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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범 Oct 03. 2023

4. 어린 스타트업, 기사 좀 내주면 안 돼?

MZ사회생활기록부 > 예비창업자 노윤재편 (4)

5월 25일, On Air


<호수공원의 생태계를 관찰하는 기자>


난 기자예요. 그것도... (내 입으로 말하긴 쑥스럽지만) 국내 최고의 신문사에 다니고 있어요. 난 정치부지만 동물에 대한 기사를 씁니다. 동물은,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뭐 그땐 좋아하는 게 참 많았죠. 글 쓰는 것, 음악 듣는 것, 기차의 역사도. 그러다 직업적인 목표는 '음악을 다루는 문화부 기자'가 됐어요. '좋아하는 것'과 '내가 은퇴할 때까진 성장할 분야',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의 교집합이 그랬어요. 


'동물'과 '기차'는 점점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거든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준비했어요. 결국 전 바라던 신문사에 들어갔죠. 부서는 순환이 되는 시스템이라 일단 때를 기다렸죠. 그런데, 부서를 옮기다 드디어 문화부에도 도착했지만 생각과는 달랐어요. 글을 잘 쓰면 끝나는 게 아니더라구요. 소위 '라인'이라는 게 있고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는 집요한 강요가 있었어요. 저는 끝까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어물쩡 문화부를 스쳐 정치부로 옮기고, 7년 차쯤 됐을 땐 결론을 내렸어요. 


'꿈은 개뿔, 여긴 그냥 직장'


스트레스는 사라졌어요. 라인을 택하지 않고도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좋아하던 또 다른 한 가지, '동물'에 대한 기사를 쓸 수 있게 됐거든요.




이제 사람들은 종이 신문을 보지 않아요. 포털 사이트에서 기사를 보죠. 어느 날 사내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온라인 콘텐츠 강화를 위해 부서에 상관없이 조회수와 인터랙션을 올릴 수 있는 기획이 있다면 지원 바람. 별도 성과급 지급함'


전 담당자에게 기획안을 보냈습니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동물 영상을 소스로 기사를 쓰겠다구요. 세상 참 편해졌죠.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이 동물을 취재하기 위해 세상을 두 발로 뛰어다닐 필요가 없어졌잖아요. 유튜브에 다 있거든요. 그것도 플랫폼 특성상 이미 '자극적'이라는 소스는 한 번 발라진 글로벌 콘텐츠잖아요. 물론 기사화하기 위해서는 영상을 올린 이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한국에서 가장 큰 신문사'라며 문의를 하면 대부분 'OK'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자극적인 영상들을 온라인 기사화 할 때 매운 맛, 순한 맛 정도는 제가 컨트롤할 수 있었어요. 그래도 명색이 기잔데, 영상 내용은 추가적인 자료 조사 등을 통해서 정보와 교훈이 잘 버무려진 고퀄리티 기사로 가공합니다. 단, 제목에는 MSG를 잔뜩 뿌려줘야 합니다. 그래야 클릭을 하겠죠? 제가 쓴 고퀄의 기사를 사람들이 안 보면 서운하니까. 그리고 클릭률과 인터랙션(추천, 댓글 등)이 '성과급'의 평가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악플도 괜찮아요. 수만 많으면 돼요.


포털과 기사 제휴가 계약된 신문사 홈페이지에 동물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하고 하나의 루틴이 생겼습니다. 퇴근 후 이 호수공원을 돌며 생태계를 관찰하는 거예요. 다시 동물에 대한 열정이 불붙었거든요. 이 도심에 무슨 생태계가 있냐구요? 생태계의 정의는 '상호작용하는 유기체들과 그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주변의 무생물 환경'이에요. 그렇다면 동네 사람들과 이 호수공원을 묶어도 호수공원 생태계가 되는 거겠죠? 그런데! 이 생태계의 유기체에는 동물들도 있어요. 바로 조류들이죠. 




관찰 후 처음 눈에 띈 건 까치였습니다. 그들은 호수공원의 터줏대감입니다. 더 작은 이들도 있죠. 참새와 박새입니다. 이들은 호수공원을 도는 동네사람들과 어우러져 평화로운 일상의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저는 공원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수양버드나무에 둥지를 튼 까치 부부와 친해졌습니다. 그 부부는 제가 운동복을 입고 공원 입구에 등장하면 때맞춰 깍깍거리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들의 외침은 사실 환영보단 경계의 메시지를 담고 있겠지만, 전 항상 그 소리를 스타트 신호로 공원을 돌기 시작합니다. 저는 제 운동에 추진력을 주는 그 부부에게 특별히 ‘고고(ㄲ)’라 이름 붙여줬습니다.     


참새와 박새도 있어요. 요 조그만 아이들은 길가 수풀 위를 후드득후드득 날아다니며 공원에 활기를 더합니다. 갑작스레 뛰쳐나와 분주히 사방팔방으로 날뛰는 모습은 마치 캐러멜 코팅이 된 팝콘 같았습니다. 그래서 얘들은 싸잡아 ‘팝콘(ㅍㅋ)’이라 이름 붙였구요.     


그리고 언젠가부터 공원에 까마귀가 등장했습니다. 한 마리에서 세 마리가 까악까악거리며 나무 위든, 건물 위든 앉아있다가 서두름 없이 스윽 내려와 길 위에서 통통 튀어 다니죠. 사람이 지나가도 그리 겁을 먹지 않습니다. 얘들도 서운할까 봐 이름을 붙였어요. '통통(ㅌㅌ)'입니다.




최근에, 이 아이들이 포함된 공원의 생태계에 대해 기사를 써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까치와 까마귀’로 검색을 해봤습니다. 오호~ 꽤 쏠쏠한 정보들이 나왔습니다. 이런 것들이죠.     


‘까치 vs 까마귀... 진정한 길조는 누구?’

‘까치의 소름 돋는 지능, 까마귀와 까치 누가 더 똑똑할까?’

‘독수리의 공격을 피하면서 눈을 뽑아버리는 까치’

‘까치가 없어지는 한국은 까마귀가 점령 중?(진짜 미친 지능.. 까치와 싸우다가 친해짐)’

‘까치 줄자... 도심도 까마귀 주의보’     


오~ 고고와 통통은 라이벌 관계였군요. 전 이들의 관계를 좀 더 관찰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전 이 생태계의 참상을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공원을 도는데 다급히 날아오르는 팝콘이 있었습니다. 그 뒤를 고고가 쫓았습니다. '텃새들 간의 영역싸움인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고고는 팝콘을 힘껏 움켜잡았어요. 그리고 높고 평평한 곳으로 데려갔어요. 다른 팝콘이 열심히 만류를 했지만 고고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팝콘의 힘겨운 외침이 들린 뒤 잠잠해졌습니다. 그곳에서 두어 번, 그런 장면을 더 목격했습니다. 고고가 팝콘을 잡아먹은 것입니다!

전 고고의 공격성이 두려워졌습니다. 제 딸에게도 특별히 고고를 조심하라 주의를 줬어요.


어느 날은 통통 두 마리가 수양버드나무에 있는 고고의 둥지 곁을 서성거리는 걸 목격하고 가만히 지켜봤습니다. 고고는 자신의 둥지 근처에 침입자가 있는 걸 보고도 깍깍거리며 안절부절못할 뿐 적극적으로 방어하진 못했습니다. 통통은 갸웃갸웃 둥지를 살피더니 크고 까만 날개를 펼쳐 둥지에 내려앉아 조그만 새끼 고고를 부리로 잡아채 날아갔습니다. 그 와중에 새끼 고고 한 마리는 둥지에서 떨어져 산책로 옆 수풀 속으로 자취를 감췄습니다. 아마도 지상에 있는 또 다른 생태계 일원의 한 끼가 되었겠죠. 


난 막상 이 명확한 먹이사슬을 목격하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내가 붙인 귀여운 이름이 무색하게 이들은 순수하게 먹고 먹히는 관계였습니다. 영상으로 먹이사슬의 잔인한 장면들을 일상적으로 보아 온 나로서도 눈앞에서 실제 그런 장면이 펼쳐지니 오싹하더군요. 그리고 좀 슬펐습니다.


난 기사를 썼습니다. 다행히 재빠르게 촬영해 놓은 몇몇 영상이 있었고 유튜브를 검색해 관련된 영상 몇 개도 골라 놓았습니다. 평소에 영상을 보며 기사를 쓸 때완 달리 감정이입이 되어 감성적인 단어들이 기사 곳곳에 자리하더군요.       


여러분도 한 번 검색을 해서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곳의 이야기니까요. 제목은 이렇습니다.


'도심, 조류 주의보! 새들이 '이런 행동'을 하면 아이들의 눈을 가리세요.'




#PR


* PR : 널리 알리는 일, 좁게는 관청, 기업체, 단체 따위가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사업의 취지를 널리 알리는 선전을 이름 <네이버 국어사전>

          

윤재는 사연을 보내온 기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제목 > 기자님, 동.말.스. 운영자입니다. 한 가지 문의를 드리려 합니다.


기자님 안녕하세요! 동.말.스. 운영자 노윤재입니다.

인상 깊은 사연 감사합니다. 어제 방송에 사연이 나갔는데요, 그 영향인지 부모님들이 유난히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호수공원을 돌더라구요. 저도 새들의 시선과 접근이 좀 불편해졌습니다. 확실히 기자님의 사연은 이곳 호수공원의 생태계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     

아, 메일 보낸 이유는 하나 문의 드리려구요. 혹시 동.말.스.에 대한 기사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보도자료를 작성해 크고 작은 매체에 보내봤는데요, 기사가 한 번도 안 실렸습니다... (제 글솜씨 탓도 있겠지만) 동.말.스.가 아직 기사로 다룰 만큼 화제성은 갖추지 못했더라도 오히려 기사에 실리면 그 가능성을 더 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감사 인사 겸해서 기자님께 문의를 드립니다. 


기자님이 근무하시는 신문사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곳은 끝판왕 같은 느낌이에요. 그렇게 크지 않더라도 온라인에서 검색했을 때 노출이 되는 매체에 기사가 실릴 수 있는 방법이라도 조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후략



다음 날, 윤재의 메일함에는 기자의 회신이 와 있었다.


제목 > RE : 기자님, 동.말.스. 운영자입니다. 한 가지 문의를 드리려 합니다.


안녕하세요, 운영자님. 먼저 사연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동네사람으로서 순수하게 '알려야 할 내용'이라 사연을 보냈어요. 혹시나 기사 조회수 늘리려 보냈다는 오해는 삼가주고요.


사연을 보낸 건 내 사생활의 영역입니다. 동.말.스.라는 동네 미디어가 흥미롭기도 하구요. 하지만! 기자로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 기사 게재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은 힘들겠습니다. 

스타트업계의 트렌드를 반영했다기엔... 고전적인 미디어고 영향력도 동네로 한정되어 있죠. 


올해 국내 스타트업 수가 300만을 돌파했답니다. 아무리 어중이떠중이 미디어가 많다고 해도 그 300만 개 업체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 담아주기엔 한계가 있겠죠? 뭔가 엣지 있는 이슈가 있을 때 연락을 주세요. 투자 유치, 영향력 있는 기업과의 MOU 체결, 해외 진출, 매출 대박, 연예인 등등 이런 거요.      


물론 방송은 계속 유지되길 바랍니다. 사적으론 동.말.스.를 응원합니다. 


그래서 한 가지 팁은 알려드릴게요. 소위 ‘보도자료 배포 서비스 솔루션’이라는 게 있어요. 포털 메인이나 적어도 분야별 서브메인에 걸린다는 원대한 꿈은 버리고, 포털에서 검색했을 때 노출되는 정도라면 생각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듣보잡 미디어를 통해 기사를 올릴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알려 드릴게요.

 

그럼 다음 방송 기대하겠습니다.    



메일을 보고 윤재는 잡지사에서 목격했던 이들이 떠올랐다. 


한 달에 한 번 신보를 가지고 잡지사를 찾던 음반사의 영업 담당자, 극이 오를 때마다 정성스러운 편지와 두 장의 티켓을 보내던 한 극단의 홍보 담당자, 구설수에 휘말려 이삼 년을 쉰 뒤에 재기를 앞둔 뮤지션의 매니저는 선배 기자에게 인터뷰를 사정하며 몇 차례나 전화를 걸어왔다.


매체에 기사가 오른다는 건 그런 일이었구나. 인턴이었지만 몇 개월 잡지사에 있었으면서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됐다. 


'이런 게 생태계인가?'


짧게 한숨을 쉰 윤재는 기자가 알려준 대로 몇 차례 검색을 한 끝에 '보도 자료 배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가세를 포함한 55,000원 결제로 처음 들어본 매체에 다음 날 기사를 올릴 준비를 마쳤다. 


윤재는 기사를 올릴 수 있는 이 '밋밋한 프로세스'와 앞서 떠올랐던 ‘기사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기억이 달칵달칵 어긋나는 느낌에 한동안 멍 때리며 책상에 앉아있었다.

     

창밖으로는 새로운 '고고' 한쌍이 호수의 생태계로 날아들고 있었다.     




FAQ


* 윤재는 기사를 올린 며칠 뒤 PR 회사에 근무하는 선배 B를 찾았다.


윤재 : 선배, 이 조그만 사업을 알리는 게 쉽지 않네요. 지금 제 단계에 필요한 게 뭘까요?


선배 B : 음... 밀당이지. 아 넌 연애 잘 못하지? ㅎㅎ PR, 마케팅 요런 건 대중과의 밀당이라고 할 수 있어.

즉, 네가 밀어 보내는 정보가 있고 반대로 대중들이 관심 있는 분야에 미끼를 던져 당겨 오는 두 가지로 크게 구분할 수 있어.


당겨오는 채널로는 SNS가 있어. SNS는 알고리즘이 있잖아. 타깃을 정하고 그들의 관심사와 네 정보가 버무려진 콘텐츠를 일관성 있게 발행하면 알고리즘은 관심 있을 만한 사람들을 땡겨와. 광고는 그 효과를 가속시키고.


밀어내는 채널로는 블로그나 기사가 있지. 여긴 키워드가 중요해. 네가 알리고 싶은 키워드, 예를 들어 회사명, 사업 카테고리 등등을 심어놓은 콘텐츠를 미디어에 밀어 넣으면 해당 키워드로 검색한 사람들의 검색 결과에 나오게 되지. 



이 두 가지를 잘해야 네 사업과 타깃이 되는 대중과의 접점이 생기고 키울 수 있어. 지금부터 차근차근 꾸준히 해서 그 접점을 단단하고 넓게 가질 수 있다면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딱, 네 상품과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홍보나 마케팅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일단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주기적으로 올리면서 최적화를 시키고 큰 이슈는 그때그때 기사를 내주도록 하렴. 가끔 작은 이벤트도 열고 말이야. 정답은 없어. 무조건 시작하고 진행하면서 네 사업만의 홍보, 마케팅 틀을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아, 그리고 네 사업 내용을 들어보니 방송을 유튜브 라이브로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던데... 단, 네 비주얼과 끼로는 안 되니까 나중에 직원 뽑아서 해 보도록. ㅎㅎㅎ


윤재 :...




다음 이야기


“당신의 사업 내용과 고민을 잘 모르겠어요. 방금 발표한 걸 1분 안에 요약해 보세요.”     

그녀는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자세를 바로 하고 최대한 1분 안에 사업 내용을 요약해 설명했다.


“제가 고객이라면 안 삽니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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