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흔에 사춘기가 찾아온다면?

마흔 한해를 자발적 백수로 보낸 노씨의 휴식과 이직에 관한 이야기

by 노창범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은 사춘기란 ‘내가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같은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심각하게 고뇌하는 시기라고 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자신이 어떠한 존재이며 자신에게 제일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인지하면 정체감을 획득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역할의 혼란에 빠진다고 했다.


마흔인 노씨에게 사춘기가 찾아왔다. 2년 간 두 개의 힘겨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소중한 팀원들의 절반이 퇴사를 했고 노씨 스스로도 길을 잃어버렸다. 회사는 노씨에게 원치 않는 일을 맡기려 했고 그해 봄날 노씨는 이런 글을 쓰고 있었다.


부사장님. 주말 동안의 고민 대부분은 ‘융통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목표가 있으면 그 길을 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정도의 적극성이 필요하겠죠. 부사장님이 몇 번 언급하셨던 부사장님의 입사 초기의 일들도 떠올랐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현재의 자리에 계시기에 아마도 부사장님은 그 노력들이 ‘옳았던 판단과 행동’이라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6개월 동안 다섯 번 사직서를 냈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사직서의 문장들은 점점 더 독기를 띄어갔고, 그렇게 회사와 일을 부정할수록 떠난 팀원들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은 커져갔다.

사직서가 받아들여지고 회사를 떠나며 노씨는 이런 퇴장을 실패로 규정했고 그에겐 불온한 마흔의 사춘기가 찾아왔다.



생각보다,

'하고 싶었던 그 일들'을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노씨는 그간 에이젼시에서 타인을 위한 일을 해왔다. 보통 프로젝트라는 게 몇 달에서 1년이 걸리고 덕분에 무언가를 마무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에겐 꽤 긴 시간으로 여겨졌다. 게다가 매번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타인의 허락이 필요했다.

일을 그만두며 노씨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멋대로 해보고 싶었다.


1.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가장 어려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시기에 가장 친한 친구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노씨는 극심한 무력감에 빠졌다. 퇴사 전 우연히 만난 친구의 지인과 그 친구를 잊지 않기 위해 주기적인 모임을 갖기로 했고 그 중심에 공통의 관심사인 '독서'를 놓았다. 어쩌면 다행인지, 모순적이게도, 모임에 몰입할수록 아픔은 잊혀 갔다.


2. 논문을 썼다

마흔에 대학원에 입학했다. 실무로 해온 콘텐츠에 대한 경험을 집대성해 보고 싶었고, 일을 하며 점점 고갈되어 갔던 지식의 공백을 채우고 싶었다. 첫 학기의 논문 과제에서 조원들은 누구도 적극적이지 않았고 진행은 더뎠다. 퇴사를 한 뒤 노씨는 조원들에게 선언했다.

"그냥 내가 할게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나니 홀가분했다.


3. 수영을 배웠다

마흔에도 수영을 하지 못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노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딱히 불편을 느끼진 않았지만 아이들이 커갈수록 수영을 못하는 아빠는 왠지 부실한 느낌이 들었다. 퇴사 후 수영장을 등록하고 두 달 만에 노씨는 숨을 쉬며 물속에서 이동을 할 수 있게 됐다. 노씨의 활동 영역이 땅을 벗어나 물로 확장된, 대단한 사건이었다.


4. 10일 간 여행을 했다

노씨가 퇴사를 한 큰 이유 중 하나는 선배가 추천해 준 10일간의 크루즈 여행이었다. 환경재단과 일본 피스보트 협회가 운영하는 피스보트 크루즈 여행은 10일 동안 네 곳의 기항지를 들르며 동아시아의 평화와 환경에 대해 선상, 그리고 기항지 프로그램 제공했다. 그해 8월, 노씨는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10일간의 (자체) 휴가를 냈고, 바다라는 곳, 그리고 동아시아라는 곳에 대한 스케일 큰 체험을 할 수 있었다.


5. 일본어능력시험 (일단) 2급을 땄다

매년 일본어능력시험을 신청해 왔다. 대학시절 익혔던 일본어가 아깝다는 이유였는데 막상 제대로 시험공부를 제대로 한 적은 없다. 그해도 신청을 해놨었고 퇴사 후 시험은 2주밖에 남지 않았었다. 교재 한 권을 사서 매일 도서관에 들러 공부를 했다. 2주라는 시간에 대한 선입관을 버렸다. 그냥 그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해보자 생각했다. 그리고 결과는, 헐 합격이라니...


이 일들은 노씨의 퇴사 후 두세 달 동안 시작하고, 또 마무리되었던 일들이다. 바라지만 미뤄왔던 일들, 노씨, 스스로의 흐름으로 진행했을 때 사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드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아침마다 노씨는 얕은 동네 산에 올랐다. 중간중간에 계단이 있다. 마주하면 고난처럼 느껴졌는데 언젠가부턴 계단을 만나면 뛰어올랐다. 역시 가능한 일이었다. 노씨는 자신이 생각보다 쓸만한 놈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마흔에도

직업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다. 가을이 오고 있었다. 노씨는 한껏 고양되어 있었고 자존감도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였다. 그리고 이제는 취업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둘째가 유치원을 가게 되면서 퇴직금 잔고가 줄어드는 속도가 빨라진 탓도 있었다.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서 노씨는 지원 분야를 마케팅으로 정했다. 포트폴리오만 본다면 마케터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콘텐츠를 기획할 때도 사이트를 구축할 때도 제안 단계부터 마케터의 관점에서 일을 해왔기 때문에 노씨 스스로는 자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해 오던 일을 또 그렇게 다시 하는 게 싫었다.


한 달간 면접 제안이 한 건도 없었다. 일상은 대부분 지원할 만한 채용 공고가 있는지를 살피고 그 회사에 대해 알아보고 구인 내용에 따라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의 내용을 바꾸고 지원을 하는 구직활동으로 채워졌다. 몇 번이고 예전의 경력과 맞는 곳으로 지원을 할까 생각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그래도 꼭 기회는 올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두 달째가 되자 몇 건의 면접 제의가 들어왔다. 노씨는 이런 면접들을 보았다.


죽 프랜차이즈 B사

B사의 마케터 모집 공고에선 연령과 경력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 면접은 다대다로 진행됐는데 4명이 한 조였다. 노씨에겐 낯선 경험이었다.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똑같은 기회를 받아 답변을 하며 몇 억짜리 프로젝트의 비딩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보다 더 진땀을 흘렸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며 두 장의 죽 상품권을 받았다. 아직도 그 상품권은 쓰지를 못하고 있다.

노씨는 '불문'이라는 면접의 조건이 더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어린이 직업 교육 플랫폼 K사

가고 싶던 회사였다. 오래전 신문에서 K사의 한국 진출과 관련된 기사를 보며 이 플랫폼은 정말 잘 짜인 사업모델이라 감탄을 했었다. 채용 공고의 분야는 영업직이었지만 그곳에선 어떤 일을 해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원을 했고 면접을 보게 됐다. 앞 면접자의 면접이 길어져 40분을 더 대기하다 면접이 진행됐는데 두 명의 면접관은 노씨의 백발(노씨는 사실 30대 중반부터 백발이 되었다.)과 이력서를 흘낏 보더니 잘 들리는 혼잣말을 했다.

"왜 전문 영업 경력이 없는 사람이 서류 통과가 된 거지? 인사과 일 제대로 안 하네..."

20분도 안 돼 노씨는 면접장을 나왔다.

이 면접 후 노씨는 백발을 포기하고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


중국 전문 광고회사 P사

이번 면접의 감은 상당히 좋았다. 회사도 대형 광고회사의 계열사였고 1차 면접은 상당히 수월하게 통과했다. 그리고 2차 면접은 한국 지사장과 무려 1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그런데 면접 막바지에 지사장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콘텐츠가 뭐라 생각합니까?"

답이 쉽게 나오질 않았다. 노씨는 지금껏 해 온 콘텐츠 업무와 광고회사에서 생각하는 콘텐츠 개념 사이에서 한 참을 생각하다 기억나지도 않는 몇 마디를 얘기했던 것 같다. 결국 떨어졌다.

이 면접 후 노씨는 이제야 콘텐츠에 대해 경험적으로가 아닌 학문적으로 진지하게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겨울이 오고 있었다. 기회는 많지 않았고 노씨는 점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가족들에게도 눈치가 보였고 몇 달 동안 낮에도 목격되는 노씨에게 눈치 빠른 아파트 경비 아저씨는 종종 "아직 일 못 구했나?"라는 인사말을 건넸다.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예전 회사의 경쟁사였던 M사의 상무였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두어 번 약속을 잡아 사무실을 보여주고 노씨와 일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어느 저녁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느릿한 말투였다.


"어때요? 같이 일해 볼 생각이 있나요?"

"예, 하겠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어요?"

"가능하면 빨리 출근하는 게 좋겠습니다. 충분히 쉬었으니까요..."


노씨는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갔다. 마흔의 사춘기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직업을 바꾸는 건, 점프대를 딛고 날아오르는 게 아닌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나가야 하는 일이었다. 5년 동안 직업을 바꿔가며 노씨는 그 일을 알고 이해하는 게 아니라 직접 몸으로 겪어야 경력자로서의 직업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5년이 지난 지금, 노씨는 마케팅 팀장으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에릭 에릭슨이 말하는 이 사춘기의 질문들, 낯익지 않은가? 사춘기라는 건 자신이 설 자리가 나아갈 목표를 잃었을 때 언제든 찾아온다. 그럴 땐 우리, 걸으며, 만나며 다시 나와 목표를 찾아보기를, 마흔의 사춘기를 보낸 노씨는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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