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의연하게 온다. 사건이랄 수도 우연이랄 것도 없이
터져버리는 나무의 봄눈은 밝은 낮에도 조명을 킨 듯이 번쩍인다.
꽃이어도 꽃이 아니어도 무채색 겨울의 침묵을 가르는 에너지가 발화한다.
저 연초록을 어떻게 하면 그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처음 본 것처럼 아무도 그려내지 못한 것처럼,
나도 몰랐던 그리기의 방법으로 새롭게 그릴 수 있을까 열망한다.
사실 나의 그리기는 거의 매번 실패의 경험이다. 이게 아닌데... 내가 본 게 뭐였더라. 이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면서 끝난다. 매년 요맘때의 봄을 그리던 실패의 결과들을 들춰보다가, 그래도 4월을 그린 것 중에 이 그림은 좀 나았다 싶어서 오래 보고 있다.
수채를 선택하게 되는 것은 청아한 색감과 산뜻하지만 진중한 무게감 때문인데 수채가 실패하는 이유도 청아했던 색감이 변해서, 산뜻했던 질감이 컨트롤되지 않아서 이다. 종이에 수채물감이 흡수되면서 물감 농도에 따라 건조 후 그림의 색감이 변질되기도 하고 보관 중 변색도 많다.
수채물감은 여러 번 덧칠하다 보면 아니, 2번 이상만 덧칠해도 색이 텁텁해진다. 불투명해지면서 채도가 낮아지고 색의 활기가 없어진다. 처음 하는 붓질의 설렘은 미약해서 더 아름답지만 미약해서 쉽게 사라져 버리다 보니 그 느낌과 붓질을 보전하는 것이 큰 숙제이다.
스크린 캡처를 하듯이 순간의 이미지와 정서를 포착해서 냉동시켜 두고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그것 하나만을 단서로 그림을 그려나간다.
그나마 수채용 캔버스를 사용하면서 색의 보전력이 나아졌다. 처음 내가 보았던 그 색을 그림으로 보관해 둘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안심이다.
여러 번의 실패 중에 일부의 작은 성공만으로도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다.
올해의 봄을 새롭게 다시 그려보고 싶다. 지난 그림의 응원을 받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