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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범 Oct 11. 2023

7. 홍보 영상이 재밌으면 안 돼?

MZ사회생활기록부 > 예비창업자 노윤재편 (7)

10월 10일, On Air


<머머리 라디오 스테이션! 스토리를 들려줘!>


안녕. 난 웹툰 작가야. 누구냐고? 이름은 말 안 할게. 괜히 귀찮아질 거 같아서. 생활 속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웹툰으로 옮기고 있어. 난 무지 바빠. 일주일에 두 번이나 연재하거든. 제목도 얘기 안 할게. 바쁘니까. 바쁜데 왜 이걸 쓰고 있냐고? 내 유일한 휴식시간을 네가 방해해서야. 웬 반말이냐고? 바쁘니까! ‘–어요’, ‘-습니다’ 이렇게 길게 쓸 시간이 없어. 이 사연도 어렵게 틈을 내 쓰고 있는 거야.


그동안 난 너무 바빠서 운동할 시간도 없었어. 일주일에 두 번 연재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그림도 내가 그리고 스토리도 내가 써야 하니 정신없어. 그게 벌써 2년째야.      

우리 다섯 살짜리 딸이 내가 원고 작업을 하고 있는데 놀자며 공을 던졌어. 의자에 앉아있다가 그 공 받으려고 몸을 휙 돌렸는데 왼쪽 다섯 번째 갈비뼈가 나가버렸어. 그게 말이 돼? 응, 되더라. 며칠 입원했다 나왔어. 덕분에 휴재를 해야 했지. 내 팬들의 원성이 얼마나 자자했겠어.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어. 매일 저녁 호수공원을 5바퀴 돌아. 마스크에 모자 푹 눌러쓰고. 왜 그러냐고? 누가 날 알아볼까 봐 그래. 웹툰 작가인데 누가 얼굴을 알겠냐고? 나 인터뷰도 많이 했어. 타이틀은 항상 ‘꽃미남인데 웹툰까지?’였어.

그 신성한 시간에 당신 방송 때문에 머리를 비우고 싶은 시간이 방해를 받잖아! 사연들 들으며 자꾸 또 일 생각을 하게 돼!     




웹툰을 일주일에 두 번 연재한다는 건 정말 고된 일이야. 댓글 보다 보면 '그 작가 거저먹네.'라는 반응도 있지만 다 몰라서 하는 소리지. 일주일에 두 번, 웹툰으로 옮길만한 흥미로운 소재를 발굴한다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처음 100회 정도는 연재 전에 메모해 놨던 소재를 썼어. 근데 금세 바닥나 버렸어. 에피소드 후보가 한 30개가 남았을 때부터 고민이 시작됐지. 소재가 끊기면 어쩌지? 난 바빠서 취재 다닐 시간도 없는데... 누굴 만나 뭐 재밌는 일 없냐고 일일이 묻고 다니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20개가 남았을 땐 탈모가 시작됐어. M자형 탈모에 원형탈모까지. 확실히 남자의 멋은 헤어에 있더군. 한때 꽃미남 웹툰 작가로 이름을 날리던 내가, 내가 말야. 내가 탈모라니!     


답답해서 동네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머머리 형네 가게에 갔어. 젊었을 때부터 대형 트럭 운전을 하던 형인데 그렇게 전국을 쏘다니던 양반이 20년 동안 저축한 돈으로 낸 술집이야. 가게가 꽤 넓은데 워낙 실험정신이 강한 사람이라 맨날 테이블 배치도 바꾸고 일 년에 한두 번은 가게 콘셉트를 아예 바꿔서 지금은 무려 취조실 콘셉트라나? 메뉴판에는 ‘나에 대한 상대의 마음을 취조하라!’이란 슬로건이 적혀있고 설렁탕 하고  짜장면도 있어. 취조할 땐 그게 제격이라나?      


헌데 요상한 게 머머리 형과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정말 형한테 취조를 당하는 기분이 드는 거야. 머머리형이 스탠드 조명의 빛과 어둠 사이에 입만 내놓고 내 스트레스의 이유를 캐묻고 설렁탕까지 한 그릇 나오니 털어놓고 말았지. 눈물까지 한 방울 찔끔...

     

‘텅!’     


내 고민을 들은 머머리형이 솥뚜껑 같은 손으로 테이블을 내리쳤어. 화들짝 놀란 난 '무... 무슨 일이야' 물었어.    

 

“새로운 콘셉트 결정! 이제 여기는 라디오 스테이션!”     


“잉?”     


“손님들 보면서 앉아있으면 말야. 종종 그런 생각이 들어. 한 시간 동안 테이블들에서 오간 이야기를 모으면 책 한 권 쓰겠네? 그래 그걸 해보자!”     


* 여기서 윤재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한 이가 있다니!




그렇게 머머리형 가게와 내 웹툰의 콜라보가 이뤄진 거야. 형은 바로 공사에 들어갔어. 테이블에는 작은 마이크들이 놓였고 포털의 가게 소개에는 물론 메뉴판과 테이블에는 이런 안내가 붙었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줘!
전국의 애청자들이 듣고 싶어 아우성! 여기는 레이디오우 스테이션!
꽃미남 웹툰작가와의 혈기 넘치는 콜라보.
사소하기 그지없는 당신의 휘발성 이야기가 웹툰에 떡!


※ 테이블마다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어요. 막 이야기를 하다가 '어, 방금 나온 이야기 쓸만한데?' 싶으면 각자 앞에 설치된 핑크 버튼을 눌러주세요~ 그 이야기, 웹툰의 소재로 쓰일 수도? 사연이 채택되면 머머리 스페셜 안주 제공!     



테이블마다 손님들의 이야기가 담긴 녹음 파일이 생성되고 핑크 버튼이 눌린 시간대가 표시돼. 매주 파일들이 오면 작업실 막내가 1차로 이야기를 걸러. 오, 그런데 생각보다 쏠쏠한 소재들이 많은 거야. 장르도 어찌나 다양한지, 멜로, 로맨틱, 누아르, 스릴러, 미스터리, 공포, 판타지, 성인물 등등 등등. 덕분에 난 소재 스트레스에서 해방됐지! 사연이 소개된 사람들이 나중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까도 걱정했는데 자기 이야기가 쓰이면 대부분 좋아하더라고. 게다가 '핑크 버튼'이라는 개인정보 제공 동의 과정까지 거쳤잖아?     


지금은 머머리형이랑 ‘머머리 라디오 스테이션’ 프랜차이즈도 얘기하고 있어. 한 다섯 군데서 이야기를 모아도 평생 소재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아서. ㅍ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정색, 난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들어 당신을 가리키고 있음) 당신 이야기도 웹툰에 등장할 수 있습니다! 머머리 라디오 스테이션에 오셔서 핑크 버튼을 누를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위치는 가게 이름으로 알아서 검색.”          




#홍보


* 홍보 : 널리 알림, 또는 그 소식이나 보도 <네이버 국어사전>


10월에 접어들었다.

사업계획서 상에는 이 시기에 할 일로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서비스 소개를 위해 동.말.스. 참여 주민과 주변 소상공인이 등장하는 홍보 영상 제작,’

- 영상의 제작 목표는 우선적으로 현재의 서비스에 대한 주민 참여 활성화에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2년 차 사업을 진행할 지역의 섭외를 원활히 하고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투자자와 제휴사에 적극적으로 홍보함에 있음


이렇게 홍보영상에 대한 예산은 확보해 놨기에 이제 누구와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면 된다.


윤재는 콘셉트를 고민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일단 육하원칙에 따라 적어보기로 했다.


(일) 누가 : 동.말.스.를 가장 진정성 있게 소개해 줄 사람들은 ‘사연을 보낸 사람들’이겠지?

(이) 언제 : 이 호수공원을 이용하고 있을 때, 그리고 사람들이 방송의 영향을 받을 그때,

(삼) 어디서 : 당연히 호수공원 곳곳이 되겠는데... 방송의 느낌을 주려면 이곳, 방송을 하는 곳도 등장을 하는 게 좋겠고, 방송의 영향이 미쳐 호수공원을 벗어나 확장된 방송의 영역이 된 동네 공간도 좋겠고.

(사) 무엇을 : 방송의 영향으로 인한 변화의 모습을 보여줘야겠고,

(오) 왜 : 왜, 왜라... 방송이 도대체 어떤 작용을 해서 변화가 생겼는지를 보여주자

(육) 어떻게 : 요건... 보여주는 방식이라 치고, 사람의 이야기, 즉 인터뷰로 보여주자.     


윤재는 이 뼈대를 기반으로 홍보영상 기획안을 짰다. 다음 할 일은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할 전문가를 구하는 것이다. 예산은 많지 않았다. 전문 업체에 맡기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그리고 가능하면 평범하지 않은, 독특한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윤재는 기자 아카데미의 친한 동생인 정석을 떠올렸다. 이미 10만 구독자가 시청하는 유튜브 채널 운영자였다. 다만... 방송 콘셉트는 '몰카'였다. 그렇다고 불법적인 건 아니고 남녀 커플을 섭외해 그들 사이의 갈등을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영상을 올린다. 물론 결국 갈등이 해결되긴 하지만 헤어짐으로써 해결되는 경우도 적잖아 구독자들은 그의 채널을 '커플 브레이커'라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연을 신청하는 커플은 차고 넘친다니 참. 어쨌든 정석이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걸 잘 캐치하는 건 확실한 사실이다.


윤재는 정석과 일단 술자리를 가졌다.


정석 : 아유~ 형 나 바쁘고 비싼 고급인력이야. 뭐 한 1,000만 원 이상 준다면 움직일 수도 있겠지만.

윤재 : 줄게.

정석 : 엥? 형이 뭔 돈이 있다고?

윤재 : 지분 줄게.  

정석 : 에이~ 형 아직 법인 못 냈잖아.      

윤재 : 냈어. 지난달에.

정석 : 헐. 소리소문 없이! 됐다~ 벼룩의 간을 빼먹지. 뭐 들어보니 재밌을 거 같긴 해서, 그냥 형 예산에 맞춰줄게. 대신!

윤재 : 대신?

정석 : 내 크리에이티브를 존중해 줘. 기획안은 형이 짰지만 영상화하는 건 내 몫. 형은 결과물만 봐.

윤재 : 어째 불안한데...  


윤재와 정석, 그리고 두 명의 스태프는 먼저 관리실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모습을 촬영한 뒤, 윤재가 방송을 진행하는 동안 정석은 호수공원에 나가 호수공원과 그곳의 사람들의 스케치 영상을 촬영했다.


그리고 정석의 의견을 받아들여 머머리 라디오 스테이션에 그간 사연을 보내고 관여했던 동네 사람 몇몇을 모아 동.말.스.에 대한 프리토킹을 진행했다. 참석자는 작가 지망생, 기자(헐), 여고생 수아, 웹툰작가(가보니 그곳에 있었다. 바쁘다면서...), 제휴를 맺은 한의사와 간호사 등이었다.


정석은 자연스럽게, 가능하면 많은 얘기를 나누도록 하면 나중에 편집하는 건 자신 있다며 적극적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음료수를 홀짝이는 미성년자 수아를 빼곤... 모두들 취기가 올라 연신 핑크버튼을 누르며 수다를 쏟아냈다.




며칠 뒤 정석은 '대박대박 ㅋㅋㅋ'이라는 제목으로 가편집본을 첨부한 메일을 보내왔다.


윤재는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파일을 열었다.


'이야~ 역시 정석! 재밌네. 이거. 유튜브 올리면 대박 나겠는데?'     


윤재는 영상을 보며 울고 웃다가, 급 우울해졌다!

     

'이거... 스타트업 홍보영상이 아니라 예능이잖아...'




FAQ


* 윤재는 멘토님과 근황에 대한 통화를 하다 최근에 작업한 홍보영상 얘기를 꺼냈다.


윤재 : 최근에 홍보 영상 촬영을 했어요. 영상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멘토 : 오~ 드디어 찍었네요. 나한테도 보내주시고요, 보통 스타트업은 이전에 존재하던 서비스와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이죠? 즉 낯선 서비스일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면 초기에는 서비스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설명하는 데 말이나 문서로 했을 때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윤재 씨도 OT때 서비스 설명하다 좀 힘들어했던 거 같은데? ㅎㅎ 그럴 때 잘 만든 영상 하나 딱 틀어주면 훨씬 효율적이고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영상에 빠지지 않는 게 이 새로운 서비스를 경험해 본 사용자들의 후기, 감상이죠.


즉, 홍보영상은 상대방에게 낯선 서비스를 이해시키고 대리경험을 시키기 위해 스타트업엔 필수적입니다.


일단 유튜브를 개설하고 첫 영상으로 홍보 영상을 올린 뒤, 서비스를 소개하고 싶은 이들에겐 링크를 보내며 간단히 텍스트로 소개를 해보세요. 또 요샌 짧은 쇼츠를 사람들이 많이 보니까 편집하다 제외된 재밌는 영상들이 있으면 쇼츠로 제작해 유튜브뿐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활용해도 좋을 거예요.


윤재 : 아직 유튜브 개설을 안 해서, 영상을 만들어 준 친구 채널에 올렸는데 조회수가 1만을 넘어갔어요. 이게 동. 말. 스. 홍보 영상인지 그 친구 영상인지.


멘토 : 벌써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하고 있군요. ㅎㅎ  기대되는데요?




다음 이야기


어느새 윤재의 사업은 작게나마 성장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윤재에게도 함께 할 이가 필요했다.

윤재는 방송이 끝난 관리실에 앉아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부의 끝에서 끝으로 몇 차례 오르내렸다.


그러다 '유아림'이라는 이름에서 손끝이 머물렀다. 그녀는 제대 후, 음악을 하던 군대 후임으로부터 소개받은 걸그룹, 아니 예비 걸그룹 멤버였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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