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지에서 하루를 평소처럼 보내고 싶다고 하여 꼭 에어비앤비를 이용할 필욘 없다. 한국에서 루틴처럼 하거나 가는 곳이 있다면 여행 중에 해보면 충분하다. 하여 나는
뮌헨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수영장Müller'sches Volksbad에 왔다. 개장연도가 무려 1901년이다. 이전에는 여성과 남성이 각각 다른 공간을 썼는데, 여성용 수영장은 현재 사우나로, 남성용은 지금 같은 수영장이 되었다. 독일 사우나는 여남 모두 에덴동산 시절로 돌아가는 나체가 원칙이므로 차마 용기가..
친절한 독일인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수영장에 입성까진 했는데, 샤워 후 탈의실에서 수영복을 갈아입으려고 보니 모든 문구가 독일어로 적혀있다. 지난번 밤베르크 술집에서 남자 화장실의 문을 연 적이 있어서 -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 남성과 여성에 해당하는 독어를 외워두었다(Herren 신사, Damen 숙녀) 아니었으면 국제 변태로 몰려 조기 귀국의 아찔한 길을 걸을 뻔했다. 제발 픽토그램도 같이 써주세요. 모두가 독일어를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수영장 레인이 상당히 길고 시작 지점과 도착지점의 깊이가 다른 것 같아서 출발 전 숨고르기 하는 남정네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저기 깊이가 어떻게 되나요?”
“나 독일어 못해”
“나도 못해!” 그러곤 내가 영어로 말한다는 걸 깨닫고 다시 말해달라고 한다.
“글쎄 한 3미터? 얼마나 깊은지는 나도 몰라. 네가 느끼기에 깊을 수 있고”
그는 1초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바로 튕겨나가듯 수영을 시작했다. 3미터라니 무섭긴 하지만 오른쪽에 잡을 수 있는 봉(?)이 있다. 깊은 수심과 긴 레인, 역시 광활한 땅덩이의 도이칠란트답다. 먼저 평영으로 가본다. 레인의 70퍼센트를 갔을 때 체력도 체력인데 수심이 3미터가 되니 물살이 아예 다르다. 시작점은 내가 움직이는 만큼 나아갔다면 수심이 2미터가 넘는 지점엔 더 많은 힘을 들여야 나아갔는데, 체력이 떨어졌을 때 가장 깊은 곳에 있다면 어쩌나 싶어 순간 무서워졌다. 나는 다시 타고 온 레인을 수영해 시작점으로 돌아갔다. 아까 수심을 알려준 남정네가 다가왔다.
“저기 미안한데 갈 때 오른쪽으로 갔으면 올 땐 반대쪽으로 와야 해”
“어. 알지! 알고 있어. 미안”
비단 뮌헨이 아니라 우리 동네 수영장도 그렇거든. 내가 간 쪽으로 다시 온 이유는 잡을 수 있는 긴 막대가 없으면 너무 불안해서 그랬단다. 내 키보다 수심이 두 배인 곳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공포를 네가 알 리가 없잖아. 그 이후 내가 숨을 몇 번 고르는 동안에도 그는 절대 멈추지 않고 레인을 왕복했다. 혹시 아버지 존함이 어떻게.....?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여기가 어딘지 관심 없고 레인을 그저 질주하는 펠프스 주니어의 앞길을 막고 싶지 않아 그곳을 조심스레 나왔다.
나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수친자(수영에 미친 자)인데 뮌헨 수영장에선 조금 풀죽은 모양으로 ‘Nichtschwimmer' 존으로 이동했다. 수영할 수 있으니 Schwimmer 존으로 갔는데 펠프스 주니어 같은 친구가 슈비머 존이고 (상대적으로) 설렁설렁하는 나같은 사람은 ‘수영선수가 아닌 자’로 가야했던 것이다. 이 레인엔 걸어 다니는 사람, 어르신, 평영만 주구장창 하는 사람만 있어 동물의 숲 같은 평온한 분위기다. 역시 단계별 수업의 중요성을 깨닫는 바, 이 레인도 익숙해져 한 번에 왕복도 가능해졌다. 그제야 창을 통해 은은하게 들어오는 햇살과 1901년부터 유지해온 아름다운 아르누보 양식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한가로이 수영할 수 있다니 뮌헨 시민이 부럽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에선 너무 많은 게 빠르게 사라진다.
오랜만에 수영을 했더니 팔다리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90분 이용권을 다 쓰지 못하고 50분 만에 나왔다. 그때에도 여전히 펠프스 아들래미는 계속 수영 중이다.
“제가 뮌헨의 물개가 된 이유요? 남들보다 먼저 와서 누구보다 늦게 나갔죠! 그게 다예요”
수영장 밖을 나와 쉬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남정네가 나왔다. 수영모에 수경을 쓴 사람과 샤워한 뒤 머리를 말리고 나온 사람은 비슷한 듯 다르게 보인다. “엇” 하며 우린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반쯤 말린 그의 호두색 머리카락에 햇살이 내려 앉아 윤슬처럼 반짝였다.
10월 12일, 뮌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