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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근 Sep 06. 2024

여섯 번째 생각 정리

시작선은 같지 않다

 예전에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게 최고 목표라고 생각했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되는 거야말로 진정한 자아실현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하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은 정말 도달할 수 있는가이다. 


 우리 집은 엄청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 사는 것은 아니었다. 미디어에 나오는 판자촌이나 기초생활 수급자 집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우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매일을 성실히 일하셨다. 우리는 굶지도 않았고, 집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갖고 싶었던 것을 갖지는 못했다. 주변 친구들이 누리던 것을 나는 항상 누리지 못했다.  




 나는 물질적 욕구가 항상 채워지지 못했다. 모두 하나씩 갖고 있던 게임기가 난 없었다. 모두 한 번씩은 가본 해외여행은 난 가보지 못했다. 방학이 되면 워터파크나 스키장에 가던 것을 나는 소문으로 듣기만 했다. 내가 집에서 누릴 수 있던 문화생활은 게임과 만화가 전부였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은 늘 내가 갖지 못하는 것들을 가졌다. 처음 몇 번에는 부모님께 짜증을 내고 조르기도 했지만, 끝내 그만뒀다. 부모님도 내가 이런 문화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게 슬펐을 거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짜증 내고 졸라도 내게 돌아오는 건 없다. 돌아오는 게 있어도 분위기가 좋지 못했다. 그냥 그런 거 없어도 되는 사람이 됐다.


 성인이 되고서는 알바와 과외를 하면서 나의 물질적 욕구를 채웠다. 내가 물질적 욕구를 다 채웠을 시점에는 내 친구들은 모두 자아실현의 욕구를 채우고 있었다. 다들 알바를 용돈벌이와 하나의 경험 정도로만 하고 학업에 매진했다. 나와 친구들의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활비를 벌러 아르바이트할 동안 그들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정말 운 좋게 학습비를 지원받게 되어 나도 친구들을 따라잡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 미래가 걱정됐다. 집이나 차, 가정을 이루게 됐을 때를 위한 고정적 수입 등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직업이 필요했다. 내 꿈을 위해 모험을 하는 것은 미친 짓에 가까운 도박이었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내게 왜 꿈을 이루지 않냐고 물어보고 내 대답이 믿기지 않는 듯하게 말했다. 그게 정말 네가 원하는 것이냐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일 리가 없다. 하지만 그들과 나는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 그들과 나의 시작선은 다르다. 도박도 자본이 있어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내겐 그런 자본이 없다. 자본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과 자본을 쓰는 사람은 입장이 정 반대다. 나는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렇게 한 번 살아보라고. 이렇게 살고도 그런 말이 나올까라고.




 지금 사회는 능력주의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잘 된 것은 내가 열심히 해서, 내가 잘 안 된 것은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다. 승자는 자신의 노력을 칭송하고, 패자는 승자에게 모멸감을 느낀다. 얼핏 보면 공정해 보이는 능력주의, 열심히 일한 자는 성공할지어다, 정말로 공정할까? 나는 전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 노력이 정말 ‘나’라는 사람에서 나온 걸까. 만약에 그렇다면 ‘나'라는 사람에서 그런 노력이 나오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 열심히 공부를 했다면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을까. 여기까지 내려오고 나면 집안 배경이 나오기 시작한다. ‘나’라는 사람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아마 좋은 환경이 뒷받침되었을 것이다. 이 좋은 환경은 부모에게서 나온다. 이렇게 보고도 ‘나’라는 사람에서 나온 모든 노력은 정말 오로지 그 사람에게서만 나온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아주 극소수의 사례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출세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 사람의 경우에는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서 나왔다고 해도 될 거 같다. 그런데 그게 일반적이냐고 물으면 일반적이지는 않을 거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 그런 사례가 몇이나 될까라는 질문에 아마 셀 수 있을 정도의 수가 나올 거다. 하지만 부유한 집에서 출세하는 경우는 몇이나 될까. 부유층 인구가 훨씬 더 적음에도 빈민층 인구에서 출세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수의 출세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부유층 인구에게는 이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빈민층 사람들이 빈민층에 사는 것은 노력을 안 해서일까? 그들은 노력할 수 없는 구조에 갇혀있다. 그런데 정말 그러고도 왜 꿈을 이루지 않느냐고 할 수 있는 걸까. 시작선이 다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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