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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아 May 11. 2024

10주년엔, 함께할 공간을 선물 받고 싶다

넌 첫째일 것 같아. 왠지 동생 있을 것 같아.

 

어린 시절부터 친구, 어른들에게 줄곧 들어온 말이다.

K-장녀인 나는 독립적이고, 주체성이 강한 성향으로 자랐다. 그래서인지 일찌감치 독립을 원했다.

 

 

인생이 늘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뿌린 씨앗은 어떤 식으로든 거둔다는 것.



나에게 고3, 1년 동안 수능을 준비한 대가는 목표 대학 합격이 아닌 대기업 입사였다.

익숙한 공간, 친근한 사람들을 떠나 낯선 곳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식으로부터 정확히 열흘 뒤였다.  



입사 선물로 받았던 와인과 꽃바구니. 부모님 어깨 으쓱하게 해준 대표 직함 편지까지



오로지 나의 취향을 반영해 복숭아가 그려진 핑크색 이불을 장만하고, 비싸지만 고급스러운 동백꽃 향의 샴푸를 사용했다.


페스티벌, 친구와 해외여행, 연애, 필라테스 … 수능 공부하며 적었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해치웠다.   

스물. 모든 것이 나의 주도하에 결정되는 삶은 짜릿했다.



어느 순간 집보다 기숙사가 익숙해졌다. 본가에 갈 때마다 무언가 하나씩 바뀌어있는 동네와 가구들.

내 방이 없어진 집은 뭔가 어색했고, 기숙사 방에 들어와야 이제 집에 왔구나-하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점점 혼자만의 라이프 스타일에 익숙해져 갔다.


 

 

역설적이게 혼자가 익숙해질수록 마음 한편에는 공허함이 자라났다.

온 가족이 함께 먹던 김치찌개, 엄마와 선선한 저녁 공기를 마시며 걸었던 산책로.

가족, 친구와 각자의 하루를 나누는 소소한 일상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성장, 성취에 대한 야망이 높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채로운 경험을 중요시한다.  

회사 캠퍼스는 병원, 체육관, 은행, 식당, 편의점 등의 편의시설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있다. 안전하고 편리했지만, 한정된 물리적 공간에서의 삶은 나의 세계를 제한했다.





어두운 방에서 홀로 공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지금의 남자친구가 다가와 나의 방을 밝혀주었다.


우리는 사내 커플이라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하고,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었다.


 

퇴근하고 함께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엔 늘 서로의 하루를 공유했다.

힘든 일이 생기면 등을 토닥여주었고, 아플 땐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가족, 친구 이상의 끈끈한 관계로 맺어졌고, 자연스레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게 되었다.


판교에서 보낸 4주년 기념일                                                                  


우리는 주변 선배나 동료분들께

[예쁘게 만나는 거 같아서 부럽다/ 빨리 결혼해]와 같은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큰 트러블 없이 이상적인 연애를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결이 잘 맞기 때문이다.  


여행 가는길에 나눴던 대화 주제                                                              | 출처 | 유튜브 조승연의 탐구생활


“생각해 보니 우리는

‘술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 즐기며 마신다.

비싼 술을 즐기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다.

자주 마시지 않는다. ’

는 공통된 가치관을 갖고 있네.

거기에 각자 다른 취향 (나는 와인/ 오빠는 위스키)를 공유하면서 경험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 ”


•••


“지금처럼 각자 서로 다른 일 (오빠는 운전/ 나는 식당서칭)을 하더라도 결국 같은 차 안에서 공통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야 해.”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 생택쥐페리 -




아직 20대 초중반의 어린 나이지만, 둘 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터라 경제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우리는 외제차나 명품 가방보다 신도시, 집값에 더 관심이 있다.

 

판교, 잠실, 수원 등등 여러 지역에서 데이트를 하며 '여기 살면 너무 좋겠다 ~ 집 값이 ~정도 하네.'  이런 류의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눈앞에 놓인 행복보다 안정적인 미래를 추구한다. 주택을 마련하면, 외제차나 명품백은 원할 때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을 공유한다.

 

또, 회사와 거리가 있더라도 문화, 쇼핑, 교통, 의료 등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 대도시, 신도시에 집을 마련하고 싶다는 공통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부동산 시장, 투자에는 무관심했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성향 때문에 완벽한 총알 한 발을 위해 덮어놓고 목돈 모으는 것에만 집중했다.

 

 

어쩌면 물이 무서운 이유는 수영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간 부동산 투자를 두려워했던 이유는 부동산 시장, 법률, 경제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제 발차기, 팔동작을 익혔으니 음파음파- 호흡 타이밍을 찾으며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힘차게 벽을 차고, Next level로 출발할 때가 왔다.  

 

 

*

영화 [업]에서 엘리가 떠난 후 칼은 집을 지키기 위해 풍선을 매달아 하늘로 띄웠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둘만의 색으로 채색하고, 같은 미래를 꿈꾸던 집은 비단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화 Up



한 커플의 애틋한 인생을 담은 이 장면은 픽사 최고의 5분이라 불린다.  

먼 훗날 우리의 최고의 5분으로 기억될 공간은 어디에 있을까?  

오늘도 목표를 되새기며

장바구니를 접고, 지도를 펼친다.

 

 

 

그 보답으로 10주년,

함께할 공간을 선물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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