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빼고 영국 여행]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에든버러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 ‘로열 마일’이고, ‘해리 포터’의 흔적도 그 로열 마일에서 가장 많이 찾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로열 마일만 둘러보기에 에든버러는 볼 것이 많은 도시이다. 특히나 겨울의 에든버러에는 따뜻한 아름다움이 화려하게 만개하는 곳이 있었으니, 크리스마스 마켓이었다.
// 겨울 에든버러의 크리스마스 마켓
에든버러 웨이벌리 기차역에서 로열 마일이 있는 ‘올드 타운(Old Town)’ 방향이 아닌, 그 반대편 ‘뉴 타운(New Town)’ 쪽으로 나가면 완전히 다른 모습의 에든버러를 볼 수 있었다. 상점들이 밀집한 현대적 쇼핑몰과 ‘3분 빨리 가는 시계탑(Balmoral Clock Tower)’이 있는 발모랄(Balmoral) 호텔의 웅장한 자태 등이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대도시 ‘에든버러’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3분 빨리 가는 시계’란 에든버러의 대표 호텔인 발모랄 호텔 외관에 세워진 시계탑으로, 시계탑의 시각이 현재 시각보다 3분 빠르다. 이는 시계가 고장이 나서 빠르게 가는 것이 아니라, 기차를 타러 가는 사람들이 3분 빠른 호텔 시계를 보고 발걸음을 서둘러 늦지 않게 기차역에 도착하도록 하는 배려 차원에서 1900년대 초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줄곧 빠르게 흘러가도록 맞춰져 있다고 한다.
정말로 핸드폰 시각보다 3분 빠르게 흘러가는 에든버러 명물 시계를 확인하며 도착한 뉴 타운 방향의 기차역 앞은 사람들과 음악 소리 등으로 특별히 더욱 혼잡했다. 기차역 왼편에, 딱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모양의 높고 뾰족한 탑 뒤쪽으로 듣기만 해도 설레고, 보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입구에서부터 화려하고 빠른(진짜 빠르다!) 회전목마가 환하게 불을 밝힌 조명 장식과 즐거운 음악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에든버러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규모가 꽤 컸다. 에든버러로 오기 전 런던에서도 크리스마스 마켓을 두 군데 들렀는데, 무엇이든 가장 크고 화려할 것 같은 런던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예상보다 규모가 작았다. 런던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단위 규모가 작은 대신 많은 곳에서 열리는 것이 특징이라고 미리 팁을 들은 것이 있어 실망을 덜 했지만 뭔가 꽉 찬 느낌을 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런던에서 덜 채운 크리스마스 감상이 에든버러의 ‘프린스 스트리트 가든(Prince Street Garden)’에 응집된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가득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혹시 크리스마스 시즌에 영국에 가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경험하려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런던 보다 지방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방문하길 추천한다. (코로나 때문에 취소되어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비교적 런던에서 가까운 '바스(Bath)'에도 꽤 큰 규모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고 하니 겨울에 영국 여행을 하실 분들은 참고를! 찡긋~)
일단 봤다면 안 탈 수 없는 회전목마를 시작으로, 꼼꼼하게 둘러보며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겼다. 장갑을 챙겨오지 않아 손이 시렸던 아들은 축구공이 그려진 장갑을 샀고, 1인 1핫초코도 실천했다.
차라리 인형을 제 돈 주고 구입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갑을 열고 마는 ‘다트 던져기’ 게임에서는 역시나 실패의 고배를 맛보았지만, 곧이어 만난 ‘깡통맞추기’ 게임 가게 앞에서 한 번 더 지갑을 열고 마는 것이 이런 축제 같은 크리스마스 마켓을 처음 겪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하는 부모들의 운명이었다. (역시나 결과는 실패! 하하하하....ㅜㅠ)
입이 쩍 벌어지게 쌓여 있는 온갖 종류의 캔디와 젤리들을 간신히 피해 핫도그로 배를 채우면서 아기자기 어여쁜 크리스마스 장식들과 만든 이의 정성이 가득 담긴 소품들을 구경했다. 물론 ‘한 번뿐일지도 모를’과 ‘기념’이라는 미명 하에 내 사심도 채웠다.
화려하고 북적북적한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아래로 내려와 프린스 스트리트 가든의 잔디를 걸었다. 지대가 낮아 오른쪽으로 멀리 솟아 있는 로열 마일과 에든버러 성이 더욱 높고 아련하게 보였다.
왼쪽으로는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처음 들어설 때 본 독특한 형상의 탑이 보였다. ‘먹구름’이라고도 할 수 없게 온통 회색인 하늘의 음울함과 잘 어울리는 탑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에든버러의 중심에 그냥 서 있을 리는 없을 저 탑은.
// ‘월터 스콧’의 에든버러
에든버러 올드 타운과 뉴 타운의 가운데, 프린스 스트리트에 상징처럼 서 있는 독특한 형상의 탑은 ‘스콧 기념탑’이었다.
'스콧 기념탑'은 18~19세기 영국에 유행했던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인 ‘월터 스콧(Walter Scott)’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월터 스콧은 특히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글을 많이 남겨 스코틀랜드의 문학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에든버러를 포함한 스코틀랜드의 역사를 낭만주의적 소설로 승화시킨 월터 스콧을 에든버러가 사랑하고 기념탑을 세워 기억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 같았다.
월터 스콧에 대한 사랑은 기차역의 이름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에든버러 기차역의 이름에는 ‘웨이벌리 (Waverley)’가 들어간다. '웨이벌리'는 월터 스콧이 스코틀랜드에 대해 쓴 소설의 제목이라고 한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에든버러로 향하면서 왜 역 이름이 ‘에든버러 웨이벌리 역’일까 궁금해했던 의문이 한 순간에 해결되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터넷으로 ‘월터 스콧’에 대해 알아보아도 그 내용 중 어디에도 내가 이 작가에 대해 피상적으로라도 알고 있었던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그의 이름도 낯설었고, 그의 대표작품들 중 어느 것 하나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읽지는 않았더라도 스치듯 제목을 들어본 것조차 없었다. (시 〈호수의 여인〉, 소설 《웨이벌리》, 《옛 사람》, 《로브 로이》, 《미들로디언의 심장》, 《래머무어의 신부》, 《아이반호》 등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에든버러의 중심에 기념탑이 세워지고, 기차역 이름에도 이름을 새긴 대작가의 명성을 온전히 느끼지는 못하고 온 것이 꽤 아쉬웠다. 에든버러의 월터 스콧을 온전히 느끼기에 나는 너무 먼 곳, 먼 미래에서 온 이방인이었으리라.
// 에든버러가 낳은 또 하나의 대작가 ‘아서 코난 도일’
그러나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은 알았다.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전집을 아직 다 독파하지는 못했지만, 책을 읽기 전부터 너무나 유명한 이름 ‘셜록 홈즈’, 그를 탄생시킨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Special Thanks to 베네딕트 컴버배치(Benedict Cumberbatch))
범죄 소설의 대표 작가 아서 코난 도일 역시 이곳 에든버러 출신이다. 코난 도일을 기리기 위해 그의 대표작인 <셜록 홈즈> 박물관을 에든버러에 지었을 수도 있었겠으나, 셜록의 집이 런던 베이커(Baker)가에 있는 관계로 셜록 홈즈 박물관은 런던 베이커 스트리트에 있다(셜록 홈즈 팬이라면 꼭 한 번 가 보길!).
대신 에든버러에는 아서 코난 도일의 이름을 딴 펍, '코난 도일 펍(The Conan Doyle Pub)'이 있다. 처음에는 이 펍이 코난 도일이 태어난 집을 개조한 것인 줄 알았다(많이들 그렇게 알고 있다! 하하). 그러나 정확히 이 펍이 코난 도일의 생가는 아니고, 펍 인근에 코난 도일의 생가(Picardy Place)가 있다고 한다.
코난 도일의 생가와 가까운 곳에 자리한 인연으로, 이 펍이 ‘셜록 홈즈’와 ‘코난 도일’의 컨셉을 빌려 펍을 운영하면서 이곳을 찾는 코난 도일의 팬들과 함께 에든버러의 대작가 코난 도일을 기리고 있는 듯했다. 스코틀랜드의 전통 음식인 '하기스(Haggis, 양의 내장(심장, 간, 폐)을 잘게 다져 양의 위에 담고 귀리, 양파, 허브 등과 함께 끓여 만든 스코틀랜드의 전통 음식)'가 유명하다는 이 특별한 펍을 가보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해리 포터’ 덕후인 딸은, 또한 어린이용 셜록 홈즈 책을 몇 번씩 반복해서 읽고 또 읽는, ‘셜록 홈즈’의 빅팬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첫 번째로 찾아간 ‘코난 도일 펍’은 우리를 환영해 주지 못했다. 펍 앞의 안내문을 보니 특별한 행사가 있어 전체 대관이 되어버렸다나. 조앤 롤링의 카페 ‘엘리펀트’도 들어가지 못했는데 코난 도일 펍마저 불발되니 심기가 불편해졌다. 내일이면 에든버러를 떠나야 했기에 이곳을 다시 방문할 수는 없는 일정, 어쩔 수 없이 펍 외관 앞에서 사진 촬영만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마음은 아쉬워도 에든버러에는 아직 볼 것들이 많이 남아 쓸쓸할 겨를은 없었다. 에든버러를 대표하는 풍경인 ‘칼튼 힐(Calton Hill)’에 올라 탁 트인 에든버러 도시 전망도 누려야 했고, 에든버러 성과 함께 로열 마일의 반대편 끝을 지키는 홀리루드 궁전(Holyrood Palace)에서 스코틀랜드의 대표 궁전 양식도 구경해야 했으며, 주인이 죽은 후에도 14년 동안이나 주인의 무덤을 지킨 이야기로 충성스러운 개의 상징이 된 ‘보비(Bobby)’ 동상도 찾아야 했다.
볼거리가 참 많고, 지역에 따라(올드 타운 vs. 뉴 타운) 다른 분위기를 전하던 에든버러의 여행이 바쁘지만 감상적이고, 또 아쉽게 마무리되었다.
// 다시 찾은 여름의 에든버러, 그리고 다시 ‘코난 도일’
다음 해 여름, 다시 에든버러를 찾았다.
에든버러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으나, 스코틀랜드 하이랜드를 여행하러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에 에든버러에 잠시 들렀다. 빡빡한 일정 중간에 억지로 시간을 낸 반나절의 체류였으나, 무리하길 잘 했다고 생각한 시간이었다. 겨울과는 또 다른 느낌의 여름의 에든버러가 너무도 근사했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쏟아낼 듯하던 잿빛 하늘은 온데간데 없고,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만든 선명한 빛이 에든버러를 밝혔다. 무겁고 비장했던 로열 마일도 여름을 맞아 비장미를 거두고 환하게 웃고 있는 듯했다. 에든버러 성은 보다 희망적이었고, 음산해서 발을 들여놓기 쉽지 않았던 큰 길 뒤편의 골목길(Close)들도 골목길 특유의 호기심과 감상을 장착했다.
축축한 안개가 가득했던 프린스 스트리트 가든(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던 곳)에는 크리스마스 소품 대신 일광욕을 하러 나온 사람들의 에너지가 가득했다. 모든 곳이 겨울과는 다르게 보이는 마법 같은 여름의 에든버러였다.
여기서 잠깐, 궁금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남기는 TMI!
그래서 어느 시기의 에든버러가 더 좋았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변함없이 겨울의 에든버러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여름의 에든버러는 아주 즐거운 얼굴이었다. 날씨도 선선해서 여행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그러나 그렇게 경쾌한 대도시는 영국의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진짜 에든버러는 겨울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내 취향일 뿐, 쾌적하고 깔끔한 여행을 사랑하는 나의 남편은 아마도 여름 에든버러에 ‘백 표’를 던질 것이다. 하하하.
이전에 왔을 때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선사하는 에든버러 거리를 향해 감탄과 놀라움을 연발하며, 첫 방문에서 성공하지 못했던 ‘코난 도일 펍’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활짝 문이 열려 있었다.
펍은 구석구석 셜록 홈즈와 아서 코난 도일을 연상케 하는 소품들로 분위기 있게 장식되어 있었다. 셜록 홈즈의 트레이드 마크인 모자와 바이올린, 고풍스러운 책들과 액자 등등.
펍 내부를 구경하다보니 주문한 음식과 맥주가 나왔다. 차마 유명한 ‘하기스’는 주문하지 못했다. 나는 양고기도, 내장류도 잘 먹지 못하는 초급 입맛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햄버거는 아주 맛있었다. 관광지의 유명한 음식점들이 명성에 비해 음식맛은 별로일 때가 있는데, ‘코난 도일 펍’은 ‘코난 도일’이라는 이름을 지운다고 해도 충분히 사랑을 받을 만한 펍일 것 같았다.
그리고 영국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로컬 에일(Ale)! (코난 도일 펍은 맥주 종류도 다양했다.)
영국의 펍에서 마시는 맥주는 언제나 옳지만, 다시 찾은 에든버러, 다시 찾은 ‘코난 도일 펍’에서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은 밝고 환한 여름의 에든버러와 참 잘 어울린다고, 에든버러에 다시 와서 참 다행이라고, 맥주 잔에 맥주가 아쉽게 사라지는 동안 내내 생각했다.
[런던 빼고 영국 여행]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못 다 전한 에든버러, 그 다채로운 매력 _ 에든버러 여행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