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은 모르는 그의 직업 세계

콘텐츠 기획자 B급아빠의 생존기

by 노창범


코로나 19가 세상을 휩쓸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휴가를 내 태국 끄라비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인상적인 자연, 그리고 사람들과 교감이 여운을 남긴 덕인지 아내는 금세 다음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실, 해외로 가는 가족 여행은 오랜만이었다. 계획에도 실행에도 적잖은 시간이 들 텐데 난 '시간이 없어서...'라는 핑계를 달고 산다. 이번 여행, 나 역시 가족과 함께한 값진 경험에 대한 잔잔한 흥분이 가시지 않았고 문득, 이런 소심하며 당찬 계획을 즉흥적으로 발표하고 말았다.


"난 2년에 한 번씩 긴 휴가를 갈 거야. 시간을 들여 모든 대륙을 둘러보고 말겠어! 함께하지 않을래?"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아내는 잠시 미소를 짓더니 이내 정색을 하고 한 마디를 던진다.


"돈은? 또 시간은?"


B급아빠는 현실적인 셈을 하기 시작했다.


4인 가족이 10일 정도의 일정으로 (전적으로 B급아빠의 버킷리스트에 담긴) 캐나다 오로라 빌리지나 아르헨티나 이과수 폭포에 다녀오려면 적어도 1천만 원 대 중반 정도의 비용은 들 텐데... 게다가 시간은? 이상하게도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장기 휴가를 내기에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 현실 아닌가. 높은 소득과 여유 시간이 보장된 직업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이겠구나 싶었다. 물려받은, 혹은 받을 재산도 없고, 저축은 커녕 매달 대출 원금과 이자를 근근이 갚고 있는 40대 중반의 가장인 나, 결국 일의 형태를 바꿔야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앞으로의 일에 대한 계획을 성급히 발표한다.


“안 그래도 그런 일에 대해서 고민해 봤는데 말이지, 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했으면 해. 지금까지처럼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을 하면 휴가 가는 것도 눈치가 보여서 먼저 시간에 대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네. 그리고 돈. 난 그런 생각이 들어.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가장 효율적인 곳에 쓰면 시간당 가치가 몇 배 더 오르지 않을까?”


“결국 이직을 한다는 거네? 또 이직하려고? 직장에서 뭔가 성과를 거두고 그걸 바탕으로 여기저기서 모셔가려는 사람이 돼야 가치가 오를 텐데, 난 당신이 밖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그 성과가 뭔지 모르겠어. 그렇게 또 이직을 하면 도대체 어떻게 살려고 하는 거야?”


아내의 말에서 눈치가 빠른 독자는 중요한 문제를 알아차렸을 것 같다. 다음의 두 문장에 문제가 담겨있다.


(1) 난 당신이 밖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그 성과가 뭔지 모르겠어.

: 우리 가족들은 가장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가 한 일이 세상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2) 그렇게 또 이직을 하면 도대체 어떻게 살려고 하는 거야?

: 마흔이 될 때까지, 나는 한 회사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돌연 사표를 내고 여섯 달을 쉰 뒤, 평균 1년 단위로 이직을 하고 있으며, 이직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일들을 하고 있다. 이제는 마흔다섯. 아내가 걱정할 만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생각보다는 쓸모 있는 일을 해왔음을 가족들에게 알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말로 하지 왜 글을?이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가족들이 모여서 얘기를 할 시간이 충분치 않고, 특히나 40대 중반 가장의 장황한 이야기는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다.


사실 이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다. 그때 생각한 타이틀은 <B급아빠>였다. 매일 야근하는 아빠. 하지만 아이들은 왜 아빠가 야근을 하는지 몰랐다. 가정에 충실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사회생활에서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고, 그래서 나는 B급 아빠, 하지만 A급 아빠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소한 ‘아빠’ 성장기를 쓰고 싶었다. 이제 독자에 아내까지 추가됐다. 아내마저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다니... 그럼 B급 가장인가?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오랜만에 뵌 어르신들이 던지는 질문들 중 두 번째 정도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것이다. 기자였을 때는 매우 쉽게 설명을 드릴 수 있었는데 디지털 세계로 이주하면서 대답하기가 찬 난감해졌다. 질문을 받으면, 난 곤란한 표정으로 ‘음~’ 하는 감탄사를 한번 내뱉는다. 그리고 힘겹게 결심한 듯 말을 꺼낸다.


“기업이나 조직에서 알리고 싶은 게 있잖아요. 그 주제가 명확히 정의돼야 하고 그걸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어떻게 알릴지를 결정하고, 여기까지가 계획이라면 이제 실행을 해야 하는데…”


이쯤 되면 질문을 한 사람의 표정서 지루함을 쉽게 읽을 수 있다. 나 또한 이 시점이 되면 지치기 시작한다. 그래서 금세 한 마디로 마무리 짓는다.


“홈페이지 만들어요.”


혹은


"온라인에서 광고를 하거나 물건을 팔아요."


그러고 나서 일을 좀 더 그럴듯하게 보이고 싶어서 “주로 대기업 일을 해요.”라고 덧붙인다. 여기까지 말하면 뭔가 추가적인 궁금증이 따를 듯하지만 서로가 귀찮은 듯 화제를 돌린다. 아이들 학교 같은.


사실 나는 '콘텐츠 기획자'다.

스물일곱에 일을 시작해 이제 18년 차에 접어든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거쳐온 직업은 다음과 같다.


문화지 기자

디지털 콘텐츠 기획자

웹, 앱 구축 및 운영 PM

디지털 프로젝트 제안 전략 팀장

디지털 커머스 서비스 컨설턴트 (여기서부터 40대)

SNS 및 캠페인 기획자

디지털 사업부장(임원)

병원 마케팅팀 팀장


기자 생활을 하다 웹에이젼시로 넘어가면서 콘텐츠 기획자라는 직함을 달게 됐다. 그리고 저 과정을 거치다 보니 콘텐츠 기획자라 설명하기엔 조금 단순하다는 느낌이 있고 느낌 상으론 맥락(Context) 기획이 지금의 내 일, 혹은 일에 대한 마인드라 생각한다.


앞으로 내가 쓸 글들의 1차적인 목표는 가족과 일가친척들에게 내가 어떤 일을 해왔고, 하고 있는지, 그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해 이해시키기 위함이다. 추가적으로 위 직업(일)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럼, 콘텐츠 기획자 B급아빠 생존기, 이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