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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네이 Apr 18. 2024

여행을 꼭 해야 할까

여행을 꼭 해야 하나? 인터넷만 잘 되면 작은 내 방 안에서 클릭 몇 번으로 지구 반대편의 소식까지 알 수 있다. 지도앱에서 제공하는 거리뷰로 마을 구경은 물론, 국립 박물관에 가서 얻는 그 나라에 관한 지식도 검색해 보면 다 나온다. 그런데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꼭 여행해야 할까.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큰 모니터로 예술 작품을 본 들 내가 직접 미술관에서 가서 같은 그림을 마주하면 결코 같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현지에서 맛보는 다른 곳엔 없는 생맥주의 맛, 유명한 성당의 내부와 햇살에 반짝이는 스테인드 글라스, 베를린 필의 공연도 마찬가지다. 이는 2D와 3D의 차이이기도 하고 이미 남의 감각을 통해 각색된 내용과 실제 내 감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알테 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 미술관에 왔다. 루벤스의 작품이 상당히 많은데 종교나 신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엔 흥미가 없어 보고 싶은 것 위주로 보다가 새 화가를 알게 됐다.

      

17세기 플랑드르(지금의 벨기에)에서 활동한 아드리안 브라우버르Adriaen Brouwer다. 등장인물의 익살스러운 표정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간다. 선술집 풍경을 많이 그렸는데 벨기에도 아닌 뮌헨 이곳에서 그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루벤스만큼 잘 알려진 화가가 아니어서 그런지 한 구역을 이 사람 작품이 다 차지하지만, 유심히 보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싸우는 두 농민 Two Peasants Fighting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이나 사실 싸움이 시작되어 긴장이 감돈다. 아래 놓인 주전자는 술병이고 좌측에 하얀 분필로 마신 술의 양을 표기한 걸 보면 싸움의 원인은 과음 같다. 머리채 잡힌 사람의 핏기 없는 얼굴과 한쪽이 살짝 들린 오크통을 통해 폭력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남자의 비명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The sense of hearing

연주자가 한쪽 눈을 찡긋하고 아이같이 해맑은 표정으로 웃고 있어서 따라 웃었다. 발아래 놓인 술동이를 보니 술기운이 잔뜩 오른 상태에서 연주를 시작했는데 실력은 좋지 않아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체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걸까.

     

마을외과의사(감정)

주사를 놓은 후 지혈하는건지 상처 부위를 소독하는지 모르겠지만, 아픈 사람의 낮은 탄식이 들려오고 의사의 앙다문 입에서 진중함이 느껴진다. 이럴 땐 옆에 꼭 구경꾼이 있다. 같이 서서 치료 과정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좋은 그림은 우리를 그림 속 장면으로 데려다 놓는다.      


화가는 이런 서민들이 자주 오는 선술집 문을 열자마자 주인장이 알아보는 단골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의 비근한 모습을 보고 기억해뒀다가 그림을 그렸겠지. 어쩌면 그 자리에서 그렸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미 잘 알려지거나 누군가가 보라고 한 그림들만 골라 보았다면 이런 화가를 놓쳤을 터이다. 17세기 플랑드르 선술집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자연히 알게 되는 것,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 바로 여행이기에 가능하다. 


인동덩굴 그늘의 루벤스와 이사벨라 브란트 1610

요즘은 다들 똑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옷을 입고 대동소이한 자세로 결혼사진을 찍는다. 17세기 루벤스는 이렇게 그림으로 행복한 순간을 남겼다. 웨딩사진은 돈만 있으면 되지만, 이 그림은 정말 루벤스만 그릴 수 있기에 매우 특별하다. 젊었을 때이기도 하고 천하의 루벤스도 객관적일 순 없었는지 다소 미화되어 있다. 궁정화가로 인정 받으며 어려움 없이 유복하게 살아온 그의 부가 그림으로도 전해져 감탄하는데 이 그림 좌측에


이렇게 처피뱅을 판 여성 그림이 있었다. 루벤스 두 번째 부인의 초상화다. 오로지 한 사람만을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법은 없으나 혼인서약한 그림 옆에 이런 그림이 있다니 알테 피나코테크 전시 기획자의 얘기를 좀 들어보고 싶다. 아내와 사별한 뒤 혼자 지내던 루벤스는 53세 때 16세의 엘렌 푸르망과 결혼했다(심지어 둘 사이에 아이도 있다) 그녀를 만난 뒤 루벤스가 그린 대부분의 여성은 성모 마리아를 포함해 모두 엘렌의 얼굴을 하고 있다.

      

2000년생 아이돌을 흠모하면서 이래도 괜찮은가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스타를 좋아하는 여성 팬분들 괜한 걱정 말고 고개를 들어 루벤스의 그림을 보십시오.



10월 10일, 뮌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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