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베이비스 : 눈부신 첫 해> 감상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모르는 세계에 던져진다면 어떨까.
아기들이 꼭 그랬다. 어느날 갑자기 등이 딱딱한 땅에 닿고, 호흡을 폐로 해야 한다. 뭔가 항상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들리고 만져진다. 손발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익숙한 내가 느끼는 세상과,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전혀 모르는 존재가 느끼는 세상의 크기는 무척 다를 것이었다. 낯설고 두렵고 어리둥절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그 입장을 상상해보니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 낯선 세계에서 나에게 한없이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 있다면 너무 고맙고 즐겁고 좋지 않을까. 양육자란 결국 그 불안하고 낯설고 스트레스 많은 세계의 안내자 같은 사람이 아닐까.
그동안 아기의 입장에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양육자가 열심히 아기를 키우기만하면 되는 줄 알았다. 도움을 준다는 생각만 해봤지, 도움을 받는 아기의 입장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5월 출산을 앞두고 아기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해 각종 콘텐츠를 접하면서 아기의 입장이란 관점을 깨닫게 됐다. 내가 일방적으로 아기를 무력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도움을 주는 것과, 아기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이런 관점의 전환을 갖게 된 데 도움이 된 콘텐츠 중 하나는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다큐시리즈 <베이비스 : 눈부신 첫해>다. 이 다큐 시리즈는 생후 1년 아기의 성장에 관한 과학적 실험과 성과를 다룬다. 여러 실험들은 아기가 아무 것도 모르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많은 기본적인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아기들이 양육자나 다른 어른들과의 관계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배워가는지도 밝힌다. 현재 시즌2, 각 시즌 당 6개 에피소드가 공개되어 있다.
각 에피소드에서는 오래 전 밝혀진 과학적 사실부터 최근 연구된 성과까지 다양하게 다룬다. 인상깊었던 몇 가지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1. 사랑 호르몬이라 일컬어지는 옥시토신이 아기를 돌보는 부모들에게 분비되는데, 이는 여성 양육자뿐 아니라 남성 양육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아기를 입양한 남성 커플을 두고 실험한 결과, 아기와 친밀함을 가진 양육자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옥시토신이 다량 분비됐다.
2. 모든 모유가 그 성분이 다르다. 각 아기에게 필요한 것이 때마다 다르게 분비된다. 여성 아기의 모유에 남성 아기의 모유보다 더 많은 칼슘이 포함되어 있다고도 한다.
3. 아기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기거나 걷는 행동을 하고, 중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인지한다. 아기가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다.
4. 아기들은 관계 맺을 준비가 되어 있다. 엄마의 웃는 얼굴에 대한 반응과 굳은 얼굴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 아기들은 엄마가 굳은 표정을 할 경우, 엄마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노력한다.
5. 아기 뇌를 스캔하기 위해 아기와 함께 mri에 들어간 학자가 있다. 아기들이 사람 얼굴을 볼 때와 풍경을 볼 때 뇌가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하기 위함이었다. 아기들의 짧은 집중력, mri의 소음 문제 등을 해결하기 여러 번의 실험과 실패를 거쳤지만 결국엔 촬영할 수 있었다.
과학적 정보도 정보이지만, 어느날 갑자기 사람으로 태어나버린 아기들의 1년 동안의 성장을 경이롭게 그려내고 있는 훌륭한 다큐멘터리다. 제목 그대로 ‘눈부신 첫 해'에 관한 다큐다. 아기를 실험과 관찰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이 작은 인류에 대한 사랑과 경외의 관점이 다큐 곳곳에 녹아 있다. 다큐의 관점을 따라 나 또한 이 생명, 이 존재 자체에 경외감을 갖게 된다. 작고 약한 것들에 관한 배려가 부족한 사회에서 굉장히 고마운 콘텐츠였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