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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범 Oct 09. 2023

6. 스타트업에 개발자, 없으면 안 돼?

MZ사회생활기록부 > 예비창업자 노윤재편 (6)

8월 9일, On Air


<구름의 비밀>


안녕하세요, 저는 호수공원의 동편 주택가에 사는, 취미가 ‘낙서’인 발랄한 여고생 임수아입니다. 학원 마치고 집에 가며 전 호숫길을 따라 걸어요. 그 시간은 제가 모처럼 이어폰을 귀에서 빼는 시간입니다. 윤재님, 영광이죠? 전 집에서 밥 먹을 때도 이어폰은 항상 끼고 있다구요.

     

여튼! 최근 겪은 흥미로운 일 적어 보내요. 그거 아세요? 호수공원 근처의 삼국시대 고분이 ‘주민 친화형 관광지’로 새 단장 한 거. 지난 1년 동안 쳐져있던 거대한 가림막이 며칠 전 사라졌어요. 전 궁금해서 슬쩍 들여다봤어요. 그런데 고분들보다 높은 언덕들이 새로 생겼고 심지어 작은 목장까지 생겼어요. 목장과 고분, 묘한 조합이죠? 게다가 밖에서 봤을 때와 안에서 봤을 때 공간감이 묘하게 달랐어요. 안으로 들어가면 확 넓어지는 느낌? 마치 다른 차원으로 온 것처럼요.

       

호기심 충만한 저는 주말에 티켓을 끊고 정식으로 방문했답니다. 이제 여행사가 관광객을 모으고 가이드까지 있었어요. 그곳에서 들은, 옥수수 줄기 닮은 멀대 가이드분의 이야기를 옮겨볼게요~ 그럼 시작!


     


(여기부터 멀대 가이드 아저씨의 이야기예요.)


"자~ 이곳이 오늘의 마지막 코스입니다. 오늘 저를 따라 이곳저곳을 다니느라 많이 피곤하셨죠? 예… 지금 시각이 오후 5시 하고 조금 넘었네요. 이곳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후로는 기념품이 걸린 퀴즈 대회 전까지 30분 간 자유시간입니다. 너무들 좋아하시네요…. 왠지 오늘 여러분을 인솔한 제가 죄송스러울 정도로."     


"아 뭐 그건 그렇고,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저 앞의 언덕의 이름은 ‘포타카나레아드’, 우리말로 하자면 ‘절로 떠오르다’ 정도로 해석이 될 것 같네요. 아주 전형적인 시골 목장의 아름다운 풍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몇 걸음만 걸으면 금세 언덕의 꼭대기에 닿을 듯한 적당한 높이에 소떼나 양 떼, 혹은 말 떼가 금방 튀어나올 듯한 기대감을 심어주는 흰 울타리, 또한 여전히 분주한 목동들의 일상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바퀴 자국, 적당한 위치에 삐죽 솟아난 소나무 한 그루, 무엇보다 절묘한 형상을 하고 있는 저 구름, 정말 예술이지 않습니까?"      


"자, 이제 잠시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켜 보세요. 흐으으으읍… 하아아아아 아~ 이제 자유시간입니다. 저희 여행사에서 준비한 간식과 돗자리를 나눠드리겠습니다. 막걸리와 맥주는 유료입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의 개인행동은 삼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저 언덕 위로 올라가는 것은 금하고 있습니다. 예~ 거기 카메라를 든 백발의 남자분, 올라가지 마시라니까요, 아~ 정말!"


(30분 후)     

"여러분 잘 쉬셨습니까? 이제 퇴장 시간입니다. 여러분이 협조를 잘해주신 덕분에 특별한 문제없이 오늘 하루 일정을 잘 마칠 수 있었네요. 뭐 궁금하신 점이라든지 건의사항이 있는 분들 안 계시나요? 예, 백발 남자분, 아까부터 호기심이 왕성하시네요. 무슨 질문이신지…, 예? 아, 언덕 너머에 무엇이 있냐구요? 그건 저희 여행상품에 포함되지 않은 거예요. 정확히 ‘이쪽에서 바라본 언덕의 풍경’까지입니다. 어, 거기 초록 모자 쓴 여자분, 어, 구름이 아까부터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구요? 허허, 그건 특별히 이곳의 구름이 밀도가 높아서, 즉 '무거워서'입니다. 자, 자,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맛있는 저녁 식사를 즐기셔야죠. 곧 문을 닫을 거예요. 더 이상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가이드 아저씨 이야기 끝!)




초록 모자 쓴 여자분은 저였어요. 헤헤~ 근데 정말 이상했는데... 한참을 바라봐도 언덕 위 뭉게구름이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그러다 저는 구석에서 통화하는 가이드 아저씨의 통화내용을 듣고 말았어요. 아, 그 구름은...      




"김대리? 응, 이제 숙소로 돌아갈 거야. 휴… 오늘로 여름 시범 패키지가 끝이네. 이제 가을이 와도 좋아. 하늘은 좀 파랗게, 높여주고, 소나무는 사과나무로 좀 교체해 주고, 구름은 이제 치워버리게. 가을은 역시 높고 파래야 제맛이지. L사 송대리님에게도 좀 전해주고. 응, 일주일 후에 오겠네…."     




#시스템


* 시스템 : 필요한 기능을 실현하기 위하여 관련 요소를 어떤 법칙에 따라 조합한 집합체 <네이버 국어사전>    


윤재가 사업계획서를 제출할 때 전용 시스템 구축에 대한 계획도 포함했다. 요즘은 디지털이 끼지 않으면 정부지원사업 수주가 힘들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다행히 기자 아카데미 동기의 후배인 동준이 취미로 개발을 한다고 해 그와 상의를 했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시스템은 혹여나, 정말 혹시나 '너무 많은 사연들이 접수됐을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AI챗봇을 적용해 안내와 접수를 돕고 AI 알고리즘 학습을 통해 퀄리티 있는 사연을 선별해 우선순위를 매겨 나열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서로 다른 다섯 명 정도의 목소리를 지정해 사연을 음성으로 읽어줄 수 있는 AI 서비스였다.     


하지만, 사업계획서를 쓸 때,


“요새 저렴하게 적용할 수 있는 AI 서비스들이 많아서 그 정도의 기능은 2,000만 원이면 충분해요~ 제가 개발이나 서비스 선택은 도와줄게요. 알바비나 잘 챙겨 줘요!”


라 자신 있게 말했던 동준은 소리소문 없이 입대해 버렸다...     




실제 진행을 해야 하는 일정이 다가오면서 윤재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백방으로 개발자들을 찾아 문의했지만 호기롭게 말하던 그들은 2,000만 원이라는 금액을 듣고는 바로 NO라 말했다. 


방법이 없을까? 순간, 윤재의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업체가 있었다. 멘토링 OT 때 캐릭터 AI 커뮤니케이터 서비스를 소개했던 G스타트업이었다. 명함을 찾아들고 김대표님에게 전화를 했다.      


“아, 몇 가지 디테일을 양보하면 가능하겠는데요? 저희도 PMF(Product Market Fit - 제품 시장 적합성) 테스트 중이라 저렴하게 제공해 드릴 수 있어요. 대신 운영 데이터나 개선점 등을 상세하게 알려주시면 되고요. 또 이게 SaaS(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 제공 모델)로 적용도 쉽고 나중에 운영할 때도 저희가 제공하는 관리자 모드에서 편하게 컨트롤하시면 됩니다."


적합한 기술이 이미 존재하고 있을 경우, 중복 개발로 인한 인력과 시간 낭비를 막기 위해 '기술 이전'이나 '바우처 제도'를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에 개발자가 없는 이상, 게다가 AI나 서비스 개발에 문외한인 윤재가 기술을 자신의 서비스에 적합하게 커스터마이징 하는 과정을 제대로 관리하는 건 무리였다. 


이런 상황에서 윤재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테스트하고 있는 스타트업을 만난 건 운이 좋았다. 초기 서비스들은 시스템이 의도한 대로 기능을 하는지, 그리고 시장에서 정말 원하는(팔리는) 기술인지를 테스트하고 개선하는 과정을 거친다. 윤재는 G스타트업의 초기고객으로 간택되었다. 뭐, 윈-윈 아닐까? 김대표는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저희 서비스 특징이 '캐릭터 커뮤니케이터 시스템'이에요. 캐릭터가 동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AI챗봇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즉, 캐릭터가 필요합니다. 그건 준비를 해주셔야 해요."




이후, 윤재가 먼저 해결할 일은, 시스템 구축을 SaaS(Software as a Service) 활용으로 사업계획서 내용 수정에 대해 정부지원사업 전담기관의 승인을 받는 것이다. 담당자인 민주임님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이 지원사업은 기술개발이 목표인 R&D 사업이 아니고 사업 지원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기존의 목표와 동일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면 승인은 큰 문제없을 거란 답변을 받았다.


자, 그럼 남은 건 캐릭터를 마련하는 것이다. 윤재는 미술 동아리 출신이라 직접 그리거나 동아리 친구들에게 부탁할까 생각도 했지만, 캐릭터 또한 동네 사람들의 손에서 탄생하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동.말.스. 캐릭터 공모전'을 열어보기로 했다. 


관리실 앞에 커다란 백지를 놓고 동.말.스.에 어울리는 캐릭터를 (농담 삼아) ‘낙서’ 해 주면 선정된 분에게는 상금을 드리겠다고 공지를 했고. 백지는 정말 낙서장이 되었다. 대부분 취학 전 아이들이 그린 공주와 로봇, 괴물들이 그득한 가운데 핑크색 구름 하나가 둥실 떠올라 있었다. '이야기하는 구름'이라... 구름을 둘러싼 까만색 사각형은 스피커를 형상화한 건가? 




'수아 학생이구나.'


낙서가 취미라더니 자신이 목격한 의문스러운 구름을 캐릭터로 그려 보낸 것이리라, 윤재는 생각했다. 

때마침 호수공원에 석양이 지면서 8월 하늘에는 온통 풍부한 볼륨의 수다스러운 핑크색 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FAQ


* 윤재는 G스타트업의 김대표님과 첫 미팅을 마치고 헤어지기 전 개발자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윤재 : 그런데 김대표님, 스타트업엔 개발자가 필수인가요?


(G스타트업) 김대표 : 당연히 필수는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게 사실입니다. 요샌 대부분의 서비스에서 디지털은 빠질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 서비스가 시장의 필요에 딱 맞기 위해선 무수한 테스트와 시행착오가 따를 수밖에 없고 이 과정을 거친 뒤에야 '세상에 필요한 서비스'가 완성되죠. 


노윤재 : 개발 전문 회사와 함께하면 되지 않나요?


김대표 : 개발사에 외주를 줄 경우 합의한 견적서를 기반으로 작업을 해요. 하지만 정해놓은 기간과 비용 안에서 서비스가 완성될 거라는 건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죠. 그래서 빛을 보지 못하는 서비스들도 많아요. 정부지원사업심사나 투자자들은 그래서 개발역량을 유심히 봅니다. 


노윤재 : 그... 그럼 우리 서비스도 완성되지 못할 수 있겠네요...


김대표 : 에이~ 우.동.스.는 서비스 자체는 오프라인 미디어의 중요도가 커요. 디지털 서비스는 보조적인 수단으로 파악됩니다. 그래서 우리 서비스를 커스터마이징 하는 것으로 충분해 보여요. 하지만 서비스를 확장하는 데 디지털의 역할이 더 커진다면 CTO의 영입도 고려를 해보는 게 좋을 거예요.


노윤재 : 옙, 알겠습니다!




다음 이야기


며칠 뒤 정석은 '대박대박 ㅋㅋㅋ'이라는 제목으로 가편집본을 첨부한 메일을 보내왔다.


윤재는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파일을 열었다.


'이야~ 역시 정석! 재밌네. 이거. 유튜브 올리면 대박 나겠는데?'     


윤재는 영상을 보며 울고 웃다가, 급 우울해졌다!

     

'이거... 스타트업 홍보영상이 아니라 예능이잖아...'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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