 이 영역의 태동과 그 필요성을 인정받기 위한 조직 내부의 인정투쟁 등이 주요 내용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 만나러 다니는 흉악범죄자들의 스토리가 범죄 스릴러적 긴장감을 더한다.  


시즌2는 애틀란타에서 발생한 아동 연쇄살인사건에 집중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로파일링이 본격적인 전문영역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시즌2는 좀 더 범죄스릴러에 가깝다. 범죄가 발생하고, 해당 범죄 간의 연관성을 찾고, 범인이 누구인가 하는 미스터리를 좇는다. 하지만 여전히 프로파일링이 사건해결에 도움이되도록 하기 위한 주인공의 노력이 중심축에 있다. 개인적으로는 시즌1이 더 재밌었다. 


시즌3은 언제 나올지 모른다고 한다. 제작이 무기한 중단됐다고. 잊고 지내다 보면 언젠가 새 시즌이 나와 있겠지.. 하고 바라 본다. 언제가 됐든 넷플릭스가 꼭 제작해줬음 좋겠다. 그 사이 책 <마인드헌터>나 읽어볼 일이다. 


더불어, <마인드헌터> 시즌3 제작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기다림에 지루한 이들이 또 읽어봄직한 책이 하나 더 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라는 국내서다. 팩트스토리 대표 고나무 작가가 한국 1호 프로파일러라는 권일용씨와 함께 한국 프로파일러의 등장과 정착기, 그 과정에서의 고뇌를 기록한 논픽션이다. 한국판 <마인드헌터>라고 할 수 있다. 팩트스토리는 논픽션 스토리를 발굴하는 회사라고 하는데, 대표로 있는 고나무 작가는 한겨레 기자 출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책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굉장히 잘 읽히고 재밌게 쓰인 논픽션이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표지. 권일용, 고나무 저 / 2018.09 / 알마

한국의 경우 <마인드헌터>에서 다룬 범죄 속성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게 IMF 이후라고 한다. 요즘엔 한국에도 프로파일링과 프로파일러의 존재가 많이 대중화됐다. 드라마 <시그널> 같은 데서 프로파일러가 등장하기도 했고, 실제 프로파일러들이 예능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기법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데는 역시 <마인드헌터>처럼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다. 직관과 경험으로 다져진 기존 수사관들의 관성, 변화에 저항감이 큰 보수적인 조직 체계 안에서 이는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다년간 현장을 드나드는 형사, 과학수사관으로서 권일용은 현장 수사관들을 설득해냈다. 책에는 그 과정이 담겨 있다. 권일용 외에도 한국에 체계적인 범죄 심리 분석을 도입하기 위해 초창기부터 활동해온 이들의 노력이 담겨 있다. 


책에서 다룬 사건들은 현대 한국의 굵직한 강력 사건들이다. 강력범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흉악범죄자들의 범행, 그들을 인터뷰한 권일용의 경험, 그 경험을 통해 프로파일링 기법을 더욱 다듬어가는 과정, 그에 따른 고뇌가 담겼다. 그 내용과 서술방식 모두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다. 


넷플릭스 <마인드 헌터> 시즌3를 기다리는 팬으로서.. 기약없는 기다림에 지쳐 <마인드헌터>를 잊기 전에 한국도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영상 시리즈물이 성사되면 어떠려나, 상상해본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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