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잠긴 버드나무

이대로도 잘 살고 있어요.

by 우주율
진행 중, 2026 봄


유화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얕은 물가에 누은 채로 지내고 있는 이 버드나무를 그리기 위해서는 유려하고 섬세하게 빛나는 유화의 질감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비극적으로 표현될까 봐,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인 정서가 배어있는 것보다는 평온한 오후 햇살 같은 빛깔로 표현되길 바란다. (첨부해 둔 진행 사진은 이제 1/3쯤 되었겠다 싶다.) 유화는 말려가면서 여러 번 덧바르고 있다 보니 시간을 들여야만 무르익는다.


저 나무는 누워 지낸 지 몇 해가 되었다. 2021년 즈음 여름의 태풍이 지나고 강변에서 처음 봤을 때는 걱정이었다. 태풍에 쓰러졌을까, 저렇게 죽은 건가 했던 나의 우려는 단순한 무지였구나 싶게 나무는 그대로 몇 번의 계절을 의연히 지내오고 있다.

양평에 이사 오게 된 지 8년 차가 되면서 가벼운 산책길 중에도 쓰러진 나무를 매번 발견하게 되는데 사실 그건 삼십 년 넘게 도시에 살면서 보지 못했던 장면들이다. 숲의 입장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변화이다. 그리고 필연적이다. 강을 향해 쓰러진 나무 덕분에 어린 물고기가 여린 꽃잎과 유충을 먹고 자라난다. 나무의 그늘과 잔 가지 사이로 숨어 뜨거운 태양과 큰 새들의 부리질을 피해 산다. 겨울에 이곳을 찾는 물닭과 오리, 고니를 포함한 철새들은 건조하고 찬 바람을 나무 뒤에 숨어 피하고 여름의 철새들은 화살 같은 양평의 햇살을 여기서 피하며 쉬어 간다. (그러다 어린 물고기도 잡아먹겠지)


호기심에 찾게 되는 숲의 생태 관련 책이나 철새와 텃새의 이름들은 새삼 내가 지구생태학자쯤 된 듯한 자부심을 주곤 하지만 그저 저 나무가 쓰러진 채로 잘 지내고 있는 건지를 알고 싶었다.

안부를 묻고 싶지만 대답을 들을 귀가 없어 여기저기 책을 들쑤시다가, 몇 해가 지나고서야 안심하였다.

봄의 연초록 새순과 여름의 무성한 수풀을 보고 가을과 겨울 지나 계속되는 다음의 시간까지 저대로도 잘 지내는 것을 보고서야 안심했다. 심지어 더 무성해지는 수형의 변화를 보고서야 나의 무지했음을 알았다.


이 나무를 그리는 것이 처음은 아닌데, 2024년이 그렸던 습작에 비해 올봄의 나무는 더 풍성해진 가지와 빛나는 금빛의 새순을 기념할 수 있겠다 싶다. 나무의 일상을 감상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정주희, 쓰러진 나무에 대한 습작 Study for Falen tree, Acrylic and Oil on canvas, 45 x 53cm, 2024,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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