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창범 Sep 21. 2023

2. 용돈이 매출되면 안 돼?

MZ사회생활기록부 > 예비창업자 노윤재 편 (2)

호수공원의 방송실, 전문적인 장비를 갖추진 못했지만,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정면에 있는 큰 창으로 호수공원을 오가는 이들, 즉 청취자들이 한눈에 보여 방송에 대한 반응을 바로바로 알 수 있을 듯했다. 3월 말, 며칠 있으면 이 공원에 벚꽃 호우가 내릴 것이다. 


오늘 윤재는 첫 방송을 시작했다. 




3월 20일, On Air


<할머니는 중학생>


아, 안녕하세요. 여러분. 스피커에서 갑자기 제 목소리가 나와서 깜짝 놀라셨죠? 저는 오늘부터 올해 말까지, 일주일에 세 번 이곳 석촌호수에서 방송을 진행할 노윤재입니다. 오늘은 첫날이니 방송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드릴게요.     


L놀이공원 덕에 다른 지역에서 오신 분들도 많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방송은 이 지역에 살고 계신 분들을 위해 진행합니다. 그래서 이름도 ‘동네를 말하는 스피커' 줄여서 '동. 말. 스.'죠. 즉, 우리 동네 소식을 전합니다. 기쁜 소식, 슬픈 소식, 꼭 이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더라도 이곳에 사는 분의 이야기라면 좋습니다. 저에게 사연을 보내 주시면 선별해서 ‘동. 말. 스.’에서 소개하겠습니다. 


사연을 보내실 분들은 제 메일주소, hi_paper@naver.com으로 보내주시거나 종이에 적어서 관리실 앞에 설치한 빨간 박스에 넣어주세요.


장사하시는 분들은 가게 홍보 사연도 좋아요. 단, '우리 슈퍼, 대박 세제 할인!' 이렇게는 말구요. '이야기'로 보내주세요. '이 이야기를 들으신 분들은 눈물을 뿜으며 우리 가게로 달려오실 거야!' 이런 내용이요.

     

윤재는 슬쩍 거울을 보고 자신의 얼굴이 빨갛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형적인 MBTI, ' I'인 윤재는 이렇게 대중적인 수다를 떨면 남들보다 에너지 소모가 크다. 아직까지 스피커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첫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첫 방송이니 여러분의 사연이 왔을 리가 없겠죠? 그래서 제 이야기로 시작할까 합니다. 저도 이 동네 사람이랍니다.

      




며칠 전에 호수공원에서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정확히는 정문, 지금 빨간 옷과 노란 옷의 아이들이 폴짝 뛰고 있는 계단에 서서요. 

        

할머니를 위해 친척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저희 할머니는 칠십 대 후반의 중학생입니다. 이번에 '왜 자신이 지금 중학생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수기로 적어 교육인적자원부가 주최한 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셨어요. 그 기념으로 모인 자리였습니다.


"어머니 공부하시는 거 몰랐습니다."


식당에서 아버지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씀하셨어요. 


"그것보다... 초등학교까지만 나오신 것도 몰랐구요. 학생기록부에는 당연하게 항상 '고졸'로 적었는데... 그거 보고도 별말씀 안 하셨잖아요."


할머니는 담담히 말씀하셨죠.


“패가 될 거라 생각했다. 엄마가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다고 하면 너희들도 학교에서 무시당할 것 같고, 아빠도 회사에서 눈치가 보일 것 같아서 말야. 그래서 결혼 후에 아빠하고 상의한 거야. 난 고등학교까지 나온 거로 하자고. 억지로라도 이제야 말을 하게 되니 후련하네. 난 대학교까지 마치려고 해. 이제 손자들까지 다 컸고, 나도 내 꿈을 이뤄야지.”    


할머니는 수기를 통해 오랜 세월 숨겨왔던 이야기를 처음 고백하셨습니다. 할아버지를 제외한 가족들에게 마저도요.






할머니의 종가는 충남 당진입니다. 칠 남매에 함께 사는 사촌 두 명까지, 총 아홉 남매의 장녀였어요.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집안 어른들은 할머니에게 가혹한 미션을 내리셨죠.      


“계집애가 웬 중학교냐, 그냥 초등학교나 졸업하고 형제들 뒷바라지나 해!"   


그렇게 할머니의 학교 생활은 일찍 막을 내렸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고 해요. 집안마다 형제는 많았고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거든요. 가난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를 제외한 형제들은 고등학교까지는 마칠 수 있었습니다. 오빠들은 남자 구실을 하려면 고등학교까지는 졸업해야 한다며 어떻게든 학교를 보내주셨고 대학까지 간 분들도 있었어요. 두 여동생은 할머니가 시장에서 병아리를 사 와 닭이 될 때까지 키워서 달걀과 닭을 팔기도 하고 다른 집의 허드렛일도 해서 마련한 학비를 보태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구요. 그러면서도 학교를 못 간 아쉬움이 커서 활자가 박혀있는 건 뭐든 읽고 외우고 하셨다고 해요. 텔레비전도 없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다 오빠의 군대 동기인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오빠는 같은 부대에 있는 전라남도 출신인 할아버지와 친해진 뒤, 이 사람이면 동생을 ‘해방’시킬 수 있겠다 생각했나 봅니다. 제대 후 할아버지에게 집으로 초대하는 편지를 보냈고 공무원이셨던 할아버지는 충청도에 교육을 왔다가 무작정 어머니를 찾아왔습니다. 첫눈에 서로 반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대요. 하지만 다른 지역, 낯선 사람의 방문에, 할머니는 가족이라는 답답하고 견고한 세계에서 조금의 틈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할머니는 답방을 하셨어요. 대전에 있는 친척집에 일이 있어서 막내 남동생과 함께 다녀오는 길에 진로를 남쪽으로 틀었습니다. 지도에서 봤을 때는 할아버지가 일하시는 전라남도 해남이란 곳까지 직선거리로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해요. 하지만 막상 가보니 꼬박 한나절이 걸렸대요. 교통이 불편한 때였습니다. 그렇게 두 분은 해남의 할아버지 하숙집에서 다시 조우를 했습니다. 딱히 로맨틱하진 않았대요. 어린 남동생은 몸살이 났고 날씨는 추웠고 타지는 낯설었거든요. 그래도 다음을 기약하고 다음 날 한나절을 들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뒤는 어른들의 몫이었습니다.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로 집안에서의 반대가 컸지만 할아버지의 집안 어른들이 직접 할머니댁에 찾아와 설득한 끝에 결혼 날짜가 잡혔어요. 그렇게 결혼을 하셨고 저는 그분의 손자입니다.      




중학생 할머니와 가족들은 이 호수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호수 공원은 사진 속에 담겨 가족들의 추억의 일부가 되겠죠.


아, 그날 식사를 한 식당을 소개드릴게요. 정문 횡단보도 건너에 있는 '당진 횟집'입니다. 이름에서 눈치를 채신 분들도 있겠는데, 할머니 초등학교 동창분이 운영하시는 식당입니다. 20년 넘게 운영하고 계시니 단골분들도 많으시겠죠? 저도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많이 피곤한 날이면 집에 가는 길에 아나고 매운탕과 소주 한 잔 하면서 힘을 내는 곳입니다. 


헉! 자연스럽게 광고가 되어버렸네요. 저는 앞으로도 이렇게 노골적인 광고를 하겠습니다. 손님들이 호수공원을 걷다 절로 가게로 발길을 옮기게 하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있다면 사연으로 보내주세요. 제가 방송을 이어갈 수 있는 큰 힘이 됩니다. 하하~




#매출


* 매출 : 물건 따위를 내다 파는 일 <네이버 국어사전>

    

첫 방송이 끝나자마자 윤재는 테이블에 풀썩 쓰러졌다. 끝냈다는 안도감과 성취감은 좋았지만 과연 동네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역시 다양하고 매력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 과연 사연은 올 것인가? 


“수고했네.”     


박 씨 아저씨는 공원 순찰을 나가며 엎드려 있는 윤재에게 한마디를 던지셨다. 아저씨는 건물 관리부터 공원 순찰까지, 공원과 관련된 이런저런 일들을 도맡아 하시는 호수공원의 터줏대감이다. 정규 근무 시간 외에도 관리사무소에 머물며 공원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라디오를 틀고 뭔가를 적거나 건물 이곳저곳에서 뭔지 모를 작업을 하고 계셨다. 


"아저씨, 들을만하셨어요?"


잠시 문 앞에 멈춰 선 아저씨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한마디를 툭 던지셨다.


"그냥... 퇴근할 때 아나고 매운탕이 먹고 싶어 졌어."


윤재는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 아저씨를 붙잡았다.


"아 근데요, 아저씨, 혹시 예전에 시츄 찾는 방송 한 적 있으세요? 현상... 아니 보상금 100만 원."


"어, 했지. 개도 내가 (평소와 달리 열심히) 순찰 돌다 찾았어."


'헐, 내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게 8할은 박 씨 아저씨 때문이었다니!' 


"그럼 보상금은?"


'쿵'


박 씨 아저씨는 대답 없이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얼마 후 전화벨이 울렸다. 당진 횟집을 운영하시는 할머니 친구분, 송할머니셨다. 첫 방송이라는 얘기를 듣고 굳이 공원에 나와 방송을 들었다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가게에 들르라 하셨다. 정리하고 20분 후쯤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윤재는 잠시 공원을 지켜봤다. 벚꽃이 본격적으로 피기 전인데도 사람이 참 많다. 일주일 뒤부터 본격적인 방송을 진행하니 그동안 충분히 사연이 와야 할 텐데... 생각을 하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일어섰다.


'일단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송할머니는 아나고 구이와 소주 한 병을 준비해 놓고 계셨다.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아나고를 굽는 냄새와 소주 한 잔, 열어 놓은 문으로 들어온 미지근한 바람 한 줄기에 윤재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자리에 앉아 방송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송할머니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윤재에게 건네주셨다. 


"이, 이게 뭐예요?"


"응, 광고비야. 광고비. 덕분에 손님 많이 오지 않겠어. 지켜보니 듣는 사람도 많던데."


"아니 딱히 이걸 바라고 한 건 아닌데... 그냥 가끔 아나고 매운탕이나 서비스로 주시면 되는데요."


"그냥 받아 둬. 친구 손잔데 그간 잘 챙겨주지도 못했구먼. 네 할머니 참 고생 많았지. 난 네 할머니 얘기 듣는데 눈물이 찔끔 나대.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니 얘기 제대로 나누기도 힘들었는데..."


"그럼, 주신 용돈으로 할머니 선물 해드릴게요. 송할머니 몫으로요."


"그건 내가 따로 할 거니까, 이 봉투는.... 그러니까, 네 첫 매출로 해. 네 방송 덕분에 내가 돈을 주고 싶어 졌으니, 그럼 그게 매출 아니겠어?"


"아... 첫 매출이군요."


'띠링'


가게 문에 달린 종소리에 돌아보니 박 씨 아저씨가 가게로 들어서고 있었다. 윤재와 눈이 마주친 박 씨 아저씨는 멋쩍게 웃었다.


"아나고 매운탕 먹고 퇴근하려고. 허허"


"예, 어서 오세요. 아저씨."


이른 봄밤. 그렇게 '동. 말. 스.'의 첫날은 간다.  




FAQ


윤재 : 매우 늦은 의문이지만, 아직 전 예비 창업자잖아요. 오늘 첫 매출을 올리니 하루빨리 사업자 등록을 하고 정식으로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멘토 : 오, 본격적이네요. 좋아요~ 사업자는 개인사업자, 법인사업자가 있어요. 개인사업자는 윤재 씨가 바로 회사가 되는 거예요. 자본금이 필요 없고, 소득도 윤재 씨 게 되죠. 작은 규모로 계속 운영할 생각이라면 그냥 개인사업자로 세무서에 등록하면 된답니다. 


법인사업자는 음... 일종의 잉태랄까요? 세상에 법인이라는 새로운 인격을 탄생시키는 거예요. 윤재 씨가 신청해 만들게 되지만 윤재 씨만의 것이 아닌 새로운 존재죠. 그래서 설립 과정도 복잡하고 자본금도 필요해요. 또 매출을 올려도 윤재 씨 개인 소유가 아니라 법인 소유가 되는 거죠. 


제 생각엔 일단 자본금이나 비용을 부담할 여력이 없다면 일단 개인사업자로 시작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나중에 좀 더 큰 뜻이 세워지고 함께하고 싶은 동업자나 투자자가 있을 때 법인을 설립하면 되구요.   





다음 화 예고 

    

“어, 어떤 일로 오신 건지?”


“방송 잘 듣고 있어요. 윤재님 맞죠? 영이 참 맑으시네요.”


“아, 예... 그런데?”


“제휴 제안을 하러 왔어요.”     



- Fin

이전 01화 1. 스피커가 말하면 안 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