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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이 Apr 11. 2024

잘 헤어지는 법

‘취해도 집 근처에서 취하자’ 내 신조다. 밤베르크의 마지막 밤은 어제 간 양조장에서 못 마신 우어복을 마시며 마무리하기로 했다. 주문하러 들어가는데 검은색 털이 함함한 강아지가 문 입구에서 낑낑거린다.

      

펍 앞에 나와 벽에 기대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한 손엔 맥주, 다른 손엔 강아지 줄을 잡은 남자가 내 옆에 선다. 알고보니 아까 들어갈 때 봤던 검은 강아지의 주인이었다. 여기서 무얼 하냐고 물어 내가 여행 중이라고 하자 Why(크게) BAMBERG?(더 크게) 하고 물었다. 우린 웃었다. 그의 이름은 알렉스, 밤베르크 출신으로 현재는 뉘른베르크에 살고 있으며 맥주를 마시고 싶어 이곳에 왔다고 한다. 뉘른베르크 맥주는 똥이라고 덧붙인다.


잔을 들고 작은 베네치아로 걸어가 강둑에 앉아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작은 베네치아는 독일 전통 가옥들이 강 맞은편에 길게 늘어져 있고 적요한 아름다움이 감도는 강둑이다. 동양의 나폴리 통영이 떠올랐는데 이탈리아의 도시에 자국의 지역을 빗대는 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닌 듯하다. 이 구역은 지난여름 홍수가 났을 때 강변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빠르게 대피했고 자주 범람하기에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다고 한다.

     

그간 독일을 여행하며 궁금한 것을 알렉스에게 물어본다. 거리에서 한 번도 고양이를 보지 못해서 이상했다. 왜 독일 거리에 고양이가 한 마리도 없니? 모두 집에 있어. 집냥이들은 주로 집 안이나 집 주변의 정원, 지붕 위를 돌아다녀. 밖은 차도 많고 미친 운전자도 많아서 잘 보이지 않을 거야. 독일인은 캣러버여. 한국에 반려묘가 있어서 독일 고양이의 모습과 삶이 궁금했지만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한다.

      

강아지 라쎄를 산책시킬 기회를 받았으나 기대와는 달리 거의 반쯤은 끌려 다녔다. 내가 언제 독일에서 강아지를 산책시켜볼까. 이 4개월밖에 안된 꼬마 강아지는 마침내 번다한 세상에서 해방된 도비처럼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밤베르크를 고샅고샅 내달렸다. 한국도 반려동물을 데리고 열차를 탈 순 있는데, 캐리지에 넣어야 해. 근데 너네는 그냥 강아지가 막 열차 안에서 돌아다니던데?      

어! 우리도 똑같이 돈을 내. 근데 어린이, 강아지, 자전거 모두 동일한 비용이야. 여기서 크게 웃었다. 아이랑 강아지랑 동급이고 강아지는 자전거랑 동급이라 다 동급이야. 과연 독일답다. 캐리지 없이 그냥 데리고 타면 된다.

     

다 마신 맥주를 반납하여 유리잔 보증금을 돌려받고 알렉스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병맥주를 사서 내게 주었다. 왜 맥주 뚜껑을 열어달라고 안 하지? 의아해할 틈도 없이 그는 한 맥주의 뚜껑으로 다른 맥주의 뚜껑을 열었다. 놀라워 하니 독일인은 세상 모든 것으로 맥주 뚜껑을 딸 수 있다고 한다. 멋지구나 알렉스. 나는 늘 키링으로 병따개를 들고 다니는데. 병뚜껑 안에는 보증금으로 받은 2유로가 꼭 알맞게 들어갔다. 그는 기념품이라며 건넸다.

    

장소를 이동해 자물쇠가 잔뜩 걸려있는 다리 위에서 강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간 독일에서 자주 듣고 사용한 독일어 표현의 쓰임과 정확한 발음을 묻고 그가 알려주면 내가 따라하고 칭찬 받는 독일어학당도 열렸다. 그가 독일어에서 가장 긴 단어를 알려줬는데, 기억해뒀다 써먹어야겠다는 마음을 1초 만에 접게 하는 말도 안 되는 단어였다. 우리나라도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 있지만 입을 다물었다. 알렉스가 발음하기 어려운 한국어를 자꾸 알려달라고 해서 ‘심사숙고’와 ‘입신양명’을 알려줬는데 그는 열심히 따라했다. 독일인에게 입신양명을 말하는 한국인이 대체 어디 있겠나 싶어 열없는 웃음이 터졌다.

      

그는 대학에서 역사학과 수학을 전공했다. 나는 독일 역사에 관심이 많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소와 나치 기록보관소, 채플린필드Zeppelinfeld(나치 전당대회가 열렸던 곳)까지 다녀왔다고 하니 놀란다. 독일인에게 이런 걸 말해도 괜찮을까 싶었으나 그는 자신도 아우슈비츠에 갔다왔다며 우리는 그때 본 잔상이 떠올라 잠시 말이 없어졌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각 다리 위엔 이민자로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그는 난민을 받아들이는 건 호오의 문제가 아니라 독일은 과오가 있기 때문에 우린 그걸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렉스는 그간 이렇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며 내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곳을 떠나서 오래도록 기억하는 건 아름다운 풍광과 맥주보다도 오늘 알렉스와 나눈 이야기일 것이다. 뮌헨에 가서도 이 순간을 가장 그리워 할 것이다.

     

강아지는 라쎄는 어느새 내 무릎에 기대어 잠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건강하게 잘 지내라며 작별 인사를 했다. 숙소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그와 연락을 주고받을 그 어떤 것도 교환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2유로가 든 맥주 뚜껑만이 오늘의 기억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할 뿐이다. 여전히 나는 헤어짐에 서툴다.


10월 8일, 밤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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