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망치는 한국말
얼마 전 국립국어원에서 가족간 호칭 개편안을 발표했다. 남자쪽을 높이고 여자쪽을 낮추는 기존 호칭을 탈피하고 서로 동등하게 높이자는 안이 었다. 도련님을 동생님 혹은 ㅇㅇ씨라고 부르자는 개정안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여기까지밖에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그래도 국가 차원에서 호칭 문제를 공론화해주다니, 나같은 반항아에게는 좀 유리한 무기가 생겼다.
호칭 갈등은 우리 일상에 매우 뿌리 깊게 박혀서 관계를 망쳐버리기까지 한다. 그 호칭이 담고 있는 사회적 의미는,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관계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한다. 많은 가족이 겪는 문제는 이에서 기인한다. 아주 너무 사소해보이지만 너무 지독하게 사소해서 사람들의 인식을 호칭 안에 가둬버린다.
우리 사촌오빠는 동갑내기와 결혼했다. 그런데 오빠의 아내는 어른들 앞에서 그를 오빠라고 불러야 했다. 우리 올케와 내동생도 동갑이다. 심지어 올케는 생일이 빨라 나와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런데 그녀는 우리 부모님 앞에서 내동생을 ㅇㅇ씨라고 부른다.
올케와는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은 없었지만 언니는 그렇게 하는 게 “어른들이 안좋아해서”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내 문제가 아니었어서 그냥 짜증만 내고 스쳐지나갔던 일들이다. 내가 갑자기 나서서 자주 보지도 않는 엄마아빠에게 뭐라고 해봤자 나보다 그들을 더 자주보는 올케에게 좋지 않을 것이다. 사촌오빠 내외는 더더욱 남의 일이나 마찬가지. 어느 순간부터 언니는 명절에 잘 오지 않았는데 나는 뭐 그냥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명절에 자주 오지 않는 게 꼭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런데 이 황당한 일을 스스로도 겪고 보니 오기가 불타올랐다.
상견례 날의 일이다. 나는 그날 전에도 남자친구 부모님을 두 번 정도 만났는데, 두 번 다 내 남자친구를 그들 앞에서 높여 부르지 않았다. 우리는 동갑이고 가장 친한 친구다. 그래서 평소 내가 부르듯이 이름을 불렀다. 그의 부모님도 뭐라 하시지 않았다. 속으로는 어떻게 느끼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 내색도 하지 않으셨다. 상견례 날도 역시 나는 내 남자친구를 높여부르지 않고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 부모님이 상견례가 끝난 뒤 나에게 말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이름 막 부르는 거 아니야. ㅇㅇ씨라고 해야지.
어떤 사람들은 아주 비본질적이고 바보같은 이유로 사람들과 벽을 만든다. 좋은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도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서열이나 사회적 역할을 먼저 보는 바람에 그 사람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 놓고는 자기가 기대하던 그 역할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였을 때 실망하거나 뒷담화를 한다.
그런 이들은 오히려 스스로가 관계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내멋대로 판단한 뒤 그 판단과 다를 때 틀렸다고 비난한다. 그 전에 그 사람을 사람으로 대한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이 바보 같은 역할 놀이는 끝나야 한다.
이런 작은 요소들이 쌓이고 쌓여 작금의 젊은이들 사이에 결혼 거부 현상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 결혼 자체를 불편한 존재로 만들고, 갈등이 일어날지도 몰라 걱정하게 한 게 아닌가. 이런 불편함과 비합리성을 말 한 마디 못한 채 감내해내야 유지되는 결혼생활은 당연히 매력이 없지 않은가.
한국사회 가족들에게도 정상적인 관계맺기가 필요하다. 호칭을 개편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나는 나, 너는 너, 동등한 입장에서 이상한 호칭보단 아끼는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