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의 나팔꽃

by 우주율




아마 나무는 나이가 들었거나 병이 들었다.

거친 주름의 수피와 짙은 목대가 말해준다. 여러 번의 계절을 봐왔다고. 성글게 동강 내듯 잘라낸 가지는 아픈 나무의 생활을 도와주려 한 누군가의 호의였겠지. 나무는 애써서 사방으로 잔 가지를 만들고 있고 뿌리마저 흙 밖으로 튀어나온 듯이 사방으로 넓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나무 주변에는 다른 식물들이 잔뜩 함께 있다.

푸른 나팔꽃 덩굴이 온 나무를 둘러 올라가 재잘거린다. 무뚝뚝하고 아픈 아저씨 옆에서 눈치 없이 노래한다. 오늘 햇볕이 참 좋다고.


지난 늦여름에 마주한 이 장면은 나의 강변 산책길 중 그늘이 많던 곳이라, 여름에 한창 피는 푸른 나팔꽃이 늦가을에나 피어올라있었다. 이제 가을이 올 거라고 알려주는 작은 수다쟁이들처럼 매년 그랬다.

장마 뒤에 기세 좋은 덩굴식물들까지 모두 이 나무를 귀찮게 하는 듯했다. 이미 수피를 꽤나 잠식한 담쟁이와 멀리 있는 큰 은사시나무도, 양옆의 노란 좁쌀풀도 모두 이 나무와 함께, 모두 함께 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내가 참 구경꾼다운 감상이라 미안했지만 나도 눈치 볼 것 없이 해사하던 나팔꽃처럼, 이 장면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다. 나도 나무와 함께, 지금을 축복하며 그린다.




며칠후 완성한 그림 :-)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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