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언제 완성될까

by 우주율




그림은 언제 완성될까


사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렸었기 때문에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지 의식하기 어려운 관성 같은 것이 몸에 배어있다. 그래서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를 묻는다면 “일단 그려보세요 “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많지만 오래 고민하다 질문하시는 그 마음을 알게 된 후론 나도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A: 내가 표현하고자 한 것이 드러났을 때 그만 그리셔도 됩니다.

Q: 드러났다는 게 뭔가요?

A: 그림에서 가장 선명하거나 가장 크거나 가장 무게감이 있으면 ‘드러나요 ‘

문제는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야 완성된다는 거예요.

Q: 표현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어요.

A: 그게 뭔지 몰라도 그림을 시작할 수 있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직관이 이성보다 빠르거든요.

뭔가 좋아 보였던 ’첫 느낌‘을 기억하세요. 그게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일 거예요. 그리면서 더 찾아가면 됩니다.


이런 대화를 자주 하던 때는 한창 취미미술 수업을 하던 때였다. 전공자와 이야기하는 것보다 그림을 취미로 그리는 어른들과 이야기할 때의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내가 잊고 있던 그리기의 설렘을 다시 느끼기도 한다. 익숙한 습관을 해부하다 보면 실패한 그리기의 원인들이 나오는데 그것도 꽤 속 시원해진다.




이 그림은 지난가을에 야외에서 그려보았다. 뭘 그리고 싶은 지를 어슬렁 두리번거리다가 저 풍경을 보았다. 강과 물 그리기를 연습하고 싶은 마음에 찾은 강가였지만 가을의 노란 햇볕이 어찌나 부요하게 마른풀을 비추는지, 덩굴 식물들이 들판을 잠식한 후 말라버린 잔흔이 마치 레이스 휘장처럼 화려해 보이기까지 했다.

너무 상투적이거나 관성적인 구도를 피하고 싶었지만 아무튼 내 안의 평론가를 잠재우고 먼저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두 시간여 정도를 집중하다 보면 화면 위에 붓질과 물감을 모두 채워진다. 그날 자리를 정리하고 작업실에 돌아와 흰 벽에 그림을 걸어두고 어디가 아쉬운지 어디를 더 건드려야 할지를 지켜본다.

몇 달이 지났고, 가을은 이제 봄이 되어있다.

그림을 더 건드리기 어려운 상태라는 것을 여러 번 확인하면 그제야 그림이 완성된다.


그리기는 2시간, 지켜보기는 6개월이 걸렸다.

완성된 그림은 완벽한 그림과 다르다. 흠이 없어서 완성이 된 것은 아니다.

아쉬움은 분명히 있고 이렇게 저렇게 더 그리면 나아질까 고민도 켜켜이 있지만, 건드리면 안 되는 평온함이 느껴져서 더 건드리지 않는다. 능숙한 붓질보다 그때 집중해서 나온 붓질이 더 소중하다. 그날의 풍경이 나를 그리게 했기 때문에 그 장소와 그 시간에 집중해서 나온 작은 붓질을 헝크러트리고 싶지 않다.

같은 사람이 같은 장소를 그린다고 해서 같은 그림을 복사하듯 그릴 수 없듯이

순간에 집중하면 매번 다른 그림, 다른 붓질이 드러나서 나다운, 대상과 소통해서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그림이 된다.

결국 표현하고 싶은 것은 ‘나’다운 붓질,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왜냐면 충분히 어렵기 때문이다.




정주희 Drawing autumn, 2026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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