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준비할 때 뮌헨을 넣을지 고민했다. 독일의 다른 도시에 비해 몇 번 더 왔으나 왜인지 특별한 감정을 갖진 못했다. 호프브로이의 왁자한 분위기, 거대한 1리터 생맥주, 도시 전체에 테스토스테론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끼어있지 않나 하는 게 뮌헨의 인상이다. 다만 혼자 뮌헨에 오래 있어본 적은 없으니 여기에도 기회를 주자는 마음이 일었다. 뮌헨 중앙역에 내리자마자 도시의 크기를 체감한다. 밤베르크에서 기차로 고작 2시간 남짓 달려왔을 뿐인데.
지도 앱에서 어떤 리뷰를 보니 뮌헨이 독일의 대전, 노잼도시(재미가 없는 도시)라고 한다. 나는 이런 낙인 찍기가 싫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굳이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재미를 느끼는 지점은 각자 다르다. 지도를 가만 보니 베를린만큼 다채로운 느낌은 적어 보여도 나흘 동안 가고 싶은 흥미로운 곳이 보인다.
백장미단 추모 기념물을 보러 뮌헨 레지던트에 왔다. 뮌헨 대학에 다녔던 한스, 조피 숄 남매를 비롯 젊은 학생을 중심으로 결성된 백장미단은 나치 정권에 맞서 저항했다. 그들이 다녔던 뮌헨 대학 곳곳에 백장미단을 추모하는 기념물이 있고 대학 내 작은 기념관Weiße rose stiftung 에서 시간을 보냈다. 청소년 나치당에 들어가 적극 활동하던 한스가 무언가 단단히 잘못 됐다는 걸 깨닫고 그곳에서 나와 저항 운동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대개 내가 믿는 대상이나 좋아하는 사람이 완전무결하고 늘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것에서 결점이 드러나면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하는데, 대부분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두려워 등 돌리지 못한다. 도리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배척한다. 스무 살 남짓의 두 남매와 친구들은 주변에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나치가 잘못되었음을 설파하는 어른들을 보며 행동하기 시작했다. 말이 저항운동이지 조금만 반대 의견을 내면 수용소에 끌려가거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시대였다. 거대한 불의에 응전하는 용기는 당연하지 않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진다. 기념관을 나오니 학교 로비에 누군가 막 갖다 둔 것으로 보이는 하얀 장미가 놓여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서둘러 숙소로 왔다. 장기 여행자에게 2주일째가 되면 주어지는 의무, 바로 빨래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근처에 후기가 좋은 코인세탁소가 있었다. 이곳에서 그간 여행 중 가장 많은 한국인을 보았다.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으나 서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안다. 다들 어디에 있다가 나타난 걸까. 돌아가는 세탁기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나랑 같은 시각에 들어온 노랑머리 친구가 인물이 훤하여 눈길이 간다. 거 뉘시오 어디 가문이오. 여기 참 빨래가 잘생겼고 친구가 빨래를 잘하네요. 세탁기가 70년대의 속도로 천천히 돌아가도 괜찮겠다.
10월 9일, 뮌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