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테이블, 비언어의 힘

김종관 감독의 영화 '더 테이블'

by 중앙동 물방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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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가 잘 안 맞는 친구와의 캐치볼처럼 두 사람의 대화는 자꾸 다른 곳으로 튕겨 나간다. 풋풋한 시절 마음을 나눈 사이니 유진은 분명 설렘과 기대를 안고 만났을 것이다. 하지만 대화가 이어질수록 기대는 철저히 무화되고 그의 진짜 의도를 파악한 순간, 에스프레소잔은 비워진다. 외적이든 내적이든 유진이 무언가 좀 변했다고 생각하는 남자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여자. 유진의 상황은 과거와 사뭇 달라졌지만 그를 대하는 태도나 말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반면, 남자는 그녀를 옛날의 유진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니 이쯤 되면 변한 것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호해진다.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웃음을 불러일으키지만, 맞물리지 않는 대화의 원인은 그녀가 변해서인가 그가 변하지 않아서일까. 그들의 만남은 아마 오늘이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오전 11시, 어쩐지 어색한 에스프레소와 맥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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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와 숙자는 무언가 꾸미고 있다. 다소 빠르게 흐르는 대사 속에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그들의 계획은 특정한 이들을 속이는 거지만 그 속에 악의는 없다. 오고 가는 숱한 거짓말 속에서 서서히 진실과 진심이 빛나기 시작할 때 두 인물의 눈빛도 하오의 햇살처럼 부드러워진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이들에게 거짓은 진심을 잘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일지도 모른다. 숙자가 거북이 얘기를 할 때,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살을 가진 이에게 안긴 것 같았다. ‘더 테이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이 에피소드에 있다. 설탕을 넣든 넣지 않든 그곳엔 두 잔의 부드러운 카페라테가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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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감독의 영화는 ‘폴라로이드 작동법’, ‘최악의 하루’에 이어 세 번째다. ‘최악의 하루’를 참 재밌게 보았는데 웃음을 자아내는 방식이 억지스럽지 않고 서울 고샅을 매력적으로 담아내서 좋다. ‘더 테이블’은 심오한 메시지나 숨겨둔 장치 같은 건 별로 없지만, 모든 영화가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외려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다. 물결이 좀처럼 일렁이지 않는 잔잔한 호수에서 누군가 해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것 같다. 장사가 잘되지 않아도 잔고가 충분하고 내 가게라 별 걱정 없는 카페 사장님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그 사람과 나눈 이야기를 복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이 한 얘기는 잘 떠오르지 않아도 어떤 말을 할 때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만은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연극배우처럼 강렬하게 떠오른다. 때론 말 자체보다 사람의 눈빛, 목울대의 움직임, 손짓 등의 비언어가 더욱 많은 진심을 담고 있지 않나. 감독은 두사람을 멀리서 투 샷으로 잡지 않고 개개인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시선의 변화, 감정의 무게, 느낌의 색을 전달한다. 마치 그 안에 더 중요한 게 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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