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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구호실로가다 Sep 28. 2021

결혼 축하한다는 말 대신

7월 23일 동료의 결혼식에 함께 다녀온 날

언제부터인가 '결혼을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타인의 경사조차 축하할 줄 모르는 고약한 심보의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 그렇게 생각한다면 할 수 없지만 – 그 말의 의미를 오래 생각해 본 끝에 아무래도 진심을 담기가 어려워 형식적인 표현이라 판단해서다. 회사 게시판에서 직원의 결혼 소식을 볼 때, 지인에게 청첩장을 받았는데 딱히 적확한 말을 바로 찾기 어려운 애매한 사이일 때 하는 관용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의 방점은 서술어인 ‘축하하다’가 아니라 그 앞에 있다. ‘결혼’을 축하하는 게 과연 맞는가. 결혼은 정말 축하할 일인가 이런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 보았다. 내 결혼생활에 불만 있거나 결혼 제도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개중엔 축하할 만한 결혼도 분명 있다. 개인 사정으로 결혼식을 하지 못하고 살았거나 주위의 반대라는 난초에 부딪혀 있다가 지난한 설득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결혼할 수 있게 된 사람이라든가 우여곡절 끝에 하게 된 결혼은 그런 말이 어울린다. 


연애할 때는 싸우지도 않고 무던히 잘 지냈는데 결혼하여 같이 사는 건 다른 문제라며 생각하지도 못한 아주 사소한 일로 의견일치를 쉬이 보지 못한다는 얘길 듣는다. 무슨 말인지 안다. ‘결혼’이란 단어를 몸소 경험하는 중인 현재, 결혼이 단순히 좋아하는 사람과 데이트 후 누가 누구의 집에 데려다줄 필요 없이 같은 집으로 향하는 낭만적인(?) 상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서로의 다른 기대에서 기인한 가없는 차이를 인지하는 것, 자기 가족에 대한 서사 공유, 이 모든 것에서 비롯한 갈등이 내포된 또 다른 평행우주다. 그러니 이 무한한 가능성이 눈앞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다이내믹 평행우주에 오신 것을 모른 척하며 그저 축하한다고 말하는 게 조금 의괴했다.


나는 축의금 봉투에 이름과 함께 아래와 같은 멘트를 쓴다.

“오래도록 함께 이야기 나눌 사람을 만난 것을 축하해요” 

부디 한쪽만 오래도록 떠드는 일이 없길, 그러다 벽을 보고 얘기하는 순간이 없길. 침묵은 침묵대로 평온하고 번잡한 하루 일과를 서로 말하려는 둘의 일상이라도 그 이야기가 오래도록 지속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적는다. 여름날 아스팔트 위 달콤한 초콜렛덩이 같은 진득하고 달콤한 말뿐 아니라 아주 무거운 이야기라도 마주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면서.  


"살다가 헤어진 걸 왜 결혼에 실패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결혼도 이혼도 그냥 성공했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내 인생을 타인에게 검사받아야 할 숙제로 여기기에 결혼도 그런 숙제 중 하나로 생각한다. 설상가상 이 숙제는 '도리'라는 그럴싸한 당의로 포장되어 있기까지 하다. (중략)


누군가에게 내 결혼과 행복을 증명하듯 살지 말라. 우선 신혼여행 다녀온 후 주변 사람에게 '행복하게 잘 살겠다' 따위의 인사나 답례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하면 당장 나부터 지인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가에 대해 별로 관심 없다. 행복은 개인의 영역인데 왜 주변에 다짐하고 선언하는가.” 

-2020년 7월 23일 반려인의 일기


나는 주례 없는 결혼식을 근 몇 년간 다녔지만 정말 주례만 없었을 뿐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발언은 사회자나 축사에서도 빠지지 않고 쿨의 아로하 마냥 줄기차게 등장했다. 중요한 건 주례를 빼는 게 아니라 아내는 이렇고 남편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된 성 역할과 각자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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