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의 인터뷰 영상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링크) 인터뷰어가 파인만에게 왜 자석이 서로 밀어내는지 물어보는데, 파인만은 질문에 대해 바로 답을 하지 않고 '왜'를 묻는 질문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한다. 질문자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 따라 할 수 있는 대답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왜 이웃집 할머니가 입원했는지' 물어보는 질문에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졌기 때문에'라고 답했다고 해보자. 누군가는 이 답변으로 충분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 있다. '왜 빙판길이 미끄러운가?' - '얼음에 압력이 가해지면 얼음이 녹아 물이 되어 미끄러워지는 것이다.' - '왜 다른 고체와 달리 얼음에 압력이 가해지면 녹는가?' - '물이 얼면 팽창하기 때문에, 압력을 가하면 녹는점이 내려간다' - '왜 물은 얼면 팽창하는가?' 이런 식으로 계속 이유를 파고들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첫 번째 대답으로 만족할 수 있지만, 빙판길을 걸어보지 않은 호기심 많은 아이는 위처럼 계속 이유를 궁금해할 것이다.
(자석이 밀어내는 이유가 궁금하면, 파인만의 대답을 직접 들어보자.)
최근에 회사에서 있던 일이다. 팀에 한 명 있는 디자이너가 퇴사하여 새로운 디자이너 채용을 진행하려는데, 대표가 "왜 디자이너를 채용해?"라고 물었다. 우리 서비스는 누적 가입자 수가 100만 명이 넘고, 팀에서 개발자의 수는 10명이 넘는다. 디자이너가 최소 한 명이 필요한 건 너무 당연한 일인데, 막상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건 어렵다. 가입자가 몇 명이고, 개발자가 몇 명이라는 건 디자이너가 필요한 이유가 아니다. 회사에 디자이너가 없으면 무슨 일이 발생하고, 디자이너가 오면 어떤 임팩트를 낼 수 있는지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표는 관계자들과 회의를 했고, 결국엔 디자이너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났다.
누가 보면 어처구니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를 채용한다는 결론이 바뀌지 않더라도 얻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위 회의를 통해 우리는 회사에 디자이너가 왜 필요한지, 와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임팩트를 내야 하는지 명시적으로 합의할 수 있었다. 그걸 기반으로 JD도 더 명확히 쓸 수 있고, 새로운 분이 들어왔을 때도 기대를 명확히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전제를 깨는 질문은 떠올리는 것부터 어렵다. 실제 전제를 깨는 경우는 극히 드믈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전제를 깼다면, 놀라운 결과를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