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함몰되기 전인 지난 초겨울, 그러니까 연도로는 2019년의 초겨울, 통영으로 여행을 갔다. 통영에 동백꽃이 유명한 것을 처음 알았다. 지천에 핀 동백이 그렇게 예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내게 동백꽃은 그저 꽃이 크고 빨간, 다소 고풍스러운 꽃이었다. 하지만 그해 겨울의 동백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세찬 겨울바다 바람을 맞으며 새빨갛게 피어나는 꽃.
끝내, ‘툭’ 하고 자신을 바닥으로 던질 지언정 제 생기를 조금씩 내어주며 지리멸렬한 시든 숨을 연명하지 않는 꽃.
바람이 모질수록 그 기품이 더욱 도드라지는 꽃. 동백꽃은 그렇게 고단함 속에서도 지지 않는 꽃이라는 것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알려주었다. 로맨스와 스릴러의 탄탄한 구성이 일품이기도 했지만, 이 드라마가 특히 좋았던 이유는 세상이 이유 없이 얕잡아 보는 이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근데요 사장님. 음… 골뱅이 만오천원, 두루치기 만이천원, 뿔소라가 팔천원. 이 안에 제 손목값이랑 웃음값은 없는 거예요.”
“저기선 다들 그 말을 하잖아요. 뭐만 찾아주면 그러잖아요, 고맙다고. 제가 살면서요, 미안하게됐다 이런 얘기는 좀 들어봤거든요. 사랑한다는 얘기는 아무렇게나 들었죠. 근데 이상하게요, 아무도 나한테 고맙다고는 안해요. 아무도 나한텐 그 말은 안해요.”
통영의 길가에, 언덕에, 벽에, 어디에나 피어있는 동백꽃을 보며, 아프고, 서럽고, 그럼에도 따뜻했던 동백이의 말을 떠올리며 그해 겨울은 뭉클했다.
다시 겨울이 오고, 동백꽃이 피었다.
<동백꽃 필 무렵>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 문득 문득 떠오른다.
“이제는 당신 꽃 필 무렵”
얼핏 열없고 순진해 보일 수 있는 이 말이 희망과 위로로 다가오는 것이 이야기의 힘일 것이다.
그래, 이제는 내 꽃이 필 차례.
나의 계절에 필 나의 꽃.
크기와 색깔과 향기를 비교함 없이
나만이 피울 수 있는 꽃.
나는 그런 꽃 피우는 날들을 보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