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치는 그리움에 대하여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by 폴찬
《작별하지 않는다》(한강 지음, 문학동네 출판, 2021)


책 줄거리가 요약된 글입니다.

줄거리 읽기를 원치 않으신 분들은 주의 바랍니다.




영화나 드라마, 책을 보고 나서 또는 여행을 다녀와서 누구나 한 번쯤 크거나 작은 여운을 느끼곤 한다.



특히 사람과 인연을 맺고 헤어지게 되면 그 여운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비극적인 역사적 폭행을 주제로 글을 쓰다 정신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피폐해져 버린 주인공 경하 이야기로 시작한다.



경하는 매일 악몽에 시달리며 에어컨이 고장 난 집에서 한 여름 더위를 몸으로 고스란히 견디고, 유서를 썼다, 지웠다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대학생 시절부터 같이 취재를 다니던 인선의 연락을 받게 되었고, 제주도에서 목공 작업을 하던 그녀의 손가락 절단 사고 소식을 알게 된다.



인선은 제주도에서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시며 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가 되었다. 인선은 손가락 절단 사고로 서울에 있는 병원에 오게 되었고, 경하에게 연락한 이유는 제주도 집에 혼자 남겨진 새에게 먹이를 주고 대신 돌봐주기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주인공 경하는 눈이 한참 쏟아지는 날씨위경련편두통을 앓으면서도 인선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제주도로 가게 된다.



딱 한 번 방문해 본 인선의 집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데다 폭설까지 겹쳐 그 길이 순탄하지 않았다. 또 인선의 집은 시내와 한참 떨어져 있었고, 폭설에 교통편도 마땅치 않아 산길을 걸어가던 중 경하는 발을 헛디뎌 눈 속에 파묻히게 된다.



그렇게 눈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우여곡절 끝에 인선의 집에 도착했으나, 이미 새는 죽어 있었다. 편두통도 위경련도 다시 심해지고 설상가상으로 폭설로인해 전기와 수도도 끊기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혼절에 가깝게 잠이 든 경하는 이후 혼으로 찾아온 인선과 조우하게 되고, 인선으로부터 제주 4. 3. 사건 피해자인 인선의 어머니에 대한 자료와 얘기를 접하게 된다.



어렸을 적 군경의 학살로 인해 언니를 제외한 가족들을 모두 잃은 인선의 어머니, 혹시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한평생 친오빠를 찾아다닌 인선의 어머니, 친오빠의 유해라도 찾으려다 만나게 된 제주 4. 3. 사건 피해자와 결혼하게 된 어머니, 치매에 걸려서도 그 충격을 도려내지 못한 어머니.



경하와 인선은 사고가 있기 몇 년 전 같이 경하의 꿈을 영상물로 만들기로 약속했었다. 경하는 그저 계획만, 꿈으로만 준비를 했고, 미뤄지는 일정에 인선에게 포기를 제안했었다. 하지만 인선은 그 영상물 제작을 위해 제주도에서 홀로 준비를 계속해나갔다. 그리고 그 영상 제작을 위한 나무를 만들다 절단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이 소설의 끝은 인선이 경하 꿈 영상을 제작하려고 꼽아 놓은 장소에 경하와 함께 도착하며 끝이 난다.



작가님은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라고 하였다.



전체적인 소설 분위기는 침울하고 어둡다.



그러나 필자는 그 내면에 지극한 사랑느낄 수 있었다. 문자메시지 한 통에 다른 일을 모두 제쳐두고 인선을 만나러 간 주인공 경하, 그리고 기르던 새를 돌봐달라던 부탁에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폭설에 아픈 몸을 이끌고 간 경하, 친구가 전화로 꿈속에서 본 장면을 영상으로 만들고 싶다는 말에 몇 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그 준비를 하고 있었던 인선, 생사와 행방도 모르는 친오빠를 한평생 찾아 헤맨 인선의 어머니에게서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소설을 읽어가며 평생에 이런 관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경하와 인선 두 인물 관계가 부러웠다.



책 제목《작별하지 않는다》를 되새겨 보면 필자 또한 가슴에 품고 살고 있는 '작별하지 않은' 얘기들이 떠오른다. 작별하지 못한 게 아닌, 작별하지 않은 이야기들.



그리고 얘기들이 지나간 자리를 잘 살펴보면 무언가 남아 있었는데, 그건 바로 '사무치는 그리움'이었다.



살아가며 누구나 마음 한편에 작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내 힘, 의지로 어쩔 수 없이 벌어진 비극적인 이야기라면?



필자는 그 고통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그건 사무치는 그리움 그 이상일 듯하다.



새가 며칠만 물과 먹이를 먹지 못해도 죽는다는 얘기, 절단된 부위를 봉합한 후 신경이 끊기지 않고 연결하기 위해 3분마다 봉합 부위를 바늘로 찔러줘야 한다는 얘기, 제주도 학살과 관련된 피해자들 그리고 주변인들의 삶에 대한 얘기들.



책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이제 눈 오는 밤은 경하와 인선처럼

작별하지 않은 얘기들로

사무치는 그리움 속에 빠진 시간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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