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적요

라오스 비엔티안 호텔 ‘Hotel Khamvongsa’

by 중앙동 물방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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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 관해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겠다. 아쉬운 점부터 말하면 건물은 5층까진데 엘리베이터가 없다. 체크인할 때 직원이 4층에 있는 내 방까지 성큼성큼 가방을 옮겨주어 큰 불편을 느끼진 못했지만, 체크아웃 하는날은 직접 들고 내려올 수밖에 없다. 오기 전, 전망을 위해 고층 방을 요청한 메일이 생각나 후회를 살포시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방은 마룻바닥인데 카펫이 깔려있지 않아 위층에서 청소하거나 거대한 몸이 분주하게 움직일 때 소음이 전해온다. 라오스까지 와서 층간소음이라니. 뭐 이것도 3일이면 끝난다고 생각하니 그럭저럭 괜찮다. 객실엔 편의용품이 거의 없다. 샴푸와 바디클렌져가 전부(이 두 제품은 라오스의 좋은 브랜드인 것 같습니다.) 헤어드라이어와 커피포트가 없다. 한국에서 컵라면을 사 왔는데 전기 포트가 없어서 도로 가져가야 할 상황이 오자 리셉션에 뜨거운 물을 요청했더니 3분 만에 왔다. 세면대엔 따뜻한 물이 안 나오지만, 샤워기에는 잘 나온다. 그러나 분리형이 아니라서 머리를 감으려면 샤워도 같이해야 한다. 다 극복할 수 있는 단점이긴 한데 가장 아쉬웠던 건 베개, 나한텐 다소 높아서 그냥 사용하지 않고 잤다.


하지만 아쉬운 점을 눈감아 줄 수 있는 매력이 참 많다. 가장 좋은 건 위치다. 공항에서도 차로 10분밖에 걸리지 않고, 시내 곳곳을 모두 걸어서 다닐 수 있다. 주요 관광지(Patuxai, Wat Si Muang)는 뚝뚝이나 자전거로 다녀야 하는데 대부분 음식점과 카페가 구시가에 있어 굳이 그 근처에 머물지 않아도 된다. 공항에서 호텔로 올 때는 미리 픽업 서비스를 신청했다($8/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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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는 다섯 종류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직접 가져다준다. 매일 다른 타입의 아침 식사를 했는데 아시안 스타일과 유럽형이 좋았다. 블랙 필터 커피와 바나나 요거트 스무디를 둘다 주문하길 추천한다. 체크인을 도와줬던 직원은 영어를 잘하고 친절했다. 호텔 이름인 캄봉사(Khamvongsa)는 이곳을 처음 만든 분(아마도 사장의 어머니)의 이름이다. 한 가족이 십여 년 간 운영하면서 라오스 사람들만 고용한다는 방침이 있다. 여행자들로부터 오는 외국자본이 현지인의 삶을 위해 쓰인다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가 겪고 있는 사회 문제 중 하나가 성매매와 아동 노동이다. 캄봉사 호텔은 어떤 형태로든 성 노동자를 허용하지 않고 사회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정당한 행동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숙박비도 합리적인 편이다. 예약비는 없고 체크아웃할 때 내면 된다(더블룸, $45/1박, 아침식사 포함) 방이 널찍하고 에어컨과 팬(fan)이 있어 시원하다. 냉장고와 텔레비전이 있고 물은 무료로 매일 두 병씩 제공된다. 론리플래닛에 나와서인지 서양 여행자들이 많았고 숙소를 구하지 못한 배낭 여행자들이 한 박에 얼마냐고 묻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크고 화려한 체인 호텔에서 안락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곳에서 나는 방 하나만을 부여받은 이방인일 뿐이다. 프랑스와 인도차이나 스타일이 섞여 묘한 느낌을 주는, 밝은 크림색 건물은 들어설 때마다 내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무 계단을 오르내릴 땐 이층집에 자리했던 외할머니댁도 생각나고 아침이 되면 빨리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라는 햇살이 그득하게 들어와 눈이 절로 떠진다. 다시 비엔티안에 온다면 또 방문하고 싶다. 그땐 베개를 하나 챙겨가야겠지. 담요를 든 라이너스처럼.


라오스에 오는 대부분의 한국인 여행자가 이 도시에 부여하는 시간은 기껏해야 하루나 이틀 정도다. 그들에겐 비엔티안이 루앙프라방이나 방비엥을 가기 위한 정류장일 따름이다. 짧은 여행 기간 때문에 다른 도시를 갈 여력이 없고 한 도시만이라도 여유롭게 보자는 생각으로 비엔티안 곳곳을 3박 4일간 돌아다녔다. 주로 도보로 돌아다니다 먼 곳에 갈 때는 뚝뚝이나 자전거를 이용했는데 이곳엔 베트남이나 태국에 분명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자동차나 오토바이의 경적소리다. 뚝뚝, 오토바이, 자동차가 복잡하게 어우러져 다니고 그 사이사이에 보행자도 있는데 흔한 경적 한번 들리지 않는다. 마지막날은 자전거를 빌려 몇 킬로미터를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지금 지나가면 되겠다 싶어 도로를 건너다 코 앞에서 자동차와 부딪힐 뻔 했는데도 운전자는 끝내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경적이 울리지 않는 도시를 상상해본 적이 없다. – 정말 인구가 적었던 캐나다의 처칠 같은 동네를 제외하면 – 도시의 적요는 그곳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은은하게 흘러가는 생각을 방해하지도 않았고 사람들의 말소리와 인사, 웃음소리가 자연의 소리와 어우러져 귓가에 들어왔다. 나는 더 많이 사바이디(라오스어로안녕하세요)와 콥짜이(감사합니다)를 말했고 그들은 꼭 화답했다. 고요한 도시는 제도와 규율에 의거한 산물이 아니다. 이는 서로를 대하는 그들의 마음 됨됨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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