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방향 _ 홍상수, 2011
누군가 생의 시간을 스크린에 가장 고스란히 담아낸 장면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난 고민없이 이 장면을 고를 것이다. 동 트는 새벽(영화 속 시간대가 불분명한 작품이므로 이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다) 술집에서 나온 등장인물들이 택시를 잡아 차례로 떠나가는 모습은 소름 끼칠 정도로 실제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장면을 촬영할 때 택시를 따로 섭외하지 않고 정말 택시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배우들이 실제로 택시를 잡아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한다. 내용적으로나 방법론적으로나 그야말로 '우연'으로 이루어진 장면인 셈. 처음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을 때,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비현실인지, 인물들의 기억이 꼬인 것인지 아니면 시간이 꼬인 것인지 등에 대해 이런 저런 추측들을 시도하며 보고 있다가, 영화 중반의 이 아름다운 장면에 이르러서야 쓸데없는 추측들을 모두 내려놓았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