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의 연봉에는 '감정 쓰레기통'도 포함된다 (2)

극 대문자 T인 내가 F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이야기

by 햅피백수



"감정쓰레기통(1) 그전 이야기.. 보러 가기"


본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건 용납할 수 없고, 대신 본인이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는 건 '그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라는 뜻이라 말하는 무자비한 이기심.

그런 자신의 이기심에 다른 사람들이 받는 상처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입 벌려! 내 감정 쓰레기 들어간다!라는 안하무인 마인드.


뚜시뚜시 내 감정 쓰레기 안 받아 주면 때릴꼬얌! 징징이로!


그냥 본인의 말과 생각이 다 맞고 조금이라도 본인이 불편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자연스럽게 눌러지는 그의 발작 버튼! 빼엑!

옆에서 보기에는 정말 지질한 마인드였는데, 본인은 항상 깨어있는 사람인척 구는 모양새가 퍽 징그러웠다.


우울증이라는 걸 알게 해 줘서 정말 고마워


가끔 누군가와 함께하는 점심시간은 매우 곤욕이었다.

그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지 않으려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살 얼음판을 걷는 느낌이었고

사실은 가슴이 안 좋은 의미로 쿵쿵거리고 유일한 휴식시간인 점심시간마저 강도 높은 업무를 처리하는 듯한 느낌에 어질어질했지만.

사람이라는 존재가 너무너무 무서워지는 나날이었다. 그냥 사람에 질렸다.


힘들다고 빼엑 거리는 사람들도 싫고, 그들을 내칠 수 없는 나도 싫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그의 감정쓰레기를 계속 받고 있다 보면 한없이 나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지는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내 개인 업무로 받고 있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보려 발버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의 우울한 쓰레기를 꾸역꾸역 받고 있다 보니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축 쳐지기 일쑤였고,

나는 점점 버썩 말라 황폐해졌다.


점점 내가 힘들다는 감정도 무의미해졌고, 그의 우울한 감정을 담는 것도 아무렇지 않아 졌다.

그래도 나름 처음에는 '왜 이렇게 징징거려, 그런데 개인적인 문제로 화장실에서 울었다는 이야기까지 왜 나한테 하는 거지 부담스럽게, 왜 이렇게 사람이 부정적이 게만 생각하지?' 등등..

나름 내 감정도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게 지친다는 반응을 보여줬던 거 같았는데..

어느 순간 질펀한 우울 쓰레기에 나 자신도 절여졌는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기 시작했다.


잠깐, 모두 나가주세요. 혼자 있고 싶을 때가 너무 많아요.


감정이 느껴지지 않으니 나 자신이 사라진 거 같은 느낌이었고, 이는 나를 정신의학과로 이끌게 한 몇 가지 원인 중 한 가지가 되었다.

그렇게 병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항상 선생님이 가장 먼저 물어보던 질문이 있었는데,


"오늘은 기분이 어떠신가요?"

기분이라..


"기분이 없는 거 같은데요. 그냥 심장이 배꼽 밑에 떨어져 있는 거 같아요"

숨 쉬는 것도 잘 안 느껴지거든요..


선생님은 내 대답에 보통 사람들은 우울증이라고 하면 기분이 우울하고, 슬프고, 눈물이 나는 증상으로 생각한다고 했지만 그건 아니라고 했다.

우울증은 그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며

기분이 없고,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정말 무서운 증상이라고 했다.


나는 그냥 슬펐던 거 같다.


팀장님들. 잘하시고 계시겠지만 본인까지 망가뜨리지 마세요.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취급한 그들이 내 우울증의 100% 원인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건 그들의 징징거림에 나는 검게 먹칠이 되어갔고, 그들이 쑤셔두고 간 감정 쓰레기들이 가득 차기 시작하면서 내 가슴은 밑바닥에 구멍이 났다.

구멍 난 그 밑바닥으로 흘러가버린 내 감정은 내 기분조차 알지 못하게 되었다.


어쩌면 감정 쓰레기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무터 나는 이미 불안장애에 우울증이었다. (너무 늦게 알았어..)


"직원들이 10번 넘어질 수 있었던 건, 내가 100번 먼저 넘어졌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업무를 배우려는 자세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당연히 모르는 게 당연한 입사 3개월 차.

본인이 일을 못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전전긍긍하던 그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자존심이 짓밟히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일은 정답이 없는 업무였기에, 수백 번 넘게 직접 부딪히고 넘어지고, 일어나는 게 당연했고

그렇게 본인의 리소스를 쌓으며 성장해야 했기 때문에 많이 힘들고, 몇 번을 넘어져도 넘어질 때마다 쓰라린 일이었다.


이런 놈들 덕분에 내가 아팠던 게 더 아파졌어. ㅅㅂ


그런 회사에서 내 역할은, 넘어지는 직원들이 있을 때마다 좀 덜 아프게 넘어지는 법을 알려주거나, 100번 넘어질 것을 10번만 넘어질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이었다.


이런 역할을 하는 나 또한 힘든 건 매 한 가지였다.

직원들이 10번만 넘어지도록 나는 먼저 100번을 넘어졌어야 했고,

직원들이 좀 덜 아프게 넘어질 수 있도록 나는 그 밑에서 온몸이 바스러질 만큼 100번 먼저 굴렀어야 했다.


힘들었지만 그것이 나름 내 프라이드였고, 책임감을 다하는 거라 생각해서

아무리 힘들어도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렇게라도 희생해서 감정 쓰레기통이 되지 않겠다는 얄팍한 기대도 있었는데..


어느 날 모르는 업무를 알려주는 내 모습에 그는 비웃으며 말했다.


"아~ 이건 저도 알고 있어요. 저도 그렇게 하려고 했거든요~"


그는 내 프라이드를 본인의 같잖은 자존심으로 짓밟았고,

100번 먼저 넘어진 피나는 내 노력을 가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팀장님 어제 매출 갑자기 왜 잘 나온 거예요~?"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사람, 노력 없이 쉽게 얻으려는 사람, 정말 무습니다


아니잖아. 너 몰랐잖아.

10번 넘어질 생각은 없고, 100번 넘어지면서 만든 남의 노력을 자기 걸로 만드는 것만 궁금했잖아.


정말 알고 있었으면,

왜 네가 생각한 대로 실행하면 된다고 업무에 대한 자유를 줬을 때도 도와달라고 징징거렸어?

그것도 나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덕분에 원래도 정시퇴근도 못했지만 30분은 더 늦게 퇴근했잖아.

고마워 정말.


기가 차서 웃다가 속이 뒤집어져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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