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참기대회 출전 중입니다

by 중앙동 물방개

대체로 하루에 한 번 맥주를 생각한다. 독실한 신자가 하루를 마무리하며 기도하거나 신을 떠올리는 것과 비슷하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생각하는 만큼 마시진 않는다. 언젠가는 혹시 알코올 중독이 아닌가 의문이 들어 포털사이트에서 알코올 중독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아직 그런 축에는 끼지 못했다. “술로 인해 사는 데에 지장이 있는가”라는 항목이 좋은 리트머스지였다. 만약 좋아하는지 미쳐있는지 헷갈리는 게 있다면 일상생활이 그로 인해 지장 있는지 자문해보라. 아주 명료해진다.


1일 1맥을 생각하는 내게 가장 슬픈 순간은 맥주를 마실 수 없을 때다. 지금껏 그런 적이 두 번 있다. 한번은 2년 전 건강 문제로 전신 마취를 하는 큰 수술을 하게 됐는데, 수술 전부터 수술 후 몇 달까지 맥주를 마시지 말라는 통보가 내려왔다. 생각해보니 석 달 가까이 마시지 못했다. 여성은 임신하면 이런 고비가 온다고 하는데 사실 내겐 그 석 달이 1년 같았다. 일주일간 병원에 있다가 드디어 퇴원하는 날,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생각보다 오래 한 - 장작 5시간 가까이 걸린 - 대수술이었고 수술을 잘해주신 선생님 얼굴을 보니 은인을 만난 듯 반가웠다. 앞으로의 관리와 다음 내원일을 안내받고선 진료실을 떠나기 바로 직전 조심스레 물어봤다.


“선생님 혹시 맥주는... 언제쯤 마실 수 있을까요?”

의사 선생님, 웃을 줄 아는 분이셨구나.


괴로운 순간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얼마 전 귓불에 무언가 잡히더니 가만히 놔두면 없어질 줄 알았는데 통증이 가중되었다. 결국 이비인후과에 가서 2분간 아픈 표정을 짓고는 눈썹이 8자 모양인 고등학교 한문 선생님을 닮은 의사에게 항생제를 받아냈다. 돈을 내고 약까지 탔는데 어쩐지 술을 마시면 구멍 난 코트 주머니에 동전을 넣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앞서 석 달간 맥주 참기 운동을 한 이력이 있어서 그런지 일주일은 어렵지 않았다, 고 말하고 싶지만 고통은 반복된다고 익숙해지지 않음을 명심하자. 시간은 아흔 살 할머니의 걸음처럼 더디게 흘렀고 4일 치 처방 약을 매 끼니 다 먹을 때쯤 멍울은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토록 약을 열심히 먹은 적도 없다.

좋아하는 맥주를 마시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지만 삶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이럴 땐 마음속으로 나는 지금 ‘맥주 참기 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하루만 더 참으면 그래 하루만 더 참으면 금메달을 딸 수 있어, 하고. 멍 때리기 대회도 있고 많이 먹기 대회도 있는데 이런 대회가 없을런가. 영원히 못 마시는 것도 아니니 다행이고 지금 참으면 아주 건강한 상태에서 그동안 못 마신 맥주를 목구멍에 콸콸 넘기는 순간을 상상하면 짜릿해지기도 하니 세계 맥주 참기 대회에 참전하신 분들을 위해 치어스!


슬픈 소식 하나. 지금은 눈 다래끼가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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