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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Yi Jul 15. 2015

그 장면, 스크린 위 명멸하는 폭죽의 기시감

한여름의 판타지아 _ 장건재, 2014


최대한 사전 정보 없이 영화관에 가긴 했지만 흑백 화면의 1부에서 등장인물들이 영화 촬영을 위한 취재를 하고 있다보니, 자연스레 2부는 1부를 '재료'로 해서 만든 영화 속의 영화겠구나, 흑백이 컬러로 바뀌겠네, 하고 지레 짐작하며 보고 있었다. 2부는 언제 시작하려나, 채색된 고조시(市)와 시노하라 지역의 풍광을 얼른 보고 싶은데... 하며 조바심이 일던 와중에 갑자기 '펑!'. 영화가 처음으로 색을 갖는 동시에 2부의 시작을 알린 장면은 밤하늘을 수놓는 동그란 불꽃놀이였다.


그런데 뭔가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다름이 아니라 엉뚱하게 이 장면에서 모 영화 배급사의 로고 화면이 떠올라버린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우리나라 관객들이 가장 많이, 가장 자주 보아왔을 불꽃놀이를 모티브로 한 바로 그 로고...


그렇다. 이걸 떠올렸다는 거다. 괜히 미리 밝히자면 개인적으로 안 좋아하는 회사다.


한여름의 판타지아에서 불꽃놀이는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혜리 평론가는 불꽃놀이가 "실제 지속 시간보다 끝난 후의 여운이 ‘실체’에 가까운 이벤트"(씨네21 1012호)라는 점을 지적한다. 주인공들의 짧은 만남과 그 여운에 대한 은유라는 것이다. 사실 일본 나라국제영화제 측의 지원을 받은 영화이다보니 해당 지역의 불꽃놀이 축제 장면에 대한 요청이 있었다는 영화 외적인 전사(前事)도 있다. 여하튼 영화에 두 번 등장하는 불꽃놀이 장면은 각각 내러티브에 훌륭하게 녹아들어 충실하게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혹시라도,

감독님이 2부 시작에 앞서 '이제 영화 시작해요'라는, 배급사 로고와 같은 중의적인 의미로 불꽃놀이를 넣은 것은 아닌가 하는 (미친) 생각이 스멀스멀... 아아, 이 아름다운 영화를 앞에 두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이렇게까지 대형 배급사에게 길들여져(?) 있었단 말인가. 아아, 감독님 죄송합니다.



엉뚱한 소리만 떠들고 말았지만,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내가 올해 본 한국영화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글들이 너무 무게만 잡는 것 같아서 조금은 가벼운 얘기도 써본다는 게 너무 먼 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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