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비닐

어쩔 수 없는.

by 우주율


제작년 11월, 아직 공사가 다 끝나지 않은 전원주택에 우리는 이사를 했다.

방에는 다 정리하지 못한 박스가 쌓여있고 두 살배기 아이에게 밥을 떠 먹이고 흘리는 장난감을 주어 담으며 지내느라 마당 일은 사실 우리에게 사치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억한다. 우리의 첫 주택에 딸려있던 텃밭과 정원에서 사계절을 두어 번 보내며 경험해 봤던 땅 내음, 흙냄새를. 비 온 후와, 봄이 오기 전과, 꽃이 피려고 할 때에 그 모습보다 먼저 존재감을 만들어 내던 향기의 진동이 우리에게 주었던 경험이 아직 피부에 박혀 있었다.

하루 한 시간쯤을 아침이든 저녁에든 짬 내어서 텃밭을 가꾼다. 올해는 뭐를 심어 키워서 먹어볼까 하면서 손바닥만 한 텃밭을 계간 하여 농사 계획을 한다. 낯선 이름의 꽃나무를 찾아 심고 언제나 피어 올라오려나 매일 들여다보면, 시간이 흘러서 오래된 나무가 되어줄 나중의 풍경이 떠올라 설렌다. 시간이 쌓이는 것은 귀한 일이다.


친환경농법이라고 해서, 자세한 방식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농약을 하지 않았고 친환경비료를 사용하는 식으로 따라 해보곤 하는데 문제는 잡초, 잡초, 이름을 모르는 그 녹색 푸성귀들이다. 내가 심은 바가 없는데도 땅을 뚫고 들어와 발화하는 화초들은 해가 길어지는 여름이 돼 갈수록 그 기세에 뒤로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것은 검은 비닐이다. 잡초방지비닐.

땅의 기운과 흙의 호흡을 막는 플라스틱인 데다 보기에도 좋지 않으니 친환경농법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그 존재이지만 우리의 텃밭 곳곳에 타다 남은 쓰레기처럼 펄럭거리며 듬성듬성 박혀있다.


나는 그 비닐을 '이렇게라도'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다.

매일 아침저녁 잡초를 뽑을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라도' 텃밭을 일군다. 농약을 뿌리고 싶지 않으니 '이렇게라도'농사지어본다. 땅을 깊이 갈아엎을 힘과 시간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흙을 사용해 보자. 이렇게라도, 봄과 가을을 보내보자.


이사한 지 일 년이 넘어갔지만 아직도 집에는 이사 박스가 채 정리되지 않고 마당에는 공사폐기물이 쌓여있다. 내 집 짓는 게 이렇게나 혹독하다는 걸 모르고 덤빈 일이었으니 준비도 마무리도 못하고 이미 지쳐버려서

천천히 공사를 마무리하기로 포기와 단념을 섞어서 급한 마음을 달래며 지낸다.

어제 이사 온 집처럼 산만한 집안 풍경에 민망할 때마다 밖에 나가 흙을 만지고 땅에 물을 준다. 이렇게라도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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