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를 보고

가정이 평화로운 공간이라는 언어는 누구의 경험인가

by 중앙동 물방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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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인간이 남자도 요새 가정에서 맞는다고 말했다. 그 말에 순진한 아이들은 ‘어? 정말이에요?”하며 놀랬고 그게 바로 증명이었지. 대개 가정에서 폭력의 행사자는 남성이고 피해자가 되는 일은 극히 드물기에 (남자인) 그 인간에게 특별한 이야기 소재가 된 것이다. 흑인 차별은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2018년인 지금도 여전하다는 기사를 보며 ‘요즘 백인도 힘들다’고 말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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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았다’의 첫 장면은 숨 가쁘다. 양육권을 놓고 첨예한 공방이 오가는데 그 장면만으론 어떤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판사는 며칠 뒤 결론을 갖고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관객에게 영화 전반을 살피며 판사가 되어보라는 의미로 읽힌다.


울면서 나는 이제 달라졌다고 말하는 ‘그 사람’의 행동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이렇게 바뀐 나를, 아버지 된 도리를 하려는 나를 왜 멀리하느냐고 화내는 모습에 마음이 동요하는가. 하지만 그 말에 타인은 없다. 내 감정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나를 거절하는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방식이 어쩐지 새롭지 않다. 여성이 남성에게 이별을 고할 때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게 현실이다. 일터와 주거지를 찾아오는 것부터 겁박이며 자신의 말이 관철되지 않을 때 들려오는 고성,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으리란 생각은 결코 피해망상이 아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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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아이를 쫓는 장면은 - 분명 아버지와 아들 관계임에도 - 유약한 동물과 사냥꾼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 사람의 취미를 사냥으로 설정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들을 안도시키기 위해 주문처럼 외우는 ‘끝났다’는 말은 실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어떤 것도 끝나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또 다른 위험과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아무 죄 없는 아이가 자신의 거취에 관해 결정할 권리가 없고 가까웠던 사람에게서 피할 수 없는 공포를 마주해야 한다. 법은 한없이 허약하고 빈틈이 많아 앞집 이웃의 신고만큼도 도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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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동경해 마지않는 서유럽의 국가에서도 우리 일상에 깊이 뿌리 내린 ‘가정폭력’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음을 어쩌면 ‘가정폭력’이라고 말함으로써 이슈의 위험과 중요성은 축소되고 ‘사적인’ 프레임으로 치부되어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진 않은지,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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