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우리답게 하는 건 무엇일까. 인간을 가장 쉽고 빠르게 좌절시키려면 뭘해야 하는가. 이 모든 답이 이곳에 있다. 다하우 강제 수용소에 왔다. 뮌헨에서 다하우까지 열차로 고작 20분, 비인간적인 범죄를 자행하고 인간의 정신을 말살하는 곳이 이렇게 가까웠다니 믿기 어렵다.
다하우 강제 수용소Konzentrationslager Dachau는 독일에 최초로 개설돼 다른 수용소의 원형이 되었다. 초반엔 나치체제에 반하는 사람을 수용하기 위한 정치범 수용소였으나 정치적 박해 도구를 넘어 30개국 이상 20만 명의 사람이 수감되었다. 오스트리아, 체코, 부다페스트 등 세계 각국에서 잡혀온 이들이 동물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참호를 파고 기차 노선을 만들었다.
평일 낮인데도 관람객은 꽤 많았고, 단체 관람객은 대부분 독일 학생들이었다. 독일에서도 역사를 제대로 학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뒤편에서 누군가의 격한 흐느낌이 들려왔고 사람들의 시선이 소리 나는 쪽을 향했다. 연신 울컥해 몇 번이고 눈물을 참았던 여기 끌려온 이들의 유품이 진열된 곳이었다. 빛바랜 작은 흑백가족사진, 멈춰버린 시계, 다 맞춘 신문 낱말풀이 퍼즐 등이 유리장 안에 들어있다. 소지품 주인의 생은 1930년대 또는 ‘알 수 없음’으로 기록돼 있다. 흐느낀 사람은 옷차림으로 보건대 유대인 학생 같았다.
수용소에선 지닌 것을 모두 빼앗고 머리카락을 밀고 똑같은 줄무늬 죄수복을 입히고, 이름이 아닌 번호를 새겨 부르고, 분류를 나눠 표식을 달고 말을 앗아가고 새벽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쉼 없이 고강도의 노동을 시킨다.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짓고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외부에서 반입한 책을 모아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이야기를 나눴다. 절망의 씨앗을 배태한 곳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희망을 잃지 않으려 했다.
2015년 폴란드를 여행하며 오슈비엥침(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다녀온 뒤 계속 생존자들의 책과 나치 관련 자료를 살펴봤다. 사실 안식월 장소로 독일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러 책을 보며 ‘왜’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왜 유대인이어야 했나. 사람들은 왜 히틀러를 신봉했나. 왜 아무도 말리거나 멈추지 못했는가. 인간은 왜 아무런 이유 없이 타인을 괴롭히고 죽이는가. 대체 왜. 이 수많은 ‘왜’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 다닌다. 선연히 보이는 답도 있지만,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많다.
비슷한 시간대에 들어갔던 이들이 내가 나올 때는 보이지 않았다. 화장터와 가스실까지 둘러보니 어느새 4시간 반이 훌쩍 지나 있다. 오늘 눈에 담은 모습과는 역설적으로 다하우의 날씨는 하염없이 맑고 따스했다. 80여 년 전에도 이런 날이 있었을텐데 그때 수감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뮌헨 시내에 진입할 때쯤 종일 먹은 게 없어 매우 허기졌다. 집 근처 바이에른식 펍에 들어갔더니 경쾌하고 씩씩한 직원이 주문을 받는다. 넓은 테이블에 홀로 앉아 아펠슈트루델Apfelstrudel(사과가 들어간 독일 팬케이크)과 함께 500cc 켈러비어를 주문했다. 오늘 일기장에는 ‘피곤’ 이라는 단어가 세 번 적혀있다.
10월 11일, 뮌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