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_ 홍상수, 2015
그때,
춘수는 행궁에서 처음 만나 일식집에서 저녁까지 함께하게 된 희정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마땅히 줄만한 것이 없다. 적당히 술에 취한 그는 반지라도 하나 주고 싶다며 느닷없이 주머니를 뒤적거리지만 나오는 건 담배와 라이터뿐. 희정은 반지 같은 게 거기 있을 리가 있냐며 웃는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춘수와 희정의 동행을 쫓아온 영화는 다시 일식집 장면에 다다른다. 그런데, 그때엔 '있을 리가 없던' 반지가 지금은 춘수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식당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 길가에 떨어져 있던 것을 발견해 주워왔기 때문이다. '그때' 발견하지 못한 것을 '지금' 발견할 수 있게 된 건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만남과 대화, 감정 변화를 거쳐왔기 때문일까?
'차이와 반복'은 홍상수 감독이 꾸준히 변주해왔던 주제지만, 이번엔 아예 데칼코마니처럼 두 개의 이야기(영화)를 과감하게 병치시켜 관객들에게 전혀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안긴다. 편의상 앞의 영화를 '그때', 뒤의 영화를 '지금'이라고 불러 보자. '그때'에서 한 남자가 지질한 구애에 목을 매는 모습을 여느 때처럼 킥킥대며 지켜보던 관객들은, '지금'에 와서는 이제까지와 같이 영화를 감상할 수가 없다. 영화가 스스로 관객들의 감상에 개입하고 이를 조정하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비추지 않아도 호스텔 창밖으로 춘수가 바라보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행궁 장면에서는 소리만으로도 누군가가 봉투에서 바나나 우유를 꺼내 빨대를 꼽고 있을 것이란 걸 예상할 수 있고, 한때 술과 담배를 즐겨했다던 희정의 전 직업이 무엇인지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옥상에서 희정이 멀리 자신의 집의 위치를 알려줄 때 무엇을 표지로 삼아 설명할지도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알아차릴 것이다. 영화는 이렇게 감상의 대상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관객들의 경험에 직접 개입한다. '지금'을 보고 있는 내가 '그때'의 무엇을 떠올리고 맞대어볼 것인지, 이 살아 움직이는 영화는 이미 알고 있다. 아니, 그것을 떠올리고 곱씹어보라며 스스로 가리키고 지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