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널다
[그림단상] 일상을 정성스럽게 보내는 충만함
나는, 슬프게도, 싫어하는 것이 많아 사는 게 불편한 사람이지만, 그 중에서 빨래 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나의 전작 <연남동 작은 방>을 읽은 사람은 알 것이다. 조목조목 성실하게도 투덜거리며 삼겹살까지 불러내던 불평을!). 세탁 후 물에 젖은 옷가지가 손에 닿는 차갑고 축축한 촉감과 한 덩어리로 서로 뒤엉키고 둘둘 말린 옷들을 하나하나 풀어 펼치는 수고가 싫었다. 혼자 살 때는 나 아니면 누구도 해 주지 않는 일이라 생각하니 더욱 귀찮았다.
아마도 나는 빨래를 너는 행위가 하찮은 일이라 여겼던 것 같다. 근사하게 옷을 차려 입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맵시 나게 걷고는 싶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티나지 않는 허드렛일에는 애를 쓰고 싶지 않은 심보. 빛나는 것에 더욱 집중하고 싶은 허울.
하지만 세상에 거저 얻는 일은 없었다. 빨래건조대에 대충 걸치듯 넌 옷은 역시나 대충의 형태로 말라 꾸깃꾸깃 주름이 가득하여 입으면 태가 나지 않았다. 옷 소재에 따른 세탁 시 주의 사항을 신경쓰지 않아 못입게 망가진 옷도 여러 벌. 반면, 탈탈 털고 팡팡 두드려 반듯하게 넌 옷은 다림질을 하지 않아도 빳빳하고 더 깨끗해 보였으며, 풍기는 세제냄새마저 훨씬 향기롭게 느껴졌다. 바쁜 아침에 도저히 그냥은 입을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며 다림질을 하고, 몇 번 입지 않은 옷을 아깝게 버리는 일을 여러 차례 반복한 후에야 울며겨자먹기로 빨래를 털어 널면서 덩달아 입도 투덜투덜 털었다.
몇 년이 지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복직을 하고, 다시 아이를 낳고 복직을 해서 일을 하는 동안 나는 단 한 순간도 여유로운 적이 없었다. 쫓기듯 눈을 떠, 쫓기듯 옷을 입고, 쫓기듯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쫓기듯 출근을 하고, 쫓기듯 일을 하고, 쫓기든 야근을 하고, 쫓기듯 집에 오면 의무감과 미안함이 가득한 마음을 품고 또 쫓기듯 아이를 재우고, 쫓기듯 남은 일을 하거나, 억지로 잠을 청하며 내일의 걱정들에 쫓겼다. 늘 숨이 차서 허덕이는 시간 속에 나는 없었다. 그런 내가 너는 빨래는 다시 예전처럼 마구잡이로 대충 빨랫줄에 걸쳐졌다. 하지만 그것은 귀찮음의 증표가 아니었다. 그때의 나에겐 빨래 널기를 귀찮다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두 달 즈음 지나 근처에 사는 후배들을 만났다.
"과장님 회사 그만두니까 뭐가 제일 좋아요?"
당장은 다 좋아서 특별히 무엇이 가장 좋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잠시 고민을 했다.
"음... 빨래를 아주 찬찬히 정성스럽게 널 수 있어요."
어리둥절한 후배들의 얼굴에 그저 웃었다. ‘그 지독하게 피곤한 회사를 그만 둬서 좋은 게 고작 빨래 너는 일이라고?’ 하는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회사일이 아무리 바빠도 그것을 벗어나면 남은 시간은 온전히 자신의 것인 싱글의 후배들이 공감하기엔 아직 먼 미래의 영역일 것이고(물론 그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수는 있다. 가여운 후배들…), 그런 그들에게 빨래는 몇 년 전의 나처럼 미루고 미뤘다 어쩔 수 없을 때 억지로 하는 마냥 귀찮은 허드렛일 중에 하나일 수도 있었다.
그 순간에 나는 왜 하필 빨래가 생각났을까? 가을로 들어서는 그 즈음의 볕과 바람이 빨래를 말리기에 적당해서 그랬을까? 미련을 못버리고 뭉그적거리는 여름의 기운이 남아 손끝에 닿는 축축한 촉감이 아직은 차갑게 느껴지지 않아서 그랬을까?
빨래를 너는 일이 가장 좋은 일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후배들을 만나기 며칠 전 나는 처음으로, 또 진심으로 나와 내 가족의 빨래를 널며 흐뭇함을 느꼈다. 추수를 마치고 탈곡하여 알맹이는 다 떨구고 껍질만 남은 볏짚처럼 푸석하게 건조했던 그 시절의 나에겐 그런 것이 필요했다. 직장에서 또 집에서 나를 끝도 없이 쫓아오는 수만가지 일과 시간의 압박에서 벗어나 일분, 한 시간, 하루를 느슨하게 낭비하는 사치.
젖은 옷가지를 세심하게 털고 두드려 건조대 한줄 한줄 위로 모양새를 잡아 너는 나의 손짓이, 마치 세탁기에서 방금 꺼낸 옷덩이처럼 둘둘 말아 어딘가에 처박아 두었던 나의 일상과 생활을 펼쳐 정성스럽게 매만지고 있는 듯 느껴졌다. 나의 일상에 정성스러울 수 있어서, 내 생활의 작은 부분까지도 찬찬히 곱씹을 수 있어서, 예전에는 우습게 보았던 빨래를 기꺼이 애를 써서 널 수 있어서, 나는 그 하루가 그 순간이 참 행복했다. 나의 시간을 나를 위해 쓰는, 누군가에겐 당연할 일들에 진정으로 만족했다.
또 다시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하냐? 역시 낭비와 사치는 가끔 누릴 때 가치 있는 법, 글 쓰는 일을 시작한 후로 나는 또 다시 투덜거리며 던지듯 걸치듯 빨래를 넌다. 그나마 쌓아온 경험과 연륜은 그래도 되는 옷과 그렇게 널면 안 되는 옷을 구분하는 지혜를 주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쫓기듯 집안일을 쳐내고, 쫓기듯 아이들을 돌보며, 쫓기듯 글을 쓰는 내게 빨래 널기는 극복할 수 없는 축축함과 귀찮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란 하늘을 타고 내리쬐는 노란 햇살에 바삭바삭 말라가는 빨래를 볼 때면 일상의 작은 일에 정성을 쏟는 충만함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