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오 델 토로, 팀 로빈스 주연의 '어 퍼펙트 데이'를 보다
총을 쏘거나 폭탄이 터지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도 영화 '어 퍼펙트 데이'를 보면 자주 긴장하고 있다. 많은 이가 죽거나 산천이 폐허가 된 모습을 자주 보여주지 않아도 이제는 모두 안다. 명분 있는 전쟁은 없으며 전쟁은 모든 것을 그저 재로 만들 따름이라고. 그런 점에서 어 퍼펙트 데이는 내전이 지나간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진부하지 않다. 특히 NGO 구호 단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설정만으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마실 물조차 구하기 힘들고 이웃 주민이 적인지 아군인지도 알 수 없다. 불신과 불통의 기운만 안개처럼 짙게 깔려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을 타개하고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유머'다. 잔뜩 긴장하고 분노가 치미는 순간 누군가의 실없는 소리로 터지는 실소가 긴장을 해제하고 여유를 불어넣는다. 웃음이란 결코 조작될 수 없으므로 진솔하고 웃는다고 돈을 내는 것도 총알이 소진되는 것도 아니니까.
어 퍼펙트 데이는 유머를 말하지만 그런데도 결코 전쟁과 사람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가는 발칸 반도의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보이는 것도 그 증거다. NGO 구호 단체 봉사자들이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게 하는 동력은 바로 이 사람들일 것이다. 베네치오 델 토로의 남루함으로도 숨겨지지 않는 매력과 팀 로빈스의 100% 드립이 아닐까 의심되는 말재간에 빠져있으면 어느새 완벽한(?) 하루가 지나고 있다.
영화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여배우들의 캐릭터 설정이다. 남배우들과의 차이를 더하기 위해 '풋내기'와 '가탈스러운 감시자'를 설정했지만 이 설정이 매력을 반감시킨다. 작가(혹은 감독)에게 능력은 좀 모자라도 마음은 따뜻하다거나, 전문성은 있지만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비협조적이라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걸까. 남배우들과 달리 설정하면서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극에 더 흥미를 더할 수 있는 캐릭터로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