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곰한 추억 한 입
[그림단상] 추억의 달고나
달곰한 추억 한 입이면
고단한 만 가지 걱정 중 한가지 정도쯤 잊을 수 있을까...
나이를 잊고 내안의 아이를 불러내는 언제나 아름다운 불량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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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를 임신했을 때 퇴근 길 광화문역 앞에는 달고나를 파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 달달한 냄새에 홀려, 또 어둑한 하늘을 이고 길가에 앉아 있는 할머니가 걸려 태아에게 좋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달고나 2개를 샀다. 하나는 내 것, 또 하나는 집에서 목이 빠지게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첫째 아이의 것.
악마의 맛에 아이가 눈을 번쩍 뜰 것을 기대했건만 아이는 한입 베어 물더니 오만상을 찌푸리며 ‘퉤’ 뱉었다.
“이그, 이게 뭐야?!”
이게 맛이 없을 수가 있나? 의아해하며 나도 한입 먹어보니 소다 맛이 강하다. 어린 시절 학교앞 문방구에서 내가 직접 만들어 먹던 ‘쪽자’도 이렇게 소다 맛이 강했던가? 받은 용돈을 문방구에 다 갖다바치고도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우리집 부엌의 국자를 불에 새까맣게 태워버려서 엄마에게 된통 혼이 났던 추억 속 ‘쪽자’는 군침 돌게 달달하기만 한데, 손에 든 달고나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 씁쓸하고 텁텁한 맛이었다.
여기서 잠시, '쪽자'가 무엇인고 하니, 작은 국자(아마도 이 국자에서 쪽자란 말이 나온 듯하다.)에 스틱 설탕을 한 포 부어 연탄불 위에 올리고 설탕이 투명하게 녹으면 젓가락 끝으로 하얀 소다를 콕 찍은 뒤, 녹은 설탕이 들어 있는 국자 안을 휘휘 저으면 부드럽고 끈적한 연갈색 물질이 창조되는 마법이다. 서울에 와서 이것이 나의 '쪽자'와는 조금도 유사성이 없는 말간 단어, ‘달고나’로 불리는 것을 듣고 꽤 큰 충격에 빠졌었다.
하지만 그때의 충격은 요즘 만나는 달고나에 비할 바가 아니다. 광화문역 앞에서도, 쇼핑몰 캔디샵에서도, 심지어 일부러 추억의 불량식품을 파는 옛날과자가게에서도 요즘의 달고나는 비닐로 개별 포장되어 마치 롤리폴리처럼 예쁘게 줄 맞춰 서 있다. 포장지 속 달고나들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안온하다. 그것들엔 문방구 앞 작은 연탄불 앞에서 서로 국자를 차지하려고, 또 그 국자를 먼저 불 위에 놓으려고 치열하게 눈치를 보던 쪽자의 거친 낭만이 없다. 그리고 맛도 없다. 달고나가 눈에 보일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 먹어 보았지만 내 입에도, 아이들의 입에도 흡족했던 적이 없었다. 그럴 때면 내 손으로 직접 달고나를, 아니 쪽자를 만들어 먹겠다 벼르지만, 여태 실행하지 못했다.
오늘 마트에 가면 꼭 소다를 사리라. 지하 창고의 캠핑 장비를 뒤져 가스버너를 꺼내리라(왜 우리집 주방 화구는 인덕션인가!). 어릴 적 학교 앞 문방구의 레시피 대로 ‘쪽자’를 만들어 보리라. 그래도 예전의 그 맛을 찾지 못한다면 떠올릴 때마다 군침이 도는 달곰한 맛은
씁쓸함을 알아버린 어른이 품은 영원한 ‘추억의 맛’인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