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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슬픈 얼굴의 ‘세비야(Sevilla)’

[유한한 영국생활자의 틈만 나면 떠나는 여행기] 스페인, 세비야

by 노현지

세비야(Sevilla) 기차역에서 역사 밖으로 나와 도시 중심부로 이동하며 처음 본 ‘세비야’의 풍경은 잠시 내 고향 부산을 연상시켰다. 큰 도시이지만 대도시의 세련됨은 조금 부족한, 투박한 번화함과 낙후된 정겨움이 묻어났다. 특히 기차역에서 도심 방향으로 이어진 길의 울퉁불퉁한 보도블록과 칠이 벗겨진 저층의 맨션 같은 건물이 부산 고향집 동네의 그것들과 아주 흡사했다.

덜컹덜컹 돌바닥 위에 캐리어를 끌고 큰 길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 들어갈수록 길은 좁고, 서로 엉켜 복잡했다. 또 한 차례 길을 꺾어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만한 골목에 이르자 우리 가족은 동시에 탄성을 지렀다.


“우와~ 오렌지 나무!!”


< 파란 하늘과 주황빛 오렌지 나무 >


2월에도 오렌지가 열리는, 태양이 작열하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중심, ‘세비야’였다. 오렌지 나무 앞에서 고향 부산의 잔상이 쏙 사라진 것은 두 말한 것도 없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오렌지 열매가 탐스러웠다.

마드리드에 이어 세비야의 하늘도 푸르렀다. 파랑이 흘러 넘치던 마드리드의 하늘이 시원한 파란색이라면, 세비야의 하늘은 뜨겁고 진한 파랑. 마드리드의 하늘에 손을 담그면 시원한 파란색 물이 찰랑이며 손을 씻어줄 것 같은 반면, 세비야의 하늘에 손을 담그면 끈적끈적한 점성의 파란액체가 손끝에서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손에 묻은 진한 파랑색을 하얀 캔버스에 꾹꾹 눌러 닦은 후, 채도가 높은 오렌지색 물감의 튜브를 열어 팔레트에 풀지도 않고 파랗게 물든 캔버스 위에 바로 툭, 툭 점처럼 동그랗게 짜내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세비야의 진파란 하늘 아래 주렁주렁 열린 오렌지 나무 풍경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아, 상상을 하니 멋지다. 언젠가 아크릴 물감 쓰는 법을 배우게 된다면 꼭 도전해 봐야겠다.).


< 점성의 파란액체가 묻어 날 것 같은 진파랑의 세비야 하늘 >



파랑과 주황의 색채적 조화를 실제의 시각체험을 통한 감각적 방법으로 알려준, 세비야 어느 골목길의 오렌지 나무는 이후 여행 내내 세비야 곳곳에서 보였다. 바로 세비야의 흔한 가로수가 오렌지 나무였던 것이다. 평범한(물론 ‘세비야’란 곳 자체가 평범하진 않지만) 동네 골목길이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도심의 인도, 또는 노천 카페 야외 테이블 의자 위, 그리고 공원길을 따라 쭉 뻗어 있는 오렌지 나무를 상상해 보라.


< 공원과 길가의 오렌지 가로수 >


솔직하게 야자수까지는 예상을 했다. 겨울에도 반팔을 입을 수 있는 뜨거운 도시이니 바닷가 휴양지가 아니라도 야자수 가로수야 있을 법 하지 않은가. 그러나 오렌지 나무는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영국인 지인과 얘기를 하다가 안 사실이지만, 영국인들에게는 세비야 하면 이 ‘오렌지 가로수’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인 것 같았다. 아직 세비야를 가 본 적 없다는 두 명의 영국인에게 (각각 따로) 세비야로 여행 다녀온 소식을 전했더니 둘 다 처음 묻는 질문이 길가의 오렌지 나무를 보았냐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리고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세비야의 이미지는 '플라멩코(flamenco)'의 정열의 붉은 색이었는데, 같은 도시를 바라보는 같은 외국인이라도(세비야 입장에선 영국인도 나도 외국인) 그 도시에 대해 다른 대표 이미지를 품고 있는 것이 신선했다.

언젠가 꼭 한 번 보고 싶은 풍경이라 말하던 한 지인이 오렌지 나무 향기는 어떠했냐고 덧붙여 물었다. 가보지 않은 그녀가 어떻게 알았을까, 그곳의 ‘오렌지꽃 향기’를.

어느 하루 해 저문 저녁,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어둑한 바람을 타고 달큰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날아와 코끝에 스쳤다. 나는 고개를 돌려 길가의 상점들을 돌아보며 향수 가게를 찾았다. 향수나 화장품 가게에서 나오는 향기인 줄 알았다. 발걸음을 옮기는데도 계속 따라오는 향기에, 그것이 도로 가에 늘어선 머리 위 오렌지 나무에서 풍기는 향기란 것을 알게 되었다. 발랄하고 상큼한 오렌지 과실향과는 다른, 라일락꽃 향기처럼 은은한 그 향기는 오렌지 꽃 향기였다.


“어머, 오렌지 나무에 꽃이 피네.”


시험문제 앞에서는 과일과 채소의 차이도, 과실의 성장주기도 잘 맞추지만, 일상적 생활 속에서는 ‘오렌지는 원래부터 오렌지’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우리였다. 당연한 것들을 잊고 사는 우리에게 여행은 가끔씩 낯선 풍경을 통해 당연했던 것들의 낯선 ‘원래’ 모습을 보여준다.






세비야에서 만난 ‘플라멩코’도 그랬다. 프릴이 가득 달린 붉은 드레스를 입은 무희로 대표되는 플라멩코는 흔히 뜨거운 스페인 남부의 날씨처럼 뜨거운 정열의 춤으로 인식된다. 박수와 발 구름을 절로 부르는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허리선이 드러나는 붉은 드레스를 감아 쥐고, 짙게 화장한 눈매로 상대를 응시하는 여인의 자태는 얼마나 고혹적인가.

그러나 세비야에서의 첫 날 밤, 미리 예약해야 입장할 수 있는 소규모 플라멩코 공연장(회당 관객이 50명 남짓. 세비야에는 이런 공연장이 아주 많다.)에서 본 플라멩코는 지금껏 미디어에서 접했던, 혹은 거리에서 흥겨운 발 놀림으로 행인들의 관심을 끌던 플라멩코와 완전히 달랐다.


< 플라멩코 박물관 전시 >


우선 세비야에 플라멩코 공연장이 많은 이유는 집시들의 춤이었던 플라멩코가 여러 문화와 환경의 영향을 받아 현재의 플라멩코로 발전하고 자리 잡은 곳이 이곳 ‘세비야’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공연장 중 나도 겨우 하나의 공연을 보았으니 다른 공연장에서는 어떤 무용수들이 나와 어떤 플라멩코를 추는지 다 알 수는 없다(플라멩코 춤의 종류가 다양하다.). 하지만 한 가지 강한 확신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세비야의 아무개 길에서 보여지는 흥겹기만한 플라멩코와는 완전히 다른 공연이 세비야의 밤, 골목골목에 숨겨진 작은 공연장에서 펼쳐지리라는 것이다.


< 플라멩코 공연장. 사진촬영이 불가하여 공연 전 무대 모습만 남겼다. >


1시간 정도 소요된 플라멩코 공연은 두 남자의 기타 연주와 노래로 시작했다. 그 음악과 노래부터 달랐다. 기타 소리는 흐느끼듯 구슬펐고, 노래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막힌 듯 거칠게 밖으로 나와 서로 엉켜 뭉그러졌다. 그가 부른 것이 노래인지 한숨인지, 혹은 울음인지. 그들이 함께 만든 음악은 울리고 울려 천장이 높은 작은 공연장을 가득 채웠지만, 나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윽고 남녀 무용수가 등장했다. 서로를 가만히 응시하는 눈빛, 집어삼킬 듯 상대를 향해 달려드는 열정,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닿을 듯 말 듯 가까워졌다가 불현듯 휘리릭 돌아 멀어지는 몸짓, 순간 순간의 동작들이 긴장감을 불렀다. 그들의 플라멩코는 거칠고, 무겁고, 비장했다.



특히, 여자 무용수의 몰입도와 무대 장악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독무의 시간. 홀로 무대 가운데 선 그녀는 땅이 꺼지도록 발로 바닥을 굴렀다. 손바닥으로 자신의 온 몸을 두드려 소리를 만들었다. 플라멩코 하면 따라오는 경쾌하고 박진감 넘치는 박수 리듬이 그녀의 손 안에서는 숨 쉴 공간도 없게 다급하고 빠르게 부딪혀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그녀가 관객석을 뚫을 듯 한 곳을 응시할 때는 그 공간 안의 모든 숨이 그녀를 향해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짙게 화장한 눈매의 그녀는 강인해 보였지만, 그녀의 모든 동작도 힘에 넘쳤지만, 가련하고 슬퍼 보였다. 기를 쓰고 과시하는 강인함의 진짜 실체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약한 두려움인 것처럼. 눈을 뗄래야 뗄 수 없는, 춤을 추는 그녀의 눈을 계속 바라보았다. 어쩌면 울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정작 눈물이 핑그르 돈 것은 나의 눈이었다.


공연장을 나서자 밤이 되어 식은 공기가 옷깃으로 스며들어 몸이 움츠러들었다. 공연장 안의 열기가 남아 있는 가슴은 아직 뜨거웠다. 좁은 골목 사이로 까만 하늘이 보였다. 조명을 밝힌 골목은 환하게 밝았다. 세비야에 잠시 머무는 동안 우리의 보금자리가 되어줄 숙소를 향해 걸었다. 그리고 떠돌아 다니는 집시의 운명을 담은 춤을 세비야의 어느 골목에서 매일 새롭게 찾아오는 여행자들을 위해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그들의 묶인 삶을 생각했다. 뜨겁고 시린 아이러니한 밤.


< 세비야의 밤 공기 >






이 기묘한 부조화와 감정적 스산함은 ‘세비야’를 여행하는 내내 나를 따라 다녔다.

세비야는 이슬람 문화의 영향으로 거리의 풍경이 아주 다채롭다. 건물의 모양이 동글동글하고, 건물의 색깔은 원색적이고 알록달록하다(여기에 오렌지 가로수도 한 역할을 더한다.). 대표적인 이슬람 유적, ‘알카사르 궁전(Real Alcazar de Sevilla)’의 살구빛 외관과 내부의 노란색 벽, 정교한 세부 타일장식, 오렌지 나무와 열대나무들이 가득한 정원은 다채로운 색감의 축제 같다. 영국의 점잖은 미색 건물들을 주로 보다가 이 궁전에 서 있으니 전문 사진 촬영 스튜디오에 들어와 있는 착각이 들었다(그래서 사진을 무진장 찍었다. 하하.)


< 세비야의 대표적 이슬람 유적, 알카사르 궁전 >


이슬람 문화 위에 씌워진 기독교 문화는 수직으로 쭉 뻗은 고딕양식의 거대한 ‘세비야 대성당’을 남겼다.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이슬람 문화를 지워버리고 싶은 강한 염원이었는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세비야 대성당은(설계 당시부터 ‘세계 최고’로 크게 짓겠다고 작정을 했다고 한다.) 세계 3대 성당으로 손꼽히며 많은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퇴근시간 강변북로 위의 교통체증처럼 긴 줄의 사람행렬이 정체되는 세비야 대성당 꼭대기 전망대에 올라가면, 기독교 문화의 정수 위에서 바로 옆에 자리한 이슬람 유적의 정수, 알카사르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그 외에도 도시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이슬람의 동글동글 찬란한 색감을 감상할 수 있다.


< 고딕 양식이 돋보이는 세계 3대 성당, 세비야 대성당 >


두 문화의 공존은 아름다우면서 이질적이다. 이질적이면서 아름답다. 그리고 이곳의 사람들은 시대마다 새롭게 침투해 오는 외부의 문화를 수용하고 적응하며 잘 살아왔다. 이제 남겨진 두 문화의 아름다운 부조화는 ‘이국적’이라는 말로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 부조화가 아름다워지기까지 이곳에는 얼마나 많은 ‘상실’이 있었을까. 종교를, 가족을, 삶의 터전을 뺏고 빼앗기고, 결국 순종하고 순응한 뒤에 찾아온 아름다움들.


<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세비야 전경 >


인류의 역사에서 그렇지 않은 도시가 어디 있겠냐마는 세비야는 그 ‘혼란’이 도드라지게 드러나 있어, 그 이면의 ‘상실’이 또렷하게 읽혀 내겐 아름답지만 슬픈 얼굴로 기억되었다.




플라멩코 공연을 보기 전, 늦은 오후에 세비야 스페인 광장을 찾았다. 스페인의 도시 마다 있는 스페인 광장이지만 특히나 세비야에서 유명한 스페인 광장은, 규모나 건축적 아름다움에서 가히 그럴 만 했다.


<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 >



화려한 스페인 광장에 시간이 흐르고, 뜨거운 태양이 기울어 노을이 졌다. 동전함을 앞에 두고 기타를 연주하는 남자는 지치지도 않았다. 문득 서글퍼진 그때의 나는 노을 때문이었을까, 플라멩코 기타 선율 때문이었을까, 세비야의 혼란한 아름다움 때문이었을까.




[유한한 영국생활자의 틈만 나면 떠나는 여행기] 스페인, 세비야 편 마침. & 스페인 여행도 마침.

[유한한 영국생활자의 틈만 나면 떠나는 여행기] 스페인, 세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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